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하는 다음 의료-연장

4. 백 살 넘은 분의 엑스선 사진은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어요.

by 최윤재

로키가 백내장 수술을 받기 전 정기적인 엑스선 검사를 한 적이 있는데, 의사가 엑스선 사진을 오랫동안 쳐다보고 있자 나는 더럭 겁이 났다.

“정상인가요?”

“모르겠어요, 백 살 넘은 분의 엑스선 사진은 본 적이 없으니까. 어떤 상태가 정상인지 모르겠어요.”

의사의 대꾸였다(30).


백세 인간(centenarian),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 같은 말이 낯설지 않은 세상입니다. 하지만 불과 40여 년 전인 1980년, 104세의 할아버지 로키는 의사를 난처하게 만들었습니다. 미국에서 그 해에 태어난 신생아의 기대 수명이 고작 73.7세였습니다. 두 차례 세계 대전을 겪은 로키의 동년배는 평균 수명이 형편없이 낮았지요. 요즈음 내과 외래에는 90대 환자를 모시고 온 60대 보호자가 흔합니다. 20대 간호사는 두 어르신에게 큰 소리로 안내하느라 애를 먹습니다. 가끔 신문에 60대 노인 운운하는 기사가 나면, 주위의 어른들은 어찌 60이 노인이냐고 벌컥 화를 내십니다.


20세기 이전 대다수 지역에서, 출생 시의 평균 기대 수명은 40세에서 45세에 불과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중년의 나이에 사망하여 노인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영유아 시기의 높은 사망률이 평균 수명을 깎아먹은 탓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은 노년의 나이에까지 이를 수 있었습니다(31).

산업화 이후 급격히 수명이 증가한 데에는 공중위생 개선과 감염성 질환 치료가 가장 큰 기여를 했습니다. 주산기 관리가 발전하고 예방 접종과 항생제가 개발되면서, 감염성 질환에 취약한 영유아의 사망률이 크게 낮아졌습니다. 의사들의 진료는 전혀 불필요한 존재라고 독설을 퍼붓는 급진적인 사상가 이반 일리치(Ivan Illich)까지도 예방 접종이나 항생제는 ‘미약하나마’ 특정 질병을 약화시키는데 기여했다고 마지못해 인정했습니다(32).


WHO(World Health Organization)는 1980년 천연두의 박멸을 선언했습니다. 이제 실험실에 보관된 균주 이외에는 지구상에 천연두가 없습니다. 영국인 의사 제너(Edward Jenner)가 1796년 처음으로 우두 접종을 고안해 낸 이후에, 이 치명적인 질병은 격감했습니다. 그러나 불과 20여 년 전인 1774년에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는 천연두로 사망했습니다. 미국 30대 대통령 쿨리지(John Calvin Coolidge)의 아들은, 1924년 백악관에서 맨발로 테니스를 치다가 감염이 되어 패혈증으로 숨졌습니다. 영국의 미생물학자플레밍(Alexander Fleming)이 페니실린을 처음 발견한 것이 1928년이었습니다. 항생 물질의 개발은 인류에게 엄청난 혜택을 가져왔습니다. 유럽의 절대 군주나 강대국 대통령의 아들이라 해도 감염병에 속수무책이던 시대가 바로 얼마 전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미약한’ 기여라는 표현은 좀 민망하지요.


21세기에 들어서 더욱 늘어나는 수명은 당뇨병이나 고혈압과 같은 만성 질환의 관리와 암과 같이 치명적인 질환에 대한 연구가 심화된 덕입니다. 감염병은 완전히 치료가 됩니다. 원인균을 사멸시켜 제거하니까요. 하지만 혈당을 낮추는 인슐린 주사나 혈압을 떨어뜨리는 약제는 병 때문에 생기는 증상을 조절하는 역할을 할 뿐, 원인 질환을 완전하게 해결하지 못합니다.


완치할 가망도 없는 약을 일생 복용하라니 끔찍한 일 아닌가.

부작용 없이 정상 혈압을 유지할 수 있는 좋은 약들이 많이 개발되어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고 의사는 말했다. 얼마나 먹으면 완치될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복용하는 동안만 혈압을 내려주는 것이지 원인 치료제는 아니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완치할 가망 없는 약을 일생 동안 복용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 의사의 그다음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면 혈압약 같은 것은 받아오지 않고 말았을지 모른다. 의사가 달래듯이 부드럽게 말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고, 시력이 안 좋아 안경을 쓰는 것처럼만 생각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에 솔깃해지고 말았다(33).


말년까지 냉철한 글을 쓰셨던 고 박 완서 작가의 글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이렇게 병이란 약을 먹으면 ‘씻은 듯이’ 나아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노년에 앓게 되는 만성 질환은 대개 원인 치료보다는 증상 조절로 관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섬세한 관리로 병과 함께 하는 수명이 늘어나는 것이지 치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질병은 노년에 사망하는 가장 큰 원인입니다. 죽상경화증, 당뇨병, 치매, 골다공증, 골관절염, 그리고 암이 두드러진 병변입니다. 그렇다면 각각의 질병 치료법만 찾는다면 수명을 더 늘릴 수 있을까요. 앞에 나열한 질병들은 그 자체가 노화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태어날 때부터 유전자에 각인되어 유년기에 시작되는 질환들과는 달리 노화 자체가 질병의 원인이라는 것이지요. 결국 감염성 질환을 치료하여 일차적으로 늘어난 수명이 만성 질환의 관리로 조금 더 늘어났지만, 노화 자체를 늦추지 못한다면 질병의 관리만으로 수명을 획기적으로 연장시키기는 어렵다는 말입니다(34).

노화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평균 수명이 계속 늘어나더라도 수명의 최대치는 더 늘어날 수 없습니다(35, 36). 사람의 최대 수명을 놓고 공개적으로 돈내기를 한 학자들도 있습니다. 최대 수명이 150세냐 115세냐를 두고 2001년부터 공방을 하는 이들은, 최근 판돈을 더 늘렸습니다(37). 이 내기의 근본도 노화를 얼마나 막을 수 있느냐는 문제입니다. 학계 변방에 있던 노화 연구가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른 이유입니다.


30. Apple M. 룸메이트: 친구; 1994.

31. Thane P. 노년의 역사: 글항아리; 2012.

32. Illich I.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느린 걸음; 2014.

33. 박 완서. 두부: 창작과 비평사; 2002.

34. Vijg J, Campisi J. Puzzles, promises and a cure for ageing. Nature. 2008;454(7208):1065-71.

35. Dong X, Milholland B, Vijg J. Evidence for a limit to human lifespan. Nature. 2016;538(7624):257-9.

36. Olshansky SJ. Ageing: Measuring our narrow strip of life. Nature. 2016;538(7624):175-6.

37. Fleming N. Scientists up stakes in bet on whether humans will live to 150. Nature.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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