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환자 분이 평생 불구가 되어도 보살필 만큼 사랑하시나요.
“전두엽이 저렇게 박살 났는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이 환자는 가망이 없어. 수술해서 출혈을 처리하면 살기는 하겠지만 영영 불구로 살아야 해. 언어 능력이 아예 없어지고 성격도 끔찍하게 변할 수 있어. 수술하지 않으면 오히려 평화롭게 죽을 수 있다고.”
“그렇지만 가족은 뭔가 해주길 원할 겁니다. 수술 여부는 우리가 결정하는 게 아니고 가족들 선택입니다.”(187)
온전하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목숨만 살려놓는 것이 환자를 위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점점 커지는 나이 든 교수는 수술에 보수적이 되어가지만, 의사 경력이 얼마 되지 않는 전공의는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뭐라도! 어떻게 해서라도! 응급실 보호자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족의 선택이라는 것도 전적으로 의료진이 하는 말에 좌우됩니다. 수술로 손상된 뇌를 제거할 수 있는 데, 그러면 최소한 목숨을 건질 수 있다고 하면 가족들은 어김없이 수술을 선택합니다. 반면, 수술을 해도 정상적으로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없고 평생 불구로 지내야 하는데 환자분이 그걸 원하시겠냐고 하면 가족은 다른 답을 줍니다. 환자분이 평생 불구가 된다고 해도 정성스레 보살필 만큼 사랑하시냐고 묻는다면 선택의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물으면 십중팔구 수술을 택합니다(187).
사람이 만들어 놓은 세상이 너무나 복잡해져서 어디에서 막다른 골목에 서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가족이 어렵게 내리는 결정도 사실 의료진 말 한마디에 좌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선택을 하든지 책임은 의사가 아니라 가족에게 있습니다. 왜 이런 상태로 살려 놓았냐고 가족을 원망하는 환자를 여럿 보았습니다. 원망조차 하지 못하는 의식 없는 환자를 두고 고통스러워하는 가족도 보았습니다. 가족을 이런 궁지에 몰아넣기 바라지 않는다면 죽음을 터부시 말고 미리 자기 의견을 밝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나는 단 1초라도 삶을 연장하고 싶지 않아요.
자의식음중단(Voluntarily stopping eating and drinking, VSED)은 고령의 말기 환자가 불필요한 삶의 연장을 피하기 위해 쓰던 방법입니다. 스코트 니어링(Scott Nearing)은 더 이상 자기 몫의 짐을 나를 수 없고 자신을 돌볼 수 없어졌을 때,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100세 생일을 한 달 앞두고 더 이상 먹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딱딱한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한 달 동안 과일 주스만 조금 마시다가 이후에는 물만 마셨습니다. 그럼에도 병이 나거나 의식이 흐려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내 헬렌 니어링은 그가 ‘나무의 마른 잎이 떨어지듯이’ 숨을 멈추고 자유로운 상태가 되었다고 썼습니다(188).
예상과 다르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건 끔찍하게 죽어가는 거예요. 그리고 그건 대단히 정당한 일입니다. 많은 죽음이 끔찍합니다. 내가 의사였을 때 목격한 많은 죽음이 끔찍한 것이었고 사정은 지금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나는 어째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방식으로 죽음의 문제에 접근하지 않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난 단 1초라도 삶은 연장하고 싶지 않아요. ∙∙∙∙∙∙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거의 모든 삶의 단계들을 충실히 살아왔고 많은 것을 이뤘습니다. 나는 절대로 셰익스피어희곡의 왕처럼 울진 않겠죠. ‘나는 헛되이 시간을 보냈고, 이제 시간은 나를 헛되이 소비한다’고 탄식했던 왕 말입니다(23).
세포생물학자 마틴 래프 (Martin Raff)는 자신의 주장대로 은퇴 후 안락사를 장려하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충실히 살아서 많은 것을 이루었으니 죽음이 두렵지 않고 단 1초도 삶을 연장하고 싶지 않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가 존경스럽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말처럼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스코트 니어링처럼 담담하게 죽음을 맞을까요.
일본의 성 루카 병원장 히노하라 시게아키는 일본 최고령 현역 의사로 유명했습니다. 100세가 넘어서도 일본군국주의를 반대하는 운동을 벌일 정도로 적극적으로 살았습니다. 그런 그가 105세로 세상을 뜨기 얼마 전 죽는 게 두렵다, 생각만 해도 떨린다라고 한 것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의사였는데 당신이 이미 손 쓸 수 없는 말기 암 환자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는 죽음의 문턱 앞에서 동요하길 반복했다. 조금도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했다. 그것이 보통 사람의 모습일 것이다. 아버지를 돌보기 시작하면서 친구나 지인으로 부터 비슷한 경험에 대해 질릴 정도로 많이 들었으나 훌륭한 사람의 훌륭한 죽는 법 같은 것은 아무리 많이 들어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도 있기야 있을 테지.” 하는 느낌뿐이다. 모든 사람이 그런 의연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할 리가 없다. 나는 아버지의 동요를 지켜보면서 죽어가는 사람의 기분을 맞춰주는 것이 가족의 역할이 아닐까 하고 결심을 다졌다(189).
우에노 치즈코 교수의 의견이 더 실제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이 의연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름 높은 스님이나 목사님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바람에 내심 당황하는 의사들도 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당자의 기분을 맞춰주는 것이 가족의 역할이라고 하지만, 정작 우에노 교수는 독신입니다. 일인 가구가 급증하는 시대에 누구도 가족의 도움을 자신하기 어렵습니다. 책임져 줄 사회를 만들지 못하면 스스로 자신의 앞날을 준비해야 합니다. 한국보다 한 발 먼저 고령사회에 이른 일본은 먼저 온 미래로 불리지요. 일본의 고령화율은 세계 1위이지만 GDP대비 사회 지출은 평균을 밑돕니다. 그럼에도 사회가 유지되는 이유는 가족이 있기 때문입니다. 안전한 생활을 보장하는 역할을 가족이 해왔기 때문입니다. 1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일본에서는 심각하게 사회보장기능강화가 논의되고 있습니다. 한국은 일본보다도 사회 지출이 훨씬 적습니다. 이런 상태에 급격한 고령화와 1인 가구 급증이 가중되면 사회가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23. Weiner J. 과학, 죽음을 죽이다: 21세기 북스; 2011.
187. Marsh H. 참 좋은 죽음: 더 퀘스트; 2016.
188. Nearing H.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보리; 1997.
189. 우에노 치즈코. 화려한 싱글, 돌아온 싱글, 언젠간 싱글: 이덴슬리벨;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