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하는 다음 의료-지연

22. 수명은 늘어나지만 건강 수명은 쉽게 늘어나지 않습니다.

by 최윤재

현대 의학의 기원은 그리스에서 찾습니다. 그리스 의학은 많은 부분이 종교와 밀착되어 있었습니다. 중세 의학의 중심은 수도원이었습니다. 수도사가 의료행위를 수행하는 것을 금한 1130년 클레르몽(Clermont) 종교 회의로 수도원 의학시대는 끝났습니다(154). 수도승의 역할은 의사와 간호사로 나뉘었고, 라틴어 쿠라레(curare)는 큐어(cure, 치료)와 케어(care, 간호)로 나뉘었습니다. 수녀들이 환자를 간호하며 필요할 때만 의사를 불렀습니다.


산업 혁명과 함께 도시에서는 병원이 급증했습니다. 급성장하는 도시로 몰려든 젊은이들은 티푸스나 결핵에 취약했고, 집도 없고 돌봐줄 가족도 없는 이들을 수용할 병원이 필요했습니다. 프랑스혁명은 다른 분야와 함께 오랜 역사의 아카데미와 제도를 파괴했고, 파리는 새로운 의학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프랑스 의사들은 신체검사와 부검을 연관시키며 강력한 혁신을 이루었습니다(155). 다양한 환자가 엄청나게 많이 모여있는 파리시립병원은 새로운 치료법을 시도해 보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의사들은 파리시립병원의 통제권을 넘겨받기를 바랐으나, 1000년 넘게 운영해 온 수녀들은 실험 대상으로 환자들을 넘겨줄 수 없다고 반발하였습니다. 시립병원 통제권을 의사에게 넘겨주라는 혁명군 정부의 명령이 철회되고 수녀들이 계속 환자를 돌보아오다가, 1900년대 초에 의료와 종교를 분리하는 정책을 실시되었습니다. 종교와 의학, 치료와 간호가 분리되는 역사를 보면 의료의 영역은 계속 좁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환자들은 병원에서 치료와 간호, 그리고 사제의 역할까지 모두 해결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환자가 의학적인 이유로 치유될 수 없는 운명이었다 해도, 대학병원 의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생명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환자를 격려하며 치료법을 찾고자 노력해야 하는데, 담당의사는 연명의료를 권하지도, 환자를 중환자실로 보내지도 않았습니다. 환자가 먼저 ‘의사 선생님, 저를 보내주십시오’라고 해도 조금만 더 참아보라고 말하는 의사, 저는 그런 사람이 서울대병원 의사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나라의 모든 의사가 포기할지라도 말입니다(156).'

담당 의사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으니 처벌해 달라고 총장실로 접수된 민원 글 일부입니다. 민원을 낸 분은 환자가 다니던 학교의 교장선생님이었습니다. 학생은 희귀한 종류의 악성 림프종으로 치료 가능성이 매우 낮은 환자였습니다. 치료 중 회생 가능성이 없는 임종이 임박한 시점에 달했다는 설명을 듣고 아버지는 DNR(Do Not Resuscitate; 심폐소생술을 하지 마시오) 문서에 서명을 했지만 어머니는 추스리기 어려운 마음을 학교 선생님께 하소연하신 듯합니다. 한국 의료계의 팍팍한 진료 현실과 소통의 어려움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런 어긋남은 한국에서 뿐만이 아닙니다.


'생의학 연구가 일구어낸 눈부신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점점 더 하나로 모아지고 있다. 대중들은 의사들의 관심과 이해가 부족하다고, 의사들이 절차만을 중요하게 여길 뿐, 환자와 가족의 사적인 문제에는 무감각하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의료기관은 냉정하고 비인간적인 곳으로 여겨진다. 생의학 연구로 명성을 떨치는 곳일수록 더욱 더 이러한 불평의 대상이 된다(157).'

