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하는 다음 의료-연장

2. 나는 내가 어떤 병에 걸릴지 알고 그에 대비할 시간이 있습니다.

by 최윤재

불로와 영생, 전설의 고향이나 도깨비 이야기가 아닙니다. 뛰어난 두뇌로 막대한 부를 거머쥔 정보기술(Information Technology, IT) 업계의 거물들이 공공연하게 거론하며 거액을 투자하고 있습니다(12). 노화연구가 최근 수십 년 사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지만, 대중의 관심을 모은 데는 이들의 영향력이 큽니다. 학자들은 실험실에서 어렵게 얻은 데이터를 학회에서 소심하게 발표하고, 동료들의 날카로운 지적에 의기소침해져서 다시 연구실로 돌아갑니다. IT 거물들은 거침없이 미디어에 자기주장을 펼칩니다. 오라클의 래리 앨리슨(Larry Ellison)은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통념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구글의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은 언젠가 죽음을 완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페이팔 마피아 중 한 명인 피터 틸(Peter Thiel)은 죽음을 인류의 큰 적으로 간주하며, 120세까지 살 생각으로 가공 식품 섭취를 줄이는 특별한 섭생법을 시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러시아 출신 이스라엘기업가 유리 보리소비치 밀너(Yuri Borisovich Milner)와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Jeff Bezos)는 2022년 설립된 알토스 랩(Altos Labs)이라는 회사의 회춘 연구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레트로 바이오사이언스(Retro Bioscience)라는 스타트 업 회사는 인간의 건강 생명을 10년 연장하는 항노화 프로젝트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 회사의 투자자는 오픈 에이아이(Open AI)의 샘 올트만(Sam Altman)입니다(13).


젊은 나이에 세상을 바꿀 만큼 큰 성과를 낸 이들이 왜 새로운 영역에 관심을 가질까요. 널리 알려진 대로 세르게이 브린의 어머니는 47세에 만성 퇴행성 뇌질환인 파킨슨 병(Parkinson’s disease) 진단을 받았습니다. 환자는 말할 나위도 없고 주변에서 지켜보기도 고통스러운 병입니다. 그도 어머니와 같은 LRRK2 유전자 변형이 있습니다. LRRK2 변이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서구권에서 가장 대표적인 변형을 가진 사람의 경우에 80세까지 파킨슨 병이 발병할 위험이 25-49% 정도라고 추정됩니다. 변형이 없는 사람들의 1-2% 발병률과는 비교가 되지 않지요. 단지 부인이었던 앤 워지츠키(Anne Wojcicki)가 공동 창업자였기 때문에 23 앤드미(23 andMe)에 거액을 투자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대부분의 다른 이들과 달리 내가 어떤 병에 걸릴지 알고 그에 대비할 시간이 있다. 세르게이 브린이 블로그에 남긴 글입니다. 이런 개인적인 이유가 전부일까요.

