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하는 다음 의료-연장

5. 늙은 염소라면 덜 슬프잖아요.

by 최윤재

몇 해 전 아프리카에서 가족과 함께 차를 타고 가는데, 염소 한 마리가 갑자기 우리 차로 뛰어들면서 바퀴에 깔려 즉사했다. 여섯 살 난 딸에게 방금 일어난 일을 알아듣게 설명해 주었더니, 아이는 이렇게 물었다.

“어린 염소였어요, 늙은 염소였어요?”

나는 그것이 왜 궁금하냐고 물었다.

“늙은 염소라면 어차피 더 오래 못 살았을 테니까 덜 슬프잖아요.”(38)

아버지는 유명한 생물학자 토마스 커크우드 (Thomas Kirkwood) 였습니다. 그는 어린아이들도 이미 노화와 죽음에 대한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데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노화는 아직까지도 생물학의 거대한 미스터리입니다(39). 사람들은 늙어가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어떻게든 이를 막아보려 하지만, 실상 ‘왜’ 늙어가는지 모릅니다. 노화의 이유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어떻게’ 늙어가는지, 즉 노화 과정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단세포 생물인 세균은 늙어 죽지 않습니다. 하나의 세포가 둘로 갈라지면서 증식을 하지요. 갈라진 세포는 자기 수명을 누리고 또 갈라져 두 개의 새로운 세포가 됩니다. 물론 부족한 영양분이나 유해한 환경 때문에 사멸하는 개체들이 생겨 무한정 증식하지는 않지만, 세균이 나이를 먹어서 죽는 것은 아닙니다.

다세포 유기체 중에서도 히드라는 몸의 일부에서 전체 신체가 자라납니다. 예전부터 히드라는 늙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소문이 무성했지만 과학적인 증거는 부족했습니다. 노화는 나이와 함께 생식력이 떨어지고 사망률이 높아지는 현상입니다. 2015년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학자들은 히드라를 8년간 관찰한 끝에 사망률과 생식력이 계속 유지된다고 보고했습니다(40). 늙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전신에 생식 세포가 골고루 분포되어 있어 가능한 일이라고 추정합니다.

생명의 나무(tree of life) 가지 말단에 위치한 대다수의 다세포 동물은 몸을 구성하는 체세포와 증식을 하는 생식세포가 구분되어 있고, 암수가 구분된 유성 생식을 합니다. 이들은 늙어서 죽음에 이릅니다. 왜 생식세포를 체세포로부터 분리하게 되었을까요. 이 또한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문제입니다(41). 식물과, 산호처럼 기본적인 동물은 생식세포 라인이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습니다. 간단히 성체의 줄기세포에서 생식세포가 만들어지지요. 생식세포 라인이 따로 구분되었기 때문에 두뇌와 같이 복잡하고 특화된 기관을 만들 수 있어서 점점 고등한 개체가 출현했을 것이라 추정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합니다.


노화는 진화의 결과입니다.

진화의 관점을 떠나서는 생물학의 어떤 것도 의미를 갖지 못한다(Nothing in biology makes sense except in the light of evolution). 유전학자 도브잔스키(Theodosius Dobzhansky)의 유명한 말입니다. 많은 학자들이 노화도 진화 과정에 유성 생식이도입되면서 초래된 산물로 받아들입니다. 진화의 근간은 자연선택입니다. 자연선택을 확실하게 거스르는 노화는 어떻게 계속 보존되어 왔을까요. 진화생물학자들이 내놓은 설명은 크게 3가지입니다(42).

피터 메더워(Peter Medawar)는 자연에서 대부분의 죽음은 굶주림이나 잡아먹힘, 사고로 인한 것임을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나이가 들수록 생존 가능성은 떨어집니다. 어린 나이에 나쁜 영향을 나타내는 돌연변이는 자손을 남기는 데 막대한 해를 끼치지만, 늦은 나이에 영향을 미치는 돌연변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결과, 일찍 작용하는 돌연변이는 강력한 자연선택을 받지만, 늦게 작용하는 돌연변이는 자연선택의 영향을 덜 받고 후세로 전해집니다. 메더워는 이런 돌연변이들이 쌓여서 노화가 일어난다고 설명했습니다. 후에 돌연변이 축적(mutation accumulation) 이론이라고 이름이 붙여집니다.

조지 윌리엄스(George Williams)는 한 유전자의 작용이 시간에 따라 다른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가정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적응에는 유리하지만 노년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유전자를 생각해 봅시다. 자연선택은 어린 나이의 이득을 우선하므로 노년의 폐해에도 불구하고 이런 유전자들은 계속 자손에게 전달되고, 이런 유전자들이 쌓여서 노화가 일어난다는 이론입니다. 예를 들어 칼슘을축적하게 하는 유전자가 어린 시절에는 뼈를 튼튼하게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혈관 벽을 딱딱하게 만들어 순환계 질환을 일으킨다는 말이지요. 이 적대적 다면발현(antagonistic pleiotropy) 이론의 기본은 메더워의 이론입니다.

염소 이야기의 커크우드는, 자연의 자원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생물은 늙은 몸을 유지하는 것보다 자손을 남기는 데 비중을 두었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오래 살기 위해 체세포를 유지 보수하는 기전은 불완전하고, 평생에 걸쳐 망가진 분자들과 다양한 형태의 세포 손상이 서서히 축적되면서 노화가 일어난다는 것이 일회용 체세포(disposable soma) 이론입니다.