40년 전 미국에서 쓰인 글이지만 교장 선생님의 민원 글에 대한 설명이라 해도 무리 없어 보입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2014년 올해의 인물로 에볼라(ebola) 의료진을 선정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 환자를 돌보기 위해 아프리카로 가는 의료진들이 마땅히 받을 치사입니다. 하지만 백신 개발을 위해 노력하는 연구자들의 노고도 다르지 않습니다. 2023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전령 RNA(messenger RNA, mRNA) 기반 연구로 코로나 감염 유행 (COVID-19 pandemic) 억제에 크게 기여한 카탈린 카리코(Katalin Kariko)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녀의 오랜 연구가 기반이 되어 유례없이 빠른 백신개발이 가능했고 결과 바이러스에서 인류를 보호할 수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진료 현장에서 백신 개발까지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두 가지 일을 같이 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비효율적입니다. 사제나 주술사의 역할까지 하며 환자의 모든 것을 돌보던 의사 업무 중에 사제 역할은 종교인에게, 간호(care) 영역은 간호사에게 맡기고 치료(cure)만 남았습니다. 치료를 위한 연구와 진료도 동시에 해내기 어렵습니다. 연구도 분리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진료에 매진한다고 해도 죽음은 극복하지 못합니다. 임종에 임박해서도 효과 없는 처치를 반복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 되지 않습니다. 마지막을 돌보는 의료는 회복을 위한 진료에서 분리하여 따로 시행되어야 합니다.


호스피스 완화의료(호스피스)라는 개념은 1967년 영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시슬리 손더스(Cicely Saunders)는 생명 연장이 아니라 환자의 총체적 고통을 치유한다는 목표를 내걸고 런던에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를 설립했습니다. 1980년대부터 여러 나라로 확산되어 발전되었으나 아직까지도 환자의 고통을 돌보는 것은 의사가 아니라 간병인이나 종교 사목자들의 영역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의사의 역할은 힘 닫는 데까지 어떻게 하든 환자를 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호스피스는 중한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질병의 완치가 아니라 통증과 스트레스 관리로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완화의료(palliative care)의 한 부분입니다. 호스피스와 완화의료는 흔히 혼동되어 쓰이지만, 완화의료가 심각한 질환을 가진 환자에게 진단 이후 어느 시기이든 질병의 치료와 별개로 통증과 스트레스 관리를 제공되는 것과 달리, 호스피스는 대개 여명이 6개월 정도 남은 환자들이 주 대상입니다. 질병의 치료와 호스피스가 이분되어 치료가 더 이상 듣지 않으면 호스피스로 전환되던 이전과 달리, 최근에는 수명 연장을 위한 질병 치료 시점부터 완화의료를 병행하여 통증을 관리하다가 치료가 더 이상 듣지 않으면 중단하고 자연스럽게 완화의료가 호스피스 케어로 넘어가도록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치료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의 중심점만 이동하는 것입니다.


나이 드신 분의 바람은 9988234,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틀 앓고 삼일째 죽는 것이라고 하지요. 일본 사람들의 핀핀코로리(ぴんぴんころり, 팔팔하게 살다가 갑자기 죽는 것)와 같은 말 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바람과는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강 수명 이후 십년이 넘는 세월을 병과 함께 보내고 임종에 이릅니다. 수명은 늘어나지만 건강 수명은 쉽게 늘어나지 않습니다. 질병 치료법이 계속 발전하고 있으나 모든 병을 다 치료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미 질병과 힘든 치료과정에서 쇠약해지고 통증에 시달리는 환자를 집에서 돌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죽어가는 과정이 계속 늘어나는 시대에 호스피스 완화의료가 더 확대되어야 합니다.


155. Ackerknecht E. 세계의학의 역사: 지식산업사; 1987.

156. 허 대석. 우리의 죽음이 삶이 되려면: 글항아리; 2018.

157. Engel GL. The need for a new medical model: a challenge for biomedicine. Science. 1977;196(4286):12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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