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저는 그런 질문에는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배우지 못했습니다.
마리 드루베(Marie Deroubaix)는 56세에 폐암으로 진단받았습니다. 수술받고 일 년이 조금 지나, 암이 뇌로 전이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뇌로 전이된 종양은 극심한 두통을 일으키고, 그녀는 언제든 뇌전증으로 발작을 할 수 있다는 설명에 두려워합니다. 의사는 그녀의 경우에 감마 나이프 치료가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녀는 무의미한 치료를 거부하고 안락사를 택했습니다. 합법적인 절차를 위해 벨기에로 옮겨가며, 마지막 남은 시간을 프랑스에 안락사 도입을 위한 책을 쓰는데 쏟아부었습니다(151). 자신이 죽은 후에 책이 출간되면, 어떤 면에서 몸소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에 프랑스인들이 자신의 말을 더욱 믿어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프랑스에 안락사 합법화를 위한 국민 투표가 시행되기를 바랐습니다. 투표가 시행되기 전에 세상을 떠나 찬성표 하나를 더하지 못해 유감이었습니다(프랑스는 2016년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의료진이 고농도 진정제를 투약해 사망에 이르도록 하는 행위를 합법화했습니다).
그녀는 하고 싶은 많은 일을 두고 세상을 떠나는 것에 분노했습니다. 삶을 혐오하여 안락사를 선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드루베는 벨기에로 떠나면서 응급의사를 불러 항구토제 주사를 맞았습니다.
“벨기에로 가서 안락사를 받기 전까지, 이 주사가 가는 길을 견딜 수 있게 해 주겠지요?” 의사에게 물었다. 불쌍한 의사는 무어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현관까지 배웅하자 의사가 말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요. 저는 진료하고 주사를 놓고 약을 처방하는 방법은 배웠지만, 그런 질문에는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배우지 못했습니다.” 의사는 완전히 낙담해 있었다. 치료비를 받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의사들이 마찬가지입니다. 오랜 시간 힘들게 공부하고 익히는 기술은 모두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은 무한정 연장시킬 수없고, 모든 사람은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데,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에는 그저 낙담할 뿐이지요.
90 넘은 사람이 식이성 폐렴이 되어 사망한들 무엇이 그리 잘못된 것일까
얼마 전 90세가 넘으신 시아버지를 양로원에 맡기고 있는 한 여성으로부터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시아버지는 90세가 넘어서부터 가끔 음식물이 기관에 들어가 숨이 막히는 일이 생기고, 그것 때문에 폐렴을 일으킨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의사가 말했다.
“내일부터 식사를 중단하고 점적(點滴)으로 합시다.”
시아버지는 그 말을 듣자 울음을 터뜨렸다. 아직 식사가 낙이었던 것이다. 며느리는 시아버지를 아끼는 터라 제발 식사를 중단시키는 일을 하지 말아 달라는 사정을 하러 갔다.
1990년대 후반의 의료라는 것은 아직 이 정도밖에 인간을 이해하지 못한다. 90 넘은 사람이 식이성 폐렴이 되어 사망한 들 무엇이 그리 잘못된 것일까? 그것보다는 최후까지 가능한 한 먹고 싶어 하는 것을 먹게 해주는 그런 애정 어린 마음을 왜 갖지 못하는 것일까?(152)
소노 아야코는 환자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현대 의학을 비난합니다. 그러나 의학 교육은 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회복하도록 하는데 중점을 둡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원에서 사망하지만, 역설적으로 죽음이 가장 터부시 되는 곳도 병원입니다. 병원에서 의료진은 어떻게든 죽음을 회피하는 데에 우선순위를 두게 됩니다.
의료적 개입이 행복으로 귀결되지 못할 때 엄청난 좌절이 생겨납니다.
'의학은 그 폭이 매우 좁은 지식분야다. 의료의 목적은 환자에게 의학을 적용해 통증 완화, 장애 예방, 생명 연장을 가능케 하는 것으로 정의 내릴 수 있다. 전통적으로 환자에게 조언과 위로를 건네는 성직자와 같은 기능을 해 온 탓에 인간의 모든 문제를 의학적 문제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의료적 개입이 평온과 행복으로 귀결되지 못할 때 엄청난 좌절과 환멸이 생겨난다. 인간이 겪는 문제는 생의학 이론과 기술로 접근 가능할 때에만, 의학적 문제이자 의학적 질병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텍사스 대학 교수 도널드 셀딘(Donald Seldin)의 글입니다(153).
이렇게 교육받은 학생들은 마리 드루베의 의사처럼 안락사를 위해 떠나는 환자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의사보다 환자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은 간호인들은 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지만, 기본적인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한 간호인은 요양원에서 일을 하다 보면 자신이 ‘임종을 지키는 성직자’가 되어주기를 원하는 것 같은데, 자신이 받은 훈련으로는 환자들을 도울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에 절망감을 느낀다고 털어놓았습니다(154).
151. Deroubaix M. 내가 죽음을 선택하는 순간: 월컴퍼니; 2013.
152. 소노 아야코. 나는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 리수; 1999.
153. Reilly B. 우리의 마지막 순간: 시공사; 2014.
154. Fenwick P, Fenwick E. 죽음의 기술: 부글북스;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