2013년 FDA는 의사를 거치지 않고 개인에게 직접 질병위험도를 알려주는 23 앤드미의 서비스를 중지시켰습니다. 회사에서 의료용이 아니라고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BRCA 유전자 관련 질병위험도나 약물반응의 결과가 부정확할 경우에 개인이 감수해야 하는 위험이 너무 크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이 시점에 23 앤드미는 이미 목표했던 백만명의 절반에 가까운 유전자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2017년 4월 FDA는 23 앤드미의 개인유전자검사 10가지를 다시 허가했지만, 이 기업은 최근 상장폐지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유전자검사는 일회성이라, 한번 검사한 사람은 다시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장기적인 수익 창출로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하면서 최근에는 유전자 몇 가지가 아니라 개인 유전체(genome) 전체 분석이 적은 비용만으로도 가능해졌습니다. 23 앤드미처럼 경영이 어려워져 문을 닫는 기업이 생길 수는 있지만, 개인 유전체 분석으로 질병을 예측하는 개인맞춤형 정밀의료는 이제 정해진 미래입니다. 데이터는 곧 재산입니다. 축적된 양이 많을수록 가치가 커집니다. 23 앤드미도 기업이 보유한 데이터가 어디로 넘어가는지에 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21세기 최대 혁신이 생물학과 기술의 교차점에서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췌장암으로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자신이 아파서 얻을 수 있었던 이점은 아끼는 아들이 훌륭한 의사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공부할 수 있었던 기회라고까지 이야기했습니다(14). 생화학자 제니퍼 다우드나(Jennifer Doudna)는 유전자편집기술인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CRISPR-Cas9) 연구로 에마뉘엘 샤르팡티에(Emmanuelle Marie Charpentier)와 함께 2020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노벨상 수상 후 맥킨지 사와 인터뷰를 하던 중에, 대학 신입생에게 어떤 공부를 권하겠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컴퓨터 공학이나 로봇 공학이라고 답했고, 대답에 놀란 질문자에게 이 영역이 결국 생물학을 포함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재미있게도 엔지니어 출신인 엔비디아(NVIDIA) 사의 최고경영자 젠슨 황(Jensen Huang)은 세계정부정상회의 대담 프로그램에서 이제 아무도 프로그래밍을 할 필요가 없으며 자신이 다시 시작한다면 생물학을 공부하게 될 것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누구나 프로그래밍 언어를 알 필요 없이 프로그래머가 되는 세상에 기술 격차는 줄어들다 못해 완전히 사라지겠지만, 더디게 발전한 생물학 영역에서 과학과 엔지니어링이 접목될 것이라고 내다보았습니다. 한 분야의 대가들이 서로 다른 전공을 이야기하는 것은 두 분야가 융합할 수밖에 없다는 증거이겠습니다. 생물학과 합성 생물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톰 나이트(Tom Knight)는 공학도였습니다. 집적회로 설계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2014년쯤이면 무어의 법칙도 한계에 부딪히리라고 예상했습니다. 집적회로의 뒤를 이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살아있는 세포라고 결론을 내리고, 학부로 돌아가 생물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15).


구글은 건강한 인간 상태 표준의 측정을 표방하는 구글 생명과학(Life Science)을 만들고, 따로 노화와 노화 관련 질환에 집중하는 캘리코(Calico)를 2013년 설립했습니다(16). 구글 X에서 실험적으로 운용하던 프로젝트인 구글 생명과학은, 2015년 지주회사 알파벳 산하의 첫 번째 회사로 독립하면서 베릴리(Verily)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헬스케어 데이터의 활용으로 맞춤형 의료 혁신을 추구합니다. 독립은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생명 공학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앞으로 가장 확장 가능성이 높은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디지털화(digitization)가 가장 늦게 이루어진 분야 중 하나가 의료입니다. 표준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병원마다 분과마다 과 내에서 조차 제멋대로 작성된 의무 기록은 데이터 기술자들을 낙담하게 만듭니다. 피터 틸은 IT 기술의 가속화와 같은 일이 과연 생명 공학 분야에서도 일어날 수 있을까 의심했습니다. 이 분야 연구진들은 인체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에 관한 명확한 이론을 바탕으로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혹시나 효과가 있을까 싶은 것들을 가지고 실험을 한다, 컴퓨터는 사람이 만든 것이어서 다루기가 쉽지만 신체는 사람이 디자인한 것이 아니고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밖에 일을 할 수 없다고 변명한다고 합니다(17). 비판이 아니라 비웃음처럼 들립니다. 나이트는 생물학이 언제나 너무 ‘지저분’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전 세계의 공학도들은 다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덧붙였지요. 싱귤래리티 대학 설립자인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대다수 약물발견 과정이 원시인이 도구를 발견하는 과정과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제약 회사들이 수십만 가지 물질을 훑어서 약효가 좀 있는 듯한 것들을 찍어냅니다. “오호, 이게 혈압을 낮추는 것 같아!” 어떻게 그런 작용을 하는지는 전혀 모르지만, 아무튼 혈압을 낮춥니다. 원시인들도 들판을 온통 뒤져 도구를 찾아냅니다. “오호, 이 돌은 망치로 좋을 것 같아!”(18).


