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하는 다음 의료-선택

26. 나는 시금치나 당근이 아닙니다.

by 최윤재

아직 우리나라에서 신체장애에 대한 사회의식이 전혀 없던 70년대 초반, 내가 대학에 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초등학교 졸업 후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도 너무나 힘들었으니, 대학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다행히도(아니, 아이로니컬 하게도) 내 학교 성적은 좋았고, 나는 꼭 대학에 가고 싶었다. 내가 고3이 되자 아버지는 여러 대학을 찾아다니며 입학시험을 보게 해 달라고 구걸하듯 사정하셨지만, 학교 측은 어차피 합격해도 장애인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했다. 아버지는 당시 서강대학교 영문과 과장이셨던 브루닉(Jerome E. Breunig) 신부님을 찾아가 제발 시험만이라도 보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하셨다. 신부님은 너무나 의아하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말씀하셨다.

“무슨 그런 이상한 질문이 있습니까? 시험을 머리로 보지 다리로 보나요. 장애인이라고 해서 시험 보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168).

장 영희 교수는 어릴 때 앓은 소아마비로 목발이 없으면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불편하겠냐는 주위의 염려와는 달리, 평소에는 자신의 장애를 거의 잊고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에게 장애를 상기시키는 것은 상급학교로 진학하려 할 때마다 다리를 이유로 거부하는 사회였습니다.


장 도미니크 보비(Jean-Dominique Bauby)는 감금 증후군(locked-in syndrome, LIS)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새롭게 했습니다. LIS는 대부분의 경우 뇌출혈이나 뇌경색으로 뇌간이 손상 받아 사지가 마비되고 말하는 데 장애가 생긴 상태입니다. 말을 하지 못하고 몸을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몸 안에 갇힌(locked-in)’ 상태가 됩니다. 자신을 ‘식물인간’ 취급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지적 잠재력이 시금치나 당근보다 우수함을 증명하려면, 의지할 데는 자신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몸에서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왼쪽 눈꺼풀을 20만 번 이상 깜박거려 완성한 책에서, 그는 “나는 아주 나쁜 번호를 뽑았을 뿐, 장애인이 아니다. 나는 단지 돌연변이일 뿐이다.”라고 썼습니다(169).


마틴 피스토리우스(Martin Pistorius)는 눈꺼풀조차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12세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퇴행성 뇌질환으로 의식불명 상태가 되었습니다. 2년 후 의식을 회복하였지만,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움직일 수 없으니, 느끼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알릴 방법이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어머니가 절망해서 “너는 죽어야 해”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도,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참담한 상황이었습니다. 병원에서 보살펴주던 한 마사지사가 주의 깊게 관찰한 끝에 몸 안에 갇힌 그를 ‘발견’하고 외부와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까지, 그는 말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경이로운 기술의 발달은 눈꺼풀조차 움직일 수 없었던 사람의 의식도 외부와 연결했습니다. 어떤 경위로 의식불명 상태로 진행했는지 알 수 없었던 것처럼 어떻게 회복이 시작되었는 지도 모르지만, 피스토리우스는 서서히 회복되었습니다. 아직 휠체어에 의지하지만 그는 온라인에서 만난 여인과 결혼해서 오랜 기간 돌보아준 부모로부터도 독립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스스로를 용서했기를 바랐습니다(170).


식물인간(persistent vegetative state, PVS)은 어떤 상태일까요. 뇌사와는 어떻게 다를까요. PVS는 전두엽의 기능 상실로 사고와 반응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뇌사는 생명 유지에 필요한 뇌간(brain stem)의 기능까지 상실합니다. 뇌간은 심장 박동, 호흡, 체온 조절, 수면 각성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기능을 유지하는 부분입니다(171). 보비나 피스토리우스와 같은 LIS 환자는 PVS와 달리 전두엽의 사고 기능이 온전합니다. 병이 나기 이전과 똑같이 생각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제한될 뿐이지요.


