20. 아버지의 심박조율기를 꺼야겠다.
아버지의 심박조율기를 꺼야겠다. 네가 도와주렴.
케이티 버틀러(Katy Butler)는 어머니의 요청에 동의했습니다. 85세의 아버지 제프리 버틀러는 은퇴한 웨슬리안 대학교 교수였습니다. 전쟁 중에 독일군의 포격으로 왼팔을 잃고도, 상이군인 연금에 의지해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의 종신교수가 된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79세에 뇌졸중을 일으킨 후 점차 진행하는 혈관성 치매로 인지기능을 잃어버리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비참한 상태로 치달았습니다. 치매가 발병하기 전에 동기능부전증후군(sick sinus syndrome)으로 심박조율기를 달았습니다. 심장 박동을 일으키는 전기적 신호가 제대로 생성 전달 되지 않아, 심장이 잠시 뛰지 않거나 느리게 뛰는 병입니다. 심박조율기는 이런 기능 부전을 보조하는 역할을 합니다. 의사들은 심박조율기를 달지 않을 경우에 여생이 2년 정도라고 예상했습니다. 노쇠한 심장이 점점 느리고 불규칙하게 뛰다가 어느 순간 멎는 것입니다. 혈류가 유지되지 않아 뇌졸중이나 낙상을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 나머지 장기들도 산소공급이 충분치 않아 서서히 죽어갑니다. 그러나 심박조율기를 달면서 노화와 치매는 계속 진행하는데 심장은 독자적인 생명력을 얻었습니다. 그 생명력은 10년 수명의 배터리에서 나옵니다. 83세의 어머니는 일주일에 100시간 이상의 간병을 5년간 지속해 오다 지쳤습니다. 더 끌고 나가는 것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심박조율기를 꺼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망가진 아버지의 모습에 딸도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의사들은 도움을 거절했고, 어떤 합법적인 절차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폐렴으로 입원한 아버지는 닷새간 의식불명 상태로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고통을 끝내달라고 부탁했지만, 당직 의사는 심박조율기 끄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폐가 기능을 다해 숨이 멎었을 때도 심장은 계속 뛰고 있었습니다(146). 안락사는 허용되는 기준이 지역에 따라 다르며 자살 방조는 범법입니다. 당직 의사는 마지막까지 함부로 심박조율기를 끌 수없었습니다.
미국 심박협회(Heart Rhythm Society)에서는 2010년 합의문을 발표했습니다. 환자가 원할 경우 심혈관삽입형 기기(cardiovascular implantable device, CVID)의 작동을 중단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법적으로 허용 가능한 일이며, 자살 방조도 안락사도 아니라는 것입니다(147). 이 합의문은 미국심장학회, 미국노인병학회, 미국호스피스완화의학회, 미국심장협회, 유럽심장부정맥협회, 호스피스 완화간호사협회가 공동으로 구성했습니다. 그럼에도 설문조사에서 CVID의 전원을 끄는 것이 합법이라고 생각하는 의사는 변호사의 절반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변호사는 자신이 직접 전원을 끄지 않기 때문이지요.
숨이 멎은 후에도 심박조율기를 작동시키는 배터리의 전력도 간병하는 사람의 수고만큼이나 덧없이 쓰입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없습니다.
맥스웰 블록(Maxwell Bloche)의 어머니는 말기 백혈병으로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해지자 병원에서 퇴원하여 호스피스 시설로 옮겼습니다. 의식은 명료했지만 골수 기능은 다 파괴되어 혈액 응고에 필요한 혈소판 제제를 수혈받지 않으면 아무 장기에서고 자연적으로 대량 출혈을 일으킬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혈소판 제제는 누군가가 헌혈로 제공한 전혈에서 혈소판만을 분리해서 농축해 놓은 귀중한 자산입니다. 블록의 어머니와 같은 경우는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없었습니다. 어머니는 계속 혈소판 제제 수혈을 바라고 거의 싸우다시피 처방을 얻어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가 바라는 대로 도와드리고자 했지만, 담당 의사는 살아날 가망이 없는 환자가 귀중한 자산을 그저 허비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블록이 담당 의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가족의 편의만 챙기는 게 아니었습니다. 블록보다 더 이 상황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그는 정신과 전문의이자 법학자로, 의료법과 의료정책 분야의 석학입니다.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오바마 캠프의 보건의료정책을 만들었습니다. 의료계에 혁신을 일으키지 못한다면 지금과 같은 행태로는 25년 내에 국내총생산의 3분의 1을 의료비가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이런 사람도 어머니의 요구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148).
하버드 의대 종양학 교수인 제롬 그루프먼(Jerome Groopman)은 선배 의사의 암 진단을 마주하였습니다. 같은 대학 병리학 교수로 위암 전문가였던 조지 그리핀이 그 환자입니다. 소화 불량으로 검사를 진행하던 중에 위의 종양이 발견되어 조직 검사를 받았습니다. 현미경으로 직접 자신의 조직을 들여다본 그리핀은 잠깐 멈칫하더니 태연하게 이것은 미분화암종의 ‘전형적인 예’라고 말했습니다. 함께 조직을 확인한 전문가들에게 모든 가능성 중 최악이라는 사실까지 설명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는 고용량의 화학요법과 집중적인 방사선 치료를 수술과 병행하는 공격적 치료를 받겠다고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이런 치료가 그의 경우처럼 한참 진행된 암의 치명적인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증거는 아무 데도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동료 의사들은 아무 소용없어 보이는 치료를 선택한 결정에 충격을 받고 고문이나 다름없는 치료를 중단시켜야 한다고 분개했지만, 본인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습니다.