썬 마이크로시스템즈 (Sun Microsystems)의 공동개발자 비노드 코슬라 (Vinod Khosla)는 상위 20퍼센트의 의사를 제외한 나머지는 필요 없다고 단언합니다. 그가 닥터 알고리듬(Dr. Algorithm)이라고 명명한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나머지 80퍼센트를 대치하는 것이, 엉망인 현재의 의료시스템을 교정하는 방법이라고 말합니다(19). 이미 2006년에 벤처 투자자 앤디 케슬러 (Andy Kessler)는 의사들의 지식을 소프트웨어와 실리콘 속에 담아 소비상품으로 만들 것을 예고했습니다(20). IBM이 왓슨(Watson)을 개발한 이유가 퀴즈 쇼 상금 때문은 아니지요. 팀장인 데이비드 페루치(David Ferrucci)가 염두에 둔 것은, 당시 인기 있던 TV 프로그램 닥터 하우스(House M.D.)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인 팀원들이 각자 환자로부터 찾아낸 정보를 취합해서 진단을 도출하는 하우스 박사처럼, 의학 전 분야의 데이터를 가지고 진단을 내리는 디지털 의사가 궁극적인 목표였습니다. 제퍼디(Jeopardy!)에 출연한 것은 세간의 이목을 끌려는 마케팅이었고, 소기의 목적을 거두었지요(21).


뛰어난 과학자도 관련 논문 한 편을 읽고 필요한 내용을 뽑아내는 데 적어도 15분은 필요합니다. 하루에 읽을 수 있는 논문 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지요. 그러나 하루에 쏟아지는 논문을 모두 출력하면 말 그대로 파묻힐 정도로 많습니다. 메드라인에 따르면 의학 관련 논문은 평균 41초마다 한 편씩 출간됩니다(22). 2014년 IBM 이 발표한 연구 지원 플랫폼 왓슨 디스커버리 어드바이저(Watson Discovery Advisor)는 수백만 건의 과학 논문을 몇 시간 만에 분석했습니다. 최근 몇 년간 비약적으로 발전한 대용량언어모델(Large Language Model, LLM)들은 순식간에 논문 한 편을 요약하고 질문에 답까지 해줍니다. 코슬라는 90퍼센트 이상의 의학 진단은 제퍼디보다 쉽다고 말합니다(19). 틀린 말이 아닙니다. 수백만 건의 논문에 비하면 환자 한 사람 진단에 필요한 정보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지요.


의료계의 구조와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 IT 업계 사람들이 직접 나서서 주도를 합니다. 이들은 의사도 생물학 전공자도 아니지만 필요하면 전문가를 영입할 수 있으니 상관하지 않습니다. 대학이나 연구소 몇 배의 연봉을 받으며 연구비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주제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과학자들도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개인적인 이유이든 투자 목적이든 혹은 공명심 때문이든 IT업계의 생명과학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늘어나고 있던 중에, 코비드-19(COVID-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휩쓸면서 한순간에 상황이 전환되었습니다. 논의가 부족하거나 규제가 발목을 잡아 좀처럼 진행되지 않던 비대면진료나 디지털헬스케어가 갑자기 일상 한가운데 자리 잡으면서 이제는 빅테크 기업뿐 아니라 통신, 제약, 보험회사까지 의료 시장으로 진출하고 있습니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뉴스는 빅테크에서 앞다투어 내어놓는 AI 활용 건강 서비스입니다.


12. Cha AE. Tech titan’s latest project: Defy death. The Washington Post. Apr 4, 2015.

13. Regalado A. Can anti-aging breakthroughs add 10 healthy years to the human life span? MIT Technology Review. Mar 8, 2023

14. Issacson W. 스티브 잡스: 민음사; 2011.

15. Howe J, Ito J. 나인-더 빨라진 미래의 생존 원칙: 민음사; 2017.

16. Schultz T. 구글의 미래: 비즈니스 북스; 2016.

17. Thiel P. 제로 투 원: 한국경제신문; 2014.

18. Dawkins R. 궁극의 생명: 미래엔; 2016.

19. Khosla V. Do we need doctors of algorithms? TechCrunch. Jan 10, 2012.

20. Kessler A. 의사가 사라진다: 프로네시스; 2008.

21. Baker S. 왓슨: 세종서적; 2011.

22. Susskind R, Susskind D. 4차 혁명의 시대, 전문직의 미래: 와이즈베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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