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하는 다음 의료-강화

10. 차라리 나가서 담배를 피워.

by 최윤재

전공의 시절, 모자라는 능력으로 산처럼 쌓인 일들을 해결하느라 늘 수면 부족이었습니다. 커피 잔을 손에 들고도 졸았습니다. 당연히 아무 데고 커피를 흘리거나 엎질러서 민폐를 끼쳤지요. 전자 차트가 없던 시절에, 걸핏하면 종이 차트에 커피를 쏟는 저를 참다못한 동료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차라리 나가서 담배를 피워. 언제나 맑은 정신으로 유능하게 일처리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인지 기능과 주의력이 감소하는 질환에 쓰이는 약제들이 있습니다. 알츠하이머 병은 인지 기능이 감소하는 대표적인 질환입니다. 흔히 아리셉트(Aricept)라는 약을 처방받습니다. 이 약은 주의력을 유지하고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아세틸콜린(acetylcholine)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증가시킵니다. 주의력결핍장애(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ADHD)에 처방하는 리탈린(Ritalin)이나 애더럴(Adderal)은 각성효과가 있습니다. 과다주간졸음(excessive daytime sleep)이 있거나 교대근무를 하는 사람에게 처방하는 프로비질(Provigil)은 각성 상태를 유지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2007년 케임브리지 대학 심리학과에서, 주변의 교수들이 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 이런 약을 복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보고하자(76), 어마어마한 반응이 일어났습니다. 네이처(Nature) 저널은 한 주의 독자 서신란을 모조리 이 보고에 대한 투고로 할애하고, 따로 온라인서베이를 실시할 정도였습니다. 비공식적인 서베이에서 인지능력강화를 위해 약을 복용한 적이 있다고 답한 네이처의 독자들은 20%에 달 했습니다(77). 네이처를 일상적으로 읽는 사람들이란 대부분 학계에 속한 사람들이지요. 학계 사람들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경쟁도 삼엄합니다. 육체노동 비중이 적고 대부분 정신노동이니 맑은 정신 상태를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겠지요. 내가 내 일 잘하려고 약 먹고 잠 깨는 게 뭐가 나쁘냐, 그럼 커피도 마시면 안 되냐,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어집니다. 성과를 올리기 위해 오랜 시간 일하는 것은 아무도 비난하지 않습니다. 최근 들어 숙면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개미와 베짱이의 윤리가 더 우선입니다. 잠을 줄여가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높이 평가됩니다. 경쟁 사회에서는 커피든 약이든 먹고서 성과를 내는 게 우선입니다.


이 약은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게 해 줘요.

교수가 약을 먹으면서 학생들에게 안 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미 미국과 유럽의 대학생 사이에는 이런 ‘학업용’ 약물 사용이 드문 일이 아닙니다(78, 79). 일자리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성적 압박이 가중됩니다. 애더럴은 ADHD와 기면증 환자에게 처방이 허용된 약이지만, 장시간 지치지 않고 높은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이유로, 처방받지 않은 정상인들의 사용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애더럴은 암페타민(amphetamine)을 포함합니다. 필로폰 성분인 메스암페타민(methamphetamine)과 같이 암페타민 계열로 분류합니다. 한국에서는 애더럴을 마약류로 분류하여 처방 및 반입 금지 약물입니다]. 처방전이 필요한 비싼 약이지만 주변의 부유한 학생들에게서 얻거나 불법적인 경로를 통해서 확보합니다(80). 학생들이 이 약을 복용하는 이유는 성과를 내기 위해서입니다. 이 약은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게 해 줘요. 새벽 두 시에 도서관에서 어질어질하고 기절할 것 같은 느낌인데, 주위 책상에는 빳빳한 자세로 앉아 과제 준비에 열을 올리는 학생들만 보인다고 상상해 보세요. 대학 생활 중에 이런 압박감에 한 때 애더럴을 복용했던 학생의 말입니다(81).

