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고기 수프를 먹으면 나도 너만큼 힘이 셀 거야.
게오르게 니첼름은 나보다 키가 컸고 그래서 당연히 나보다 힘이 셀 거라고 모두들 생각했다. 하지만 씨름에서 내게 지고 말았다. 내 밑에 깔려있던 그가 말했다.
“너처럼 일주일에 두 번씩 고기 수프를 먹으면 나도 너만큼 힘이 셀 거야!”
그의 말에 충격을 받은 나는 무거운 마음을 안고 집으로 갔다. 게오르게 니첼름은 이미 내가 느끼고 있던 사실을 분명하게 말해준 것뿐이었다. ∙∙∙∙∙∙ 탁자 위에 김을 내고 있는 수프를 볼 때마다 게오르그 니첼름의 목소리가 들렸다(70).
고기 수프 한 그릇이 체력의 차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의 영양 결핍은 지능까지 떨어뜨립니다. 슈바이처박사는 어린 시절, 이런 행운을 마땅히 누릴 권리가 있는가 고민했고, 그 고민이 인생을 결정했다고 합니다.
육상의 임 춘애 선수를 검색하면 라면이 자동 검색어로 뜹니다. 본인이 여러 번 아니라고 부인해도 소용없을 정도로 라면 먹고 운동했다는 명제가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있습니다. 사람의 능력을 강화시키는 방법으로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영양가 높은 음식입니다. 체력이 중요한 운동선수가 라면 먹고 뛰었다는 이야기는 쉽게 잊히지 않지요. 배곯던 시절이 바로 얼마 전이었던 중장년세대에게는 뼛속까지 기억이 새겨져 있을 겁니다.
매일 먹는 음식이 차이를 만든다면, 중요한 성분만 뽑아낸 약제는 효과는 더 크겠지요. 운동선수들이 도핑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 효과를 가까이에서 보기 때문입니다. 암 투병 후에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 대회에서 7연패의 놀라운 기록을 세웠던 랜스 암스트롱(Lance Armstrong)도 금지 약물을 복용한 것이 밝혀지면서 대중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에리트로포이에틴(erythropoietin, EPO)은 적혈구 생산을 촉진하는 호르몬입니다. 적혈구는 몸의 각 부분으로 산소를 운반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적혈구가 모자라게 되면 쉽게 숨이 차고 지치고 피로해집니다. EPO는 정상적으로 신장에서 만들어져서, 골수에서 적혈구가 만들어지도록 작용합니다. 따라서 신장 기능이 떨어지는 만성신부전 환자들은 EPO가 모자라 빈혈로 고생하고, 반복해서 수혈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1983년 대량으로 EPO를 합성할 수 있게 되자 이런 질환을 앓는 환자들은 엄청난 혜택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사용자는 운동선수들이었습니다.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가 늘어나면 근육으로 전달되는 산소량이 늘어나 쉽게 지치지 않게 됩니다. 싸이클링 같은 유산소운동에는 큰 도움이 되겠지요. EPO가 합성되기 전에는 미리 보관해 두었던 자신의 혈액을 경기 바로 전에 수혈하는 방법으로 적혈구를 늘렸던 선수들이, 이제 EPO 주사로 쉽게 적혈구를 증가시켜 경기력을 향상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랜스 암스트롱이 오랜 시간 거듭 써온 방법이지요. 암스트롱뿐 아니라 싸이클링 계에서 만연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경기력을 향상하는 이외에 다른 작용은 없을까요. 적혈구가 정상 범위보다 증가하면 혈액의 농도가 진해져 끈적끈적해집니다. 정상적인 혈액의 흐름을 방해하기 때문에 심혈관 질환이 있는 환자들과 마찬가지로 심장마비나 뇌졸중의 위험이 높아집니다. 공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건강까지 해칩니다. 그러나 애초에 공정한 경쟁이라는 것이 가능할까요.
스포츠 경기에서 이긴 선수에게 보내는 찬사는 그동안 선수가 쏟은 땀과 노력에 대한 경의입니다. 유리한 신체 조건을 만드는 우수한 유전자를 칭찬하는 게 아니지요. 그러나 세상은 불공평합니다. 같은 종목 운동선수들 간에도 체격과 체력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합니다. 최근 발표된 한 논문은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이 높은 여자 운동선수들의 성적이 우수하다고 보고합니다(71). 한마디로 태어날 때부터 유리한 조건인 것입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육상선수 캐스터 세메냐(Caster Semenya)나 인도의 두티찬드(Dutee Chand) 같은 선수들이 테스토스테론 수치 때문에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되자, 국제육상경기연맹에서 대규모로 시행한 연구 결과입니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anabolic steroid)는 근육량을 늘리고 운동 성과를 높이기 위해 불법적으로 남용되는 약물입니다. 치명적인 여러 가지 부작용뿐 아니라 중독의 위험까지 있습니다. 처방이 필요한 몇 가지 질환 이외에는 엄격히 금지되어야 합니다. 여자 선수가 투약할 경우 체내에서 테스토스테론과 유사한 효과를 보입니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투여를 금지하면서 테스토스테론이 높은 선수를 용인하는 것이 과연 공정할까요.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아지도록 유전자를 재조합할 수 있다면, 허용할 수 있을까요.
70. Schweitzer A. 열정을 기억하라: 좋은 생각; 2006.
71. Bermon S, Garnier PY. Serum androgen levels and their relation to performance in track and field: mass spectrometry results from 2127 observations in male and female elite athletes. Br J Sports Med. 2017;51(17):13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