심폐기능이 정지하는 것을 죽음으로 정의하던 시대에서 뇌사(brain death)도 죽음으로 인정하는 시대로 넘어가게 된 것은 장기 이식이 가능해지면서부터입니다. 다양한 기술의 발달로, 뇌기능은 소실되었어도 다른 장기 기능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장기 이식의 성공을 위해서는 공여되기 전 혈류가 정상적으로 유지되는 상태가 바람직합니다. 따라서 의사들이 ‘살아있는’ 사람 몸에서 장기를 적출하는 상황으로 몰고 가지 않으려면, 뇌사를 죽음으로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장기 중에서도 심장 이식이 가능해지면서 뇌사의 정의는 엄격한 기준을 요구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법적인 사망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놀라운 일이지만 사망 확정이 법률 규정으로 명문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해석상으로 심폐사를 사망의 시점으로 인정해 왔고,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서 뇌사도 심폐사와 함께 또 하나의 사망판정방법으로 도입되었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출과 관련이 없는 경우에 뇌사를 사망 기준으로 적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법률상으로 명확하지 않습니다(172). 안락사의 경우나 마찬가지로 용어의 혼란은 적절한 대처를 방해합니다. 뇌사, PVS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법률적인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장 영희 교수는 장애를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살았다고 했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천형 같은 삶을 극복하고 일어선 희망의 상징’이라고 소개하자, 심하게 불쾌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자신이 1급 신체 장애인이고, 암 투병을 하지만 한 번도 자신의 삶이 천형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사람들 은신체장애를 갖고 살아간다는 건 너무나 끔찍하고 비참하리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라고 말합니다(173). 건강한 사람들이 ‘죽기보다 싫은’ 것이라고 말하는 질환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실제로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보고됩니다. 신체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그 장애를 없애기 위해 기꺼이 지불하겠다는 비용보다는, 장애가 없는 사람들이 그런 장애를 피하기 위해 지불하겠다는 비용이 훨씬 큽니다. 장애가 없는 사람들은 장애를 가진 사람의 행복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입니다(174). 사람들은 로또에 당첨되면 엄청 행복하고 하반신이 마비되면 무척 비참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한 고전적인 연구에서, 이를 실제로 경험한 사람들이 사건직후에는 평소보다 훨씬 행복하거나 슬픈 것이 맞지만, 결국 1년이 지나지 않아 사건이 있기 전의 행복 수준으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말은 로또 당첨자가 하반신 마비 환자보다 덜 행복할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175). 대니얼 길버트 교수는 엄청난 사건을 경험한 사람의 말이 그저 상상만 해본 사람들에게는 터무니없이 들리겠지만, 직접 경험한 사람의 말을 믿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윤리학자 피터 싱어(Peter Singer)는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면서 동시에 심각한 장애를 가진 유아를 살해하는 것이 그릇된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여 논란을 일으킨 인물입니다. 장애를 가지고 새로 태어난 유아의 목숨을 끊는 문제는 사실적으로나 철학적으로나 복잡하지 않은 것이 아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반론들과 복잡성을 고려한 다음에도, 장애를 가진 유아를 죽이는 것은 인격체를 죽이는 것과 도덕적으로 동등하지 않다는 것이 싱어의 주장입니다(138). 싱어는 변호사 헤리엇 존슨(Harriet Johnson)을 프린스턴 대학의 강연에 초청해서 토론했습니다. 그녀는 싱어의 주장에 따르면 태어날 당시에 살해당하는 것이 타당한 사람 중 하나입니다. 존슨은 선천성 근위축증 환자로, 그녀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가죽 가방에 든 뼈 뭉치’처럼 보입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장애인의 권리와 복지를 위해 일합니다. 존슨에게 그녀를 죽이고 싶은 게 아니다, 단지 모든 상황을 고려할 때 출생 당시 부모가 살해할 권리를 가지는 편이 나았을 것이라고 하는 싱어를 두고, 존슨은 그가 장애인들은 행복할 기회가 적다는 편견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176).


