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하는 다음 의료-강화

9. 나는 티타늄, 탄소, 실리콘, 한 줌의 볼트와 너트입니다.

by 최윤재

보스턴 마라톤 테러로 한쪽 다리를 잃은 아드리안 헤슬렛-데이비스(Adrianne Haslet-Davis)는 2014년 TED에서 우아한 룸바춤을 완벽하게 추어 기립 박수를 받았습니다. 그녀에게 의족을 만들어준 MIT 대학의 휴 허(Hugh Herr) 교수도 양쪽 다리 모두 의족입니다. 17세에 미국 동부에서 가장 뛰어난 등반가로 인정받았던 휴 허는, 등반 사고로 양다리를 모두 절단했습니다. 등반에 쏟았던 열정으로 생체공학과 로봇의족 개발에 몰두한 그는, 자신을 티타늄, 탄소, 실리콘, 한 줌의 볼트와 너트라고 소개합니다. 그가 만든 첨단 의족은 걷고 달리는 수준을 넘어, 그를 사고 전 보다 훨씬 더 뛰어난 등반가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발을 만들고 등산화를 신으려고 하던 중, 신발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뒤꿈치를 잘라내고 강성을 높이고 빙벽 등반용 스파이크를 추가하고 발볼을 좁혀 작은 틈새에도 고정할 수 있게 만들자, 성한 다리로 등반하는 동료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유리한 조건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일부 동료는 그를 따라잡기 위해 다리를 절단할 기세였다고 하지요(72). 강화된 인간이 ‘정상’의 기준을 뛰어넘은 것입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육상선수 오스카 피스토리우스(Oscar Pistorius)가 장애인 올림픽이 아니라 하계올림픽에 참가하고자 하는 시도를 국제육상경기연맹이 거부한 이유도, 그에게 장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의 의족이 편파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프란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성과 강화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약의 목적은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지 건강한 사람을 신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73). 임상 의사들은 대부분 이 말에 공감합니다. 지금까지 의학의 목표는 환자를 돕는 것이지 인간 종 자체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74). 학생 시절부터 대부분의 시간을 병원에서 환자들과 보내게 되면, 환자를 건강하게 하는 것과 건강한 사람을 뛰어나게 하는 것을 같이 생각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소아과 환자들은 학교에 가서 교육받고 또래들과 같이 성장할 기회조차 제한된 경우가 많습니다. 출발선에 나란히 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먼저이지, 정상인이 빠르게 달리도록 하는 것을 우선하게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 의료는 병원 안에 의사들의 손 위에만 놓여 있지 않습니다. 정상과 평균의 기준도 흔들립니다. 휴 허 교수의 업적은, 장애가 말 그대로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평균치를 뛰어넘는 능력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아픈 사람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을 넘어서 슈퍼맨으로 만들었다고 할까요. 환자와 정상인과 신의 경계가 무너졌습니다.


아씨가 그렇게 크지만 않다면 회초리로 때려 주겠어요.

“시내에 가거든 그걸 사다 줄 수 없겠어? 루주 말이야.”

“뭐라고요?”

“알 것 없어. 그냥 루주 달라고 해.”

“전 뭔지도 모르는 것을 사러 갔다 올 수는 없습니다요.”

“그래. 그렇게 듣고 싶으면 말해 주지. 화장품이야, 얼굴에 바르는 거야. 빨리 다녀와!”

“화장품이요? 얼굴에 바르는 것! 아씨가 그렇게 크지만 않다면 회초리로 때려 주겠어요. 얼굴에 바르다니 그 무엇처럼……”(75)


남북 전쟁 당시만 해도 화장은 ‘그 무엇’ 같은 여자들이나 하는 천박한 행위였습니다. 엄격한 유모가 회초리로 맞아야겠다고 으름장을 놓을 정도였지요. 하지만 스칼렛은 정확히 지적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만큼 결과를 얻잖아, 안 그래?


사람들은 언제나 지금보다 더 낫게 더 뛰어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유모의 회초리 정도 규제로 예뻐지고 싶은 욕구를 누를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효과는 전파력이 강합니다. 이제 화장 않고 사람들 앞에 얼굴을 내밀면 게으르고 성의 없다는 핀잔까지 받습니다. 남성용 화장품 시장도 만만치 않습니다.


화장 다음에는 성형이지요. 성형외과는 사람 몸의 구조적인 변형이나 기형을 교정하고 재건하는 외과의 한 분야입니다. 교정과 재건으로 평균에 도달할 수 있다면 다음에는 평균 이상을 바라게 되겠지요. 채용 공고에 용모 단정이라는 문구를 버젓이 집어넣고 외모를 경쟁력으로 취급하는 나라에서 성형 수술이 늘어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이 팍팍해지면서 외모도 취업을 위한 스펙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자녀를 위해 적절한 성형외과 의사를 소개해 달라는 진지한 부탁을 들을 때가 많습니다. 회초리는 옛날이야기이지요.


72. King B, Lightman A, Rangaswami J.P. 증강현실: 미래의 창; 2016.

73. Fukuyama F. Human Future 부자의 유전자 가난한 자의 유전자: 한국경제신문; 2003.

74. Nesse R, Williams G.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 사이언스 북스; 1999.

75. Mitchell M.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동서문화사;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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