ADHD는 소아와 청소년에서 흔히 보는 질환으로 여러 나라에서 8-12%의 빈도로 보고됩니다. 한국의 빈도도 유사합니다(82). 걱정되는 것은 약물 처방이 급격히 늘었다는 점입니다. 덴마크에서 시행한 대규모 연구에서, 1990년부터 2001년 사이에 약물 처방은 5배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83). 미국에서는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5% 이상이 ADHD로 약물을 복용합니다(83). 한 교실에서 한 두 명은 약을 먹는다는 말이지요. 자녀가 경쟁사회에서 뒤처질까 초조해하는 부모가 ADHD 진단과 약 처방을 요구하는 경우도 늘어납니다.


가까이 지내는 분이 의논을 해 왔습니다. 학교 선생님이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두고 ADHD가 의심되니 진료를 받아보라 하셨다고 합니다. 집에 놀러 와서 한 시간 동안 꼼짝도 않고 프라모델만 조립하던 아이를 보고 너무 얌전한 게 아닌가,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하고 잘 못 어울리는 게 아닌가 걱정하던 저로서는 놀랄 일이었습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셨냐 묻자, 수학 성적이 좋지 않아서라고, 학급에서 많은 아이들이 상담을 받는다고 하십니다. 물론 ADHD 아이들이 집중력이 떨어져 성적이 좋지 않을 수 있지만, 한 반의 성적이란 정규분포를 따르는 데, 평균보다 아래라고 해서 ADHD를 의심하다니, 이 진단이 얼마나 흔해졌는지 아연할 뿐입니다.

이런 약물을 어린 시절에 복용하면 성인이 되었을 때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에 대해서는, 정보가 부족하고 연구 결과도 상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 모른다는 말이지요. 따라서 전문의가 철저히 관리하고 감독하여야 하는 약제입니다. 그러나 처방이 늘어날수록 쉽게 주변에서 접할 수 있고, 따라서 환자가 아닌 정상인이 ‘학업용’으로 복용하는 빈도가 점점 늘어납니다. 한국에서는 애더럴이 금지 약물이라 정상적으로는 유통되지 않습니다. 메틸페니데이트(methylphenidate) 계 약물인 리탈린은 ADHD 환자에게 처방이 가능합니다. 이 약은 신경전달물질의 하나인 노르아드레날린(noradrenaline)의 수치를 높여 집중력 저하를 감소시킵니다. 2015년 월별 메틸페니데이트 계열 약물 처방액이 수능이 가까운 10월에 최고치에 달했다가 11월에 30% 이상 감소했다는 보도는 놀랍습니다(84). ADHD는 전염병이 아닙니다. 환자가 10월에만 급증할 이유가 없지요. 어떤 경로로 소비가 되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으나, 대학입학시험이 온 나라를 들었다 놓는 상황에서 연관성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건물마다 커피 전문점이 하나씩 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보고에 따르면 한국인은 2016년에 성인 1인당 연간 377잔의 커피를 마셨고, 커피 소비량은 2012년 이후 연평균 7퍼센트의 증가 추세를 보인다고 합니다. 카페인은 중추 신경 각성 효과로 아주 쉽게 쓰이는 흥분제입니다. FDA로부터 안전하다고 인정받았지만, 과량을 복용하면 심각한 위해를 일으키고, 드물지만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습니다. 어린이에게 카페인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제대로 연구된 바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최근 어린이와 청소년에서 카페인 소비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는 정확하게 에너지 드링크 판매의 증가와 연결됩니다. 에너지 드링크 광고의 주된 목표도 청소년층입니다. 에너지 드링크 한 캔에 포함된 카페인은 커피 다섯 잔 분량(500mg)에 까지 이르며 당분 함유량도 높습니다. 과량의 카페인과 당분은 식사와 수면에 영향을 미칩니다. 발달 중인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되지 않았고, 중독의 위험을 지적하는 논문도 있습니다(85). 에너지 드링크가 청소년의 건강에 여러 가지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와중에, 학교 주변 편의점의 에너지 드링크 판매가 급증하고 있습니다(86). 한국에서도 ‘학업용’ 약제에 대한 수요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현대 생명공학기술이 인간 본성을 변화시켜 포스트휴먼(posthuman) 혹은 트랜스휴먼(transhuman) 상태로 몰고 갈 것이라고 우려합니다. 이렇게 변형된 트랜스휴먼은 한 종으로 유지해 온 연속성을 상실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가질 수 없다고 말합니다(73). 후쿠야마는 포스트휴먼과 트랜스휴먼을 뭉뚱그려 썼지만, 약간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포스트휴먼은 그 기본적인 능력이 근본적으로 현재의 인간을 넘어서기 때문에 현재의 기준으로는 더 이상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는 존재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옥스퍼드 대학의 철학자 닉 보스트롬(Nick Bostrom)이 제안한 개념입니다. 그는 건강 수명이나 인지, 감정이 현재의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한의 한계를 엄청나게 넘어설 경우, 포스트휴먼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했습니다.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이란, 이런 포스트휴먼으로 가는 변화를 긍정하고 지지하는 운동입니다. 보스트롬은 1998년 세계트랜스휴머니스트 협회(Humanity+)를 설립했습니다. 여기서 트랜스휴머니즘은 “노화를 제거하고, 인간의 지성적∙육체적∙심리적 능력을 향상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확대함으로써 인간 조건을 근본적으로 향상하는 것의 가능성과 그 바람직함을 긍정하는지 적∙문화적 운동”이라고 공식적으로 정의하였습니다. 트랜스휴먼이란 현재의 인간과 포스트휴먼 사이 중간형태를 가리키는 과도기의 인간을 나타내는 말입니다(87).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는 드러내놓고 후쿠야마가 언급한 인간의 존엄성이란 잠재적으로 위해하기까지 한 멍청한 개념이라고 지적했습니다(88). 보스트롬은 트랜스휴먼도 존엄성을 가질 수 있고, 약은 질병 이상을 치료하는데 쓰일 수 있다고 의견을 내세웠습니다(89, 90).

