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케보키언 의사가 연상되는 의자가 있었다.
벚꽃 잎이 흩날리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온 사방에서 ‘벚꽃 엔딩’이 들려옵니다. 노래의 주인공 버스커버스커의 드러머 브래드는 오디션 프로그램 관련 언급으로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진위 여부야 관여할 문제가 아닙니다만, 인터뷰 내용 중 그의 표현이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제작사의 요구로 내키지 않는 보톡스 시술을 받으러 가야만 했습니다. “모든 것이 무서웠다. 거기에는 케보키언이 연상되는 의자가 방 중간에 있었다.”
잭 케보키언(Jack Kevorkian), 자살 기계(suicide machine)를 만들어 의사 조력 자살(physician assisted suicide, PAS)을 시행함으로써 격한 논란의 중심에 섰던 미국 의사입니다. 1998년에는 안락사의 전 과정을 녹화한 후 방송에 공개하여 일반 대중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안락사 옹호와 죽을 권리에 대한 그의 주장은, 저술한 책(162)에 기초하여 2010년 영화(‘You don’t know Jack’)로도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워낙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그는 ‘죽음의 의사(Dr. death)’로 명명되었고, 브래드의 발언에서 보듯이 사람들은 나치 정권의 멩겔레(Josef Mengele)나 일본 731부대의 이시이 시로(石井 四郎)와 그를 구별하지 못합니다. 이런 오해는 안락사라는 단어가 주는 불편함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안락사는 영어 euthanasia의 번역입니다. 잘 알려진대로 그리스어의 ‘좋다’를 의미하는 ‘eu’와 ‘죽음’을 뜻하는 ‘thanatos’가 결합해 만들어진 용어입니다. 존엄한 죽음 혹은 편안한 죽음을 의미합니다(163). 일반적으로 불치병 환자가 겪어야 할 죽음의 고통을 덜어주고, 질병으로 인한 괴로움을 피할 수 있게 해 주는 행위를 통틀어 안락사라고 합니다(161). 이것이 ‘좋은’ 죽음일까요?
좋고 나쁘고를 가리지 않고 현대인들은 죽음 자체를 기피합니다. 사람들은 점점 더 오래 삽니다. 가족과 친척들은 세월과 함께 흩어져 일인 가구가 늘어납니다. 어쩌다 주변에서 보게 되는 사망도 병원에서 모든 과정이 다 끝나고 난 후에 그저 확인만 할 뿐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죽음에 대한 논의는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데다가 인위적으로 삶을 정리한다는 개념은 곧바로 나치의 악몽을 불러옵니다. 이 논의에는 항상 전제 국가와 대량 학살의 문제가 등장하고, 그 다음에는 의료와 무관한 정치 논의로 흘러갑니다. 그러나 죽음의 고통을 덜어주고 질병으로 인한 괴로움을 피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살펴본다면, 나치의 학살은 안락사가 아닙니다. 인종이나 능력에 따라 ‘소용없는 입들을 없애기’ 위한 작업일 뿐입니다(138). 나치주의자들이 당사자들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그들을 죽였다는 점에서도 안락사와 연결시키지 말아야 합니다(163).
케보키언의 행동에 논란의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니나, 기본적으로는 회복이 불가능한 병으로 삶에 고통밖에 남지 않은 사람들이 생을 마감하기 바랄 때 조력 자살이 이루어지도록 실행을 도왔던 사람입니다. 환자의 의사를 무시한 강제 수술이 시행되는 고문실 의자는 멩겔레나 이시이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브래드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사람은 이들을 혼동하고, 안락사와 나치의 학살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불안감을 일으키고 내면에 위협으로 느껴지는 양자는 그냥 뭉뚱그려져 회피의 대상이 됩니다. 이런 형편에, 안락사와 연관된 여러 용어들이 명확하지 않은 정의로 모호하고 심지어 위선적으로 쓰이면서(164), 합법과 불법의 경계도 확실히 알기 어렵습니다. 이런 불길하고 불온한 주제는 피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러나 의학기술의 발전으로 수명이 늘어나면서 죽어가는 과정이 길어집니다. 더 이상 타조처럼 덤불에 고개를 박고 외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138. Singer P. 실천윤리학: 연암서가; 2013.
161. Hautecouverture M. 안락사를 합법화해야 할까?: 황금 가지; 2006.
162. Kevorkian J. Prescription medicide. the goodness of planned death: Prometheus; 1991.
163. Hope T. 안락사는 살인인가: 한겨레출판; 2008.
164. Bryant J, Velle, L.B.I., Searle, J. 생명과학의 윤리: 아카넷;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