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하는 다음 의료-선택

25. 김 수환 추기경의 선종은 결코 존엄사가 아닙니다.

by 최윤재


2009년 2월 돌아가신 김 수환 추기경도 선종 당시 존엄사(death with dignity) 논란에 휘말렸습니다. 불필요한 생명연장시술을 하지 말아 달라고 하신 유지대로, 대리인 자격인 정 진석 추기경은 인공호흡기를 걸지 않았습니다. 인공호흡기에 의존하여 생존하고 있는 어머니의 연명 치료를 중단해 달라는 자녀들의 소송으로 유명해진 ‘세브란스 병원 김 할머니 사건’이 법정 공방 중인 시기였습니다. 자녀 측 변호인의 변론에 김 수환 추기경의 사례가 참고 자료로 제출되면서, 추기경께서 ‘존엄사’를 선택했다고 보도되었습니다. 생전에도 종교와 무관하게 모든 국민의 존경을 받았던 추기경께서, 불필요한 치료를 마다하고 각막을 기증하고 돌아가셨다는 보도는, 죽음의 본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보여준 듯했습니다.


사람이 저렇게도 늙을 수가 있구나 하고 그분의 늙음을 기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즐거웠다. 나이 들수록 자신의 말년에 대한 근심은 더해만 간다. 마땅한 본을 보여줄 늙음의 선배가 귀하기 때문이다… 연세가 들수록 확실해지는 아집, 독선, 물질과 허명과 정력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집착 등은 차라리 치매가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늙음을 추잡하게 만든다. 그런 것들로부터 훌쩍 벗어난 그분은 연세와 상관없이 소년처럼 무구하고 신선처럼 가벼워 보였다. 그러나 그런 것들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피 천득 선생님의 구순연에 참석했던 박 완서 작가의 회고담입니다. 늙음의 본 조차도 귀한 세상에 죽음의 본이란 찾아보기도 어렵습니다. 추기경이 돌아가시는 모습은 먹고 살기에 바빠 생각 없이 살아가던 보통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장기기증본부는 추기경 사후에 몰려드는 문의로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낙태와 안락사에 강력히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교단의 입장에 반하는 보도와 이에 쏠리는 관심은 교단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2009년 3월 19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는 생명윤리위원회를 통해 ‘김 수환 추기경의 선종은 결코 존엄사가 아닙니다’라는 성명서를 발표하여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존엄사는 안락사와 다를까요? 주교회에서 굳이 성명서까지 내면서 존엄사가 아니라고 부정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앞서 쓴 것처럼, 안락사는 가장 중립적인 의미로 ‘좋은 죽음’을 뜻합니다. 그러나 흔히 상가에서 하는 인사인 호상(好喪)이라는 말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에서 쓰이고 있습니다. 기억하는 호상은 한 친구 아버님입니다. 여든을 훨씬 넘겨 명절에 인사 온 일가 친척분들을 모두 만나서 유쾌한 시간을 보내시고, 연휴 마지막 날 주무시던 중 돌아가셨습니다. 고종명, 웰다잉, 뭐라고 표현하든 좋은 죽음은 글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이런 죽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안락사는 A가 B를 위하여 고의로 B를 죽이거나 죽도록 방임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좋은 죽음이라는 유래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거북하지만 더 구분하자면, B가 죽도록 A가 어떤 조치를 취했다면 적극적 안락사(active euthanasia), B가 죽도록 A가 내버려 두었다면 소극적 안락사(inactive euthanasia)라고 합니다. 환자의 자발적 의사가 얼마나 작용했는지에 따라, 자발적 안락사(voluntary euthanasia)와 비자발적 안락사(involuntary euthanasia), 의지 표현이 없는 안락사(non-voluntary euthanasia)를 구분합니다.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자발적 안락사와, 죽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B를, A가 B를 위해 죽게 하는 비자발적 안락사의 경우는 의미를 파악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의지 표현이 없는 안락사, 이를테면 심각한 장애를 가진 신생아처럼 죽음을 원한다고 자기 의사를 밝힐 수 없는 경우, 혹은 장기간 의식이 없는 식물인간 상태로 인공호흡기와 외부 영양 공급에 의존하여 생존하고 있는 환자의 경우 등은 정의도 어렵고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으며 살인과의 경계도 모호합니다.


고의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 경우를 자살(suicide)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스스로 자신을 죽임’을 뜻하는 라틴어 suicidium 에서기원했습니다. 장 아메리는 좌절과 충동으로 빚어지는 이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유 죽음(freitod)이라는 단어를 제시했고(159), 스스로도 이 방법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자유 죽음은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자유로운 죽음에 관하여 Vom freien Tode>라는 제목의 장에서 기원합니다. 아메리가 자유 죽음을 말한 지 수 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 자유 죽음이 자살이라는 단어를 대치하지 못하고, 위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지도 못했습니다. A가 B의 자살을 돕는다면 조력 자살(assisted suicide), 케보키언처럼 의사가 돕는다면 의사조력자살이 됩니다(163).


그렇다면 존엄사란 이 중 어느 범주에 해당하는 개념일까요?

