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나는 75세에 죽기 바랍니다.
종양학자이며 생명윤리학자인 에제키엘 이매뉴얼(Ezekiel Emanual)은 자신이 원하는 수명은 75세라는 글을 기고하여 격렬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습니다(64). 1957년 출생으로 올해 69세입니다. 유방암 전문의이며 미국 국립의료원(National Institute of Health) 생명윤리학 과장과 오바마 행정부 보건정책자문위원으로 일했습니다. 의료계 최신 정보에 가까이 있고, 생명윤리학자로 의사조력자살을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해 온 그가 왜 75세를 한계로 정했을까요. 가장 핵심이 되는 이유는 현재 80세 이상 인구 절반은 기능적 장애를 가지며, 85세 이상 인구 삼분의 일은 알츠하이머 병(Alzheimer’s disease)을 가진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독일 알츠하이머 병 학회에 따르면 이 병에 걸리는 비율은 지수적으로 증가합니다. 60에서 64세에 알츠하이머 병에 걸리는 사람은 인구의 1.2퍼센트에 불과합니다. 80에서 84세에 걸리는 사람은 13.3퍼센트, 85세에서 89세에 걸리는 사람은 23.9퍼센트, 90세 이상에서 걸리는 사람은 34.6퍼센트 에 이릅니다. 이 곡선을 연장하면 다음과 같은 예측을 얻을 수 있습니다. 100세 이상 인구에서 알츠하이머 병에 걸리는 사람은 50퍼센트, 120세 이르면 100퍼센트(65).
새로운 사실을 알리는 게 업인 언론에서는 언제나 ‘획기적인’ 치료로 ‘조만간’ 치매와 암이 ‘정복’될 것이라고 보도합니다. 알츠하이머 병을 치료하려는 수많은 연구진들의 고군분투는 고무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현재 임상에서 쓸 수 있는 것은 증상만 완화시키는 약제 몇 가지뿐입니다. 예일 대학교 알츠하이머 연구소의 정신과 의사 크리스토퍼 반 딕(Christopher H. van Dick)은 알츠하이머 연구는 아직도 중세 암흑기 같다고 토로합니다. 2021년 미국 FDA는 아두카누맙(aducanumab)을 알츠하이머 치료제로 허가했지만, 졸속 허가 과정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고, 결과 약의 효과도 논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아두카누맙 후속으로 바이오젠(Biogen)과 에자이(Eisai)에서 내놓은 레카네맙(lecanemab)이 위약군에 비해 인지기능 저하 속도를 27% 정도 늦추었다고 보고되었는데, 워싱턴 대학 신경과의 조이 스나이더(Joy Snider)는 ‘이 약은 치료제가 아니며, 악화를 중단시키지도 않으며, 나빠지는 속도만 늦추어 환자가 6개월에서 일 년 정도 자동차 운전을 더 할 수 있다는 정도’라고 평가했습니다.
헬스케어 산업이 큰 주목을 받고 있지만, 연구개발비용 10억 달러 당 승인받는 신약의 수는 9년마다 절반으로 줄어들고 있습니다(66). 막대한 비용이 투자되지만 실제 소득은 줄어든다는 이야기지요. 신약 개발은 쉬운 일이 아니며, 사람 몸에 투여할 수 있을 때까지 무엇보다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점점 까다로워지는 임상 시험을 통과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제대로 만들기만 하면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앱이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갈 수 있는 정보통신분야와는 다릅니다. 미국 FDA에 따르면 새로운 약제 하나가 개발되는데 평균 비용은 26억 달러, 기간은 14년이 걸립니다. 감염병이나 종양학처럼 신약 개발의 역사가 길어 어느 정도 틀이 잡혀있는 분야에서도, 실험동물에서 효과가 있는 약제를 사람에게 허용할 때까지 17년 이상 걸릴 수 있습니다(67). 이에 비하면 항노화나 치매 연구는 새로운 분야입니다. 바로 처방이 가능한 알츠하이머 병 약제나 항 노화 약제가 단시간 내에 시장에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과학적으로 입증이 되기도 전에 언론이 과대하게 부풀려 소란스러워진 면이 있지만, 레스베라트롤을 둘러싼 소동을 보아도 항노화 신약을 단기간에 손에 넣기란 어려워 보입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69세의 이매뉴얼이 ‘획기적인’ 치료 혜택의 가능성을 냉정하게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75세에 생을 마감하겠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장애와 기능 저하를 막을 방법이 없으니, 이후로는 불필요하게 수명만 늘려가는 치료는 받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스탠퍼드 의과대학의 월터 보츠(Walter Bortz)는 운동만 열심히 해도 100세까지 충분히 살 수 있다고 주장하는 노화 전문가입니다. 