13년이 지나도 암은 재발하지 않았습니다. 그루프먼은 그리핀이 치료를 결정한 이유를 알고 싶어 그를 찾았습니다. 그리핀이 통계를 무시하고 거짓 환상에 기댄 것이 아니었습니다.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가며, 곧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의료진이 치료에 반대했던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치료를 받아야 환자는 물론이고 가족에게도 불필요한 고통만 더할 뿐이다, 거기다가 뻔히 죽을 사람에게 왜 사회의 돈을 낭비하느냐는 논쟁도 알고 있었습니다. '환자들 중에 자기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네. 의사들이 정확히 얘기해 주지 않으니까. 나는 물론 내 병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네. 그리고 무엇을 선택할지는 내 권리였어.' 그루프먼의 질문에 그리핀은 이렇게 답했습니다(149). 그는 자신의 권리를 행사했고, 동료 의사를 미리 포기했다는 죄책감을 떨치지 못했던 그루프먼은 이를 ‘희망의 권리’라고 명명했습니다.
희망의 권리는 다른 사람이 함부로 빼앗을 수 없습니다. 특히나 치료를 맡은 의사 입장에서는 더욱이나 그렇습니다. 그러나 수명이 늘고 질병과 함께 살아야 하는 시간이 점점 증가하면서 한정된 의료 자원을 나누어 가져야 하는 고통스러운 문제가 고개를 듭니다. 누구도 이 문제는 거론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의사는 자기가 맡은 환자의 치료에만 집중하고 싶어 하고, 논란의 여지가 다분한 정책을 내어놓아 대중의 지지를 잃고 싶어 하는 정치인은 없으니 모두에게 외면받는 문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외할머니 손에 자랐습니다. 자신을 만든 사람은 할머니라고 종종 이야기하고, 각별한 애정을 보였지요. 외할머니는 말기 암 투병 중에 고관절 대체 수술을 받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습니다. 고관절 대체는 고가의 수술입니다. 오바마는 할머니의 마지막 나날이 조금이라도 편할 수 있다면 그 수술이 아무리 비싸더라도 자신이 부담하겠지만, 공적 의료 보장의 원리는 달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말기 암으로 회복될 가능성이 없는 사람에게까지 공공의 비용으로 혜택을 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블록의 어머니에게 투여된 혈소판 제제는 병의 치료와는 무관하지만 수명을 계속 늘리기는 했습니다. 오바마의 외할머니는 말년에 텔레비전에 나오는 손자를 잘 보기 위해 눈 수술을 받기도 했지요. 그러나 수명 연장 효과도 없고, 남은 인생의 질적 향상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임종기의 의료 서비스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암세포에 듣지 않는 항암제 투여, 회복이 불가능한 다장기 부전 환자에게 시행하는 투석 치료, 중환자실 체류 등이 그런 경우입니다. 에릭 토폴은 이런 불필요한 치료나 낭비가 미국 보건의료지출의 절반에 해당할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국내총생산의 5분의 1을 의료비가 차지하는데 그중 절반이 쓸데없는데 쓰이다니 무슨 낭비일까요.
한국의 경우도 다르지 않습니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3차 병원 중환자실에서 1번 이상 치료를 받은 65세 이상 암환자 6000여 명의 의료비 내역을 살펴보면, 생애 말기 1년 의료비가 약 4000만 원에 달하며, 특히 임종 직전 1개월 동안의 비용이 생애 말기 의료비의 3분의 1에 해당했습니다(150).
없는 사람은 아프면 죽으란 말이냐, 내 번 돈 내가 쓰는 데 무슨 상관이냐. 병원에서 흔히 듣는 이야기입니다. 부유한 사람은 자기 재산으로 무엇이든 움켜쥐려고 하고, 가난한 사람은 의료혜택은 사회에서 보장해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억울해합니다. 죽음을 피할 방법은 없는데 죽어가는 과정은 점점 길어집니다. 의료 자원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무한정의 의료 혜택이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의료자원이 남용되는 것을 정책적으로 막지 못하면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불러올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의료자원은 사회 공동 자산으로 공동체에서 받아들여지도록 전문가들이 설득해야 합니다. 그러나 블록의 어머니나 그리핀처럼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에게 강제로 빼앗을 방법은 없고, 누구도 함부로 권리를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146. Butler K. 죽음을 원할 자유: 명랑한 지성; 2013.
147. Lampert R, Hayes DL, Annas GJ, Farley MA, Goldstein NE, Hamilton RM, et al. HRS Expert Consensus Statement on the Management of Cardiovascular Implantable Electronic Devices (CIEDs) in patients nearing end of life or requesting withdrawal of therapy. Heart Rhythm. 2010;7(7):1008-26.
148. Bloche M. 히포크라테스는 모른다: 청년의사; 2011.
149. Groopman J. 희망의 힘: 넥서스북스; 2005.
150. Jo M, Lee Y, Kim T. Medical care costs at the end of life among older adults with cancer: a national health insurance data-based cohort study. BMC Palliat Care. 2023;22(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