이 세 가지 이론은 조금씩 다른 설명이지만 서로 대립하지는 않습니다. 기본적인 개념은 같습니다. 즉, 일부 분자 생물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유전자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성장하여 자손을 남기는 역할을 마친 생물이 더 이상 생명을 유지하는 데 실패하고 무너져내리는 과정이 노화라는 것이지요(43). 그러나 설명이 세 가지나 되고 ‘이론’이라고 이름이 붙여있다는 것은, 아직도 왜 노화가 일어나는지 완벽하고 정확하게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는 말입니다.


쥐는 삼 년을 살지만 박쥐는 삼십 년 넘게 삽니다.

진화 생물학자들이 ‘왜’ 늙는가를 물을 때 분자 생물학자들은 ‘어떻게’ 늙는가를 고민합니다. 수정란 세포 하나에서 한 사람의 어른으로 발달하는 과정은 놀랍도록 정교하게 짜여 있습니다. 마치 도미노 한 조각이 넘어지면서 사방으로 진행되는 것처럼, 수정이 되는 순간부터 짜인 각본대로 거침없이 내달립니다. 역으로, 성인이 죽음에 다다르도록 몰고 가는 정교한 프로그램이 있을까요.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마크 윌리엄스(Mark E. Williams) 교수는, 노인의학 전문의로 수십 년간 일하면서 배운 한 가지 교훈이 있다면 노화는 천편일률적인 과정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44). 스스로를 파괴하는 유전자가 진화 과정에서 유지되어 왔다고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진화 생물학자들은, 노화란 더 이상 못 버티고 무너지는 과정이지 밑그림대로 진행하는 과정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늙어가는가를 찾는 분자 생물학자들은 노화 현상을 관찰하면서, 이 또한 많은 생물학적 과정처럼 신호전달체계(signalling pathway)와 전사인자(transcriptional factor)의 조절 아래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궁극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노화 프로그램은 없다고 하더라도, 노화 과정을 늦추거나 조절하는 기전은 자연선택을 받아 번성할 수 있다는 근거입니다. 따라서 이런 대사 과정에 개입할 방법을 찾는다면 사람의 기술로 노화를 조절할 여지가 있다고 주장합니다(45, 46).

같은 종 안에서 수명이 열 배 이상 차이가 나는 동물들을 보면 이들의 주장에 수긍이 갑니다. 쥐는 고작 삼사 년 살고 죽습니다. 이들은 땅바닥에서 살면서 온갖 천적들에게 노출되어 수시로 잡아먹힙니다. 종족을 유지하기 위해서 온통 번식에만 치중하고 수명을 늘릴겨를이 없겠지요. 땅속으로 파고든 벌거숭이두더지쥐(Heterocephalus glaber)는 삼십 년의 세월을 누립니다. 날개를 달고 동굴로 숨어든 박쥐도 삼십 년 넘게 삽니다. 잡아먹히는 위험에서 놓여나자 수명이 늘어나는 돌연변이를 가진 개체들이 점점 번창하고 이런 변이가 오랜 세월 누적되면서 삼십 년 넘는 수명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 90세를 넘어서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가족들이 대대로 장수하는 가계도 있지요. 세상에는 장수마을이라는 곳도 있습니다. 이들은 아마도 노화를 늦추는 기전을 획득한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학자들은 이렇게 오래 사는 사람에서 특이한 유전 변이를 찾으려 노력합니다(47, 48). 보통 사람과 다른 변이를 발견하고, 이 변이가 수명과 관련이 있다고 밝혀진다면, 인간이 개입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겠지요. 벌거숭이두더지쥐와 박쥐가 긴 세월에 걸쳐 획득한 수명을 인간의 과학 기술로 단숨에 거머쥐려는 시도입니다.


38.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편집부. 노화의 비밀: 한림출판사; 2016.

39. Gladyshev VN. Aging: progressive decline in fitness due to the rising deleteriome adjusted by genetic, environmental, and stochastic processes. Aging Cell. 2016;15(4):594-602.

40. Schaible R, Scheuerlein A, Dańko MJ, Gampe J, Martínez DE, Vaupel JW. Constant mortality and fertility over age in Hydra. Proc Natl Acad Sci U S A. 2015;112(51):15701-6.

41. Radzvilavicius AL, Hadjivasiliou Z, Pomiankowski A, Lane N. Selection for Mitochondrial Quality Drives Evolution of the Germline. PLoS Biol. 2016;14(12):e2000410.

42. Robins C, Conneely KN. Testing evolutionary models of senescence: traditional approaches and future directions. Hum Genet. 2014;133(12):1451-65.

43. Kirkwood TB. Understanding the odd science of aging. Cell. 2005;120(4):437-47.

44. William M. 늙어감의 기술: 현암사; 2017.

45. Kenyon CJ. The genetics of ageing. Nature. 2010;464(7288):504-12.

46. Johnson FB, Sinclair DA, Guarente L. Molecular biology of aging. Cell. 1999;96(2):291-302.

47. Druley TE, Wang L, Lin SJ, Lee JH, Zhang Q, Daw EW, et al. Candidate gene resequencing to identify rare, pedigree-specific variants influencing healthy aging phenotypes in the long life family study. BMC Geriatr. 2016;16:80.

48. Ben-Avraham D, Govindaraju DR, Budagov T, Fradin D, Durda P, Liu B, et al. The GH receptor exon 3 deletion is a marker of male-specific exceptional longevity associated with increased GH sensitivity and taller stature. Sci Adv. 2017;3(6):e160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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