스스로도 80대 나이에 마라톤을 완주합니다. 그런 보츠도 120세나 130세까지는 살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현재 공식적으로 110세 이상 나이로 인정받아 등록된 사람들을 보면, 더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트로이의 왕자 티토노스는 인간이지만 새벽의 여신 에오스의 간청으로 영생을 허락받았습니다. 깜박 잊고 청춘을 함께 청하지 못한 에오스는, 계속 늙어가는 연인 티토노스를 견디다 못해 매미로 변신시켜 구석방에 가두었다고 하지요. 생명 연장과 노화 방지는 2인 3각처럼 발맞추어 가야 하는데 끈이 풀어지고 생명 연장만 앞으로 내달려 가면, 늙고 병든 몸으로 힘겹게 살아가야 하는 긴 세월이 남습니다. 알츠하이머 병을 해결하지 못하고 수명이 계속 늘어난다면 참담한 결과가 초래될 것입니다. 이매뉴얼이나 보츠가 적정선 이상의 삶을 사양하는 이유입니다. 한국은 노인 빈곤율이 50퍼센트에 육박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 최고 수준입니다. 노인들이 현금을 많이 보유한 일본에서도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노후파산과 하류노인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68). 노후파산의 큰 원인 중 하나가 의료비 폭탄입니다. 간병 비용은 또 다른 지뢰밭입니다. 한국도 예상보다 더 빠르게 2024년 12월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습니다. 단시일 내에 의료의 변화가 동반되지 못한다면 가장 암담한 미래가 기다릴 것입니다. 무전 유병 장수 사회.
불로 영생의 꿈은 길가메시나 진시황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계보를 갖고 있습니다. 아마도 인간이 자의식을 가지면서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자기 존재의 소멸을 두려워하는 약한 인간의 솔직한 모습인지 모르겠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오토 링크 (Otto Rank)에 따르면 인류는 죽음을 회피하기 위해 초기부터 영혼이라는 발명품을 만들었다고 하지요. 하지만 과연 인류가 추구해야 할 최선의 가치가 개인의 불로영생일까요. 가능한 오래 살고 싶어 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약한 인간의 바람을 십분 고려한다 해도, 과연 이런 혜택을 공평하게 누릴 수 있을까요. 가난과 전쟁 탓에 예방 접종을 받지 못해 21세기에 소아마비나 홍역에 걸리는 수많은 어린이들과 영생을 누리고 싶어 하는 부호들 간의 간극은 너무 넓습니다. 불평등의 골이 깊어 진 사회는 위험합니다. 이미 인종과 교육 격차만으로 예상 수명이 차이가 나고 따라잡기도 어렵다는 보고가 있습니다(69). 어설프게 혜택을 받아 불로 영생이 아닌 유병 장수로 힘든 노년만 더 길어진다면 막을 방법은 있을까요. 등 떠밀려 휩쓸린 사람들에게 과연 어떤 결과가 도래할지 불안할 따름입니다.
64. Emanuel EJ. Why I hope to die at 75. The Atlantic. 2014.
65. Monyer H, Gessmann M. 기억은 미래로 향한다: 문예출판사; 2017.
66. Scannell JW, Blanckley A, Boldon H, Warrington B. Diagnosing the decline in pharmaceutical R&D efficiency. Nat Rev Drug Discov. 2012;11(3):191-200.
67. Kirkland JL. Translating advances from the basic biology of aging into clinical application. Exp Gerontol. 2013;48(1):1-5.
68. 후지타 다카노리. 2020 하류 노인이 온다: 청림출판; 2016.
69. Olshansky SJ, Antonucci T, Berkman L, Binstock RH, Boersch-Supan A, Cacioppo JT, et al. Differences in life expectancy due to race and educational differences are widening, and many may not catch up. Health Aff (Millwood). 2012;31(8):18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