존엄성의 문제는 일단 접어두고라도, 질병 이상을 치료하는 약의 부작용이 없거나 미미하다면 보스트롬의 의견대로 이런 인지강화(cognitive enhancement)가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휴 허의 의족이나 미용 성형술은 정상의 기준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나중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애더럴이나 에너지 드링크가 남용되는 사회에서, 부작용 걱정이 없는 새로운 인지강화약제가 개발된다면 복용을 금지할 근거가 있을까요.


76. Sahakian B, Morein-Zamir S. Professor's little helper. Nature. 2007;450(7173):1157-9.

77. Maher B. Poll results: look who's doping. Nature. 2008;452(7188):674-5.

78. Petrounin D. European student’s use of ‘smart drugs’ is said to rise. the New York Times. 2014.

79. Nature Editorials. Enhancing, not cheating. Nature. 2007;450(7168):320.

80. Vrecko S. Everyday drug diversions: a qualitative study of the illicit exchange and non-medical use of prescription stimulants on a university campus. Soc Sci Med. 2015;131:297-304.

81. Lythcott-Haims J. 헬리콥터 부모가 자녀를 망친다:두레; 2017.

82. Kim MJ, Park I, Lim MH, Paik KC, Cho S, Kwon HJ, et al. Prevalence of Attention-Deficit/Hyperactivity Disorder and its Comorbidity among Korean Children in a Community Population. J Korean Med Sci. 2017;32(3):401-6.

83. Dalsgaard S, Nielsen HS, Simonsen M. Five-fold increase in national prevalence rates of attention-deficit/hyperactivity disorder medications for children and adolescents with autism spectrum disorder, attention-deficit/hyperactivity disorder, and other psychiatric disorders: a Danish register-based study. J Child Adolesc Psychopharmacol. 2013;23(7):432-9.

84. 신윤애. 집중력 높이는 약이 수험생에게 미치는 부작용. 헬스중앙. Sep 22, 2017.

85. Temple JL. Caffeine use in children: what we know, what we have left to learn, and why we should worry. Neurosci Biobehav Rev. 2009;33(6):793-806.

86. 이지은, 허 완, 최은주. 대학생들의 고카페인 에너지음료 소비실태 및 부작용 분석. 약학회지. 2013;57(2):110-8.

87. 신상규. 호모사피엔스의 미래: 아카넷; 2014.

88. Pinker S. The stupidity of dignity. The new republic. May 28, 2008.

89. Bostrom N. Drugs can be used to treat more than disease. Nature. 2008;451(7178):520.

90. Bostrom N. In defense of posthuman dignity. Bioethics. 2005;19(3):2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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