의사로 일하면서 말 그대로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과 그 가족들의 고통을 가까이에서 보았습니다. 환자와 부모의 고생이야 말할 나위도 없지만, 환자의 형제들도 일생 그림자 속에 삽니다. 자신만 정상으로 태어난 죄책감에, 부모의 관심을 모두 환자에게 빼앗긴 박탈감에, 삶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얼굴에는 늘 그늘이 있습니다. 공리주의자에게는 이 모든 것이 불필요한 문젯거리겠지요. 그러나 존슨의 글을 읽으면 감히 함부로 의견을 내놓을 수없습니다.


태어날 때 장애가 없었다고 해서 문제가 없을까요. 장 영희 교수는 어려서 앓은 소아마비의 후유증으로 다리가 불편했습니다. 보비는 뇌출혈 후에 LIS가 생겼습니다. 피스토리우스는 무슨 이유로 발병했는지 조차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누구든 언제든 장애인이 될 수 있습니다. 장애인을 다른 그룹으로 분리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리 사치코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시어머니까지 다섯 명을 수발하며 노년과 임종을 함께 했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풀어쓴 책에서, 그녀는 무엇이든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자립이 아니다, 할 수 없는 일은 남에게 부탁하는 것도 자립이다라고 말합니다(177). 사실 장애나 치매가 동반되기 전에도 모든 사람이 완전히 독립해서 혼자 힘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자립할 수 없는 부분을 메꾸어 줄 수 있는 사회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나이 들어가면서 잃어버리는 능력을 우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리 씨도 24시간 간병만 한 것이 아닙니다. 대학 수업에 출석하기 위해 시어머니를 단기보호센터에 맡기기도 했습니다. 고령화가 먼저 진행한 일본은 같은 시간에 존재하는 한국의 미래 모습입니다. 일본에서 이미 문제가 된 노노간병(老老看病), 간병살인(看病殺人), 간병자살(看病自殺) 같은 문제들이 이제는 한국사회에서도 서서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간병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절망할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는 삶의 결정권을 운운할 수 없습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곳입니다. 1990년부터 2010년 사이 한국의 자살률은 3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특히, 65세 이상 자살률은 5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잠시 주춤하던 증가율은 근래 다시 상승하고 있습니다(178). 사회학자 노명우는 고공행진을 멈추지 않는 자살률은 병든 사회가 보내는 비상 신호이며 결코 개인적인 비극이 아니라고 역설합니다(179). 산다는 것은 단순히 생존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는 개인에게 보장되어야 합니다. 다만, 지금 살고 있는 사회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암울한 여생 밖에 없어서 삶을 포기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사회를 바꾸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보비나 피스토리우스는 힘든 마비 상태에서도 몸만 부자유스러웠을 뿐, 의식은 견고히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존슨은 변호사 업무를 해내지요. 그러나 자기 자신까지 잃어버리게 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38. Singer P. 실천윤리학: 연암서가; 2013

168. 장 영희. 문학의 숲: 샘터; 2005.

169. Bauby JD. 잠수복과 나비: 동문선; 1997.

170. Pistorius M. Ghost boy: the miraculous escape of a misdiagnosed boy trapped inside his own body: Thomas Nelson; 2013.

171. Young B, Blume W, Lynch A. Brain death and the persistent vegetative state: similarities and contrasts. Can J Neurol Sci. 1989;16(4):388-93.

172. 이 인영. 생명의 시작과 죽음: 윤리 논쟁과 법 현실: 삼우사; 2009.

173. 장 영희.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샘터; 2009.

174. Gilbert D.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김영사; 2006.

175. Wegner D, Grey, K. 신과 개와 인간의 마음: 추수밭; 2016.

176. Johnson HM. Too late to die young: Picador; 2005.

177. 하나리 사치코. 노인 수발에는 교과서가 없다: 창해; 2008.

178. 김 지섭. 40대 자살, 암 누르고 사망원인 1위 올라… 자살자 13년 만에 최다. 조선일보. Sep 25, 2025.

179. 노 명우. 세상 물정의 사회학: 사계절;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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