안락하지 않은 죽음은 연상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존엄하지 않은 죽음도 있을까요. 늙고 병이 들어 추하게 변하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고 인간의 존엄성을 잃은 것은 아닙니다. 모든 인간과 죽음은 존엄하게 대해야 합니다. 그러나 언어가 가지는 힘이 무서워서, 존엄사라고 하면 안락사와는 달리 고통을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긍지를 지키려는 노력으로 해석되면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안락사가 극심한 고통의 제거에 목표를 두는 것과 달리, 존엄사는 인간의 품위를 유지한 죽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점에서 구분될 수 있습니다(165). 안락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존엄성을 끌어들이는 것이 안락사를 합리화하려는 노력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합니다(161). 더구나 의미가 명확해야 하는 의료 용어에 존엄이라는 가치를 부가하는 것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166). 실제로 일부에서는 존엄사를 소극적 안락사와 구별하지 않고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으나, 통상적으로 환자가 의식이 없고 생명연장장치에 의해 삶이 유지되고 있는 경우에 죽음을 위하여 장치를 중단하는 경우 (연명의료중단)를 말합니다. 연명의료중단을 의사 입장에서 본다면 소극적 안락사에 해당하여 혼동의 여지가 있어 최근에는 소극적 안락사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도록 권고됩니다(156).


김 추기경은 돌아가시기 전 호흡 곤란 증세가 있었지만 인공호흡기를 걸지 않았습니다. 기계 장치로 생명을 연장하려 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죽음을 선택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천주교의 입장입니다. 연명 치료의 결정 방법 중에 김할머니의 경우처럼 인공호흡기 치료를 하다가 중단(withdraw)하는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인공호흡기 치료를 하지 않는 경우를 유보(withhold)라고 합니다. 2009년 돌아가실 때 정진석 추기경이 유보 결정을 하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처음부터 연명의료를 하지 않았으니 존엄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추기경의 지대한 영향력이 존엄사법 입법과 더 나아가 안락사 허용에 이용될 것을 교단이 우려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존엄사법 입법이 안락사 허용을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는 과도한 것이 아닙니다. 미끄러운 비탈길 논증은 생명 윤리 논의에 빠지지 않습니다. 이 논증의 핵심은, 일단 한 가지 특정한 입장을 받아들이면 점차 극단으로 치닫는 입장들을 거부하기가 대단히 어려울 뿐더러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만약 더욱 극단적인 입장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으면, 덜 극단적인 최초의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아야 합니다(163). 안락사 반대론자들의 주장입니다. 존엄사가 허용되면 적극적 안락사, 비자발적 안락사까지 걷잡을 수 없이 진행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미끄러운 비탈길 논증은 경사면에 방벽을 설치함으로써, 꼭대기에 발을 내딛더라도 방벽까지만 내려가게 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반박합니다. 안락사 논쟁에서라면, 정교하게 명문화된 법률과 방침이 방벽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류에 빠지기 쉬운 논쟁이고, 더구나 안락사 관련 용어는 사람들이 제멋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논쟁이 흔히 뒤죽박죽이 됩니다(164).


최근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조력존엄사’라는 용어도 마찬가지 맥락입니다. 이 논란은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세간에서 존엄사법이라고 불립니다. 개정안은 말기 환자로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환자들이 담당의사의 조력을 받아 자신이 스스로 삶을 종결할 수 있도록 하는 ‘조력존엄사’를 도입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근거로 국민의 70% 이상이 찬성한다는 설문조사를 근거로 들었는데,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가 이 용어를 ‘의사조력자살’로 정확히 하고 다시 물었을 때 찬성 비율은 13%까지 떨어졌습니다(167). ‘자살’이라는 단어가 주는 거부감을 피하려 만든 잘못된 용어가 개념을 오해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 개정안은 21대 국회에서 계류되었다가 회기가 끝나며 자동 폐기되었는데, 2024년 22대 국회에서 독립된 법안으로 재발의 되었습니다.


156. 허대석. 우리의 죽음이 삶이 되려면: 글항아리; 2018.

157. Engel GL. The need for a new medical model: a challenge for biomedicine. Science. 1977;196(4286):129-36.

158. Küng H, Jens, W. 안락사 논쟁의 새 지평: 세창미디어; 2010.

159. Amery J. 자유죽음: 산책자; 2010.

160. Barbagli M. 자살의 사회학: 글항아리; 2017.

161. Hautecouverture M. 안락사를 합법화해야 할까?: 황금 가지; 2006.

162. Kevorkian J. Prescription medicine: the goodness of planned death. Prometheus 1991.

163. Hope T. 안락사는 살인인가: 한겨레출판; 2008.

164. Bryant J, Velle, L.B.I., Searle, J. 생명과학의 윤리: 아카넷; 2008.

165. 이인영. 존엄사에 대한 고찰. 한림법학 FORUM. 2004;14:151-84.

166. Kim J. The withdrawal of life-sustaining management for dying patients-A study in judicial precedents worldwide-. J Korean Med Assoc. 2009;52(9):856-64.

167. 박민식. 의사조력자살 조사할 때마다 찬반 널뛰는 까닭은? 한국일보. Sep 16, 2022.

작가의 이전글마주하는 다음 의료-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