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초기의 제주는 분명히 설렘이었다.
산이 가까웠고, 바다가 가까웠다. 친구들이 놀러 오면 동서남북으로 데리고 다녔다. 협재의 바다를 보여주고, 성산의 해를 보러 가고, 오름에 올라 바람을 맞았다. 친구들은 말했다.
“너는 매일이 여행이네.”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적어도 처음 몇 달은 그랬다. 매일이 소풍처럼 느껴졌고, 매일이 사진으로 남겨졌다. 하지만 여행과 생활은 다르다. 여행은 돌아갈 곳이 있고, 생활은 머물러야 할 곳이 있다. 여행은 목적지를 소비하지만, 생활은 그곳을 일상으로 만들었다.
제주 시골의 밤은 빠르게 찾아왔다. 오후 네 시가 지나면 가게들이 하나둘 문을 닫았다. 도시에서 당연하게 누리던 24시간 인프라는 존재하지 않았다. 영화관도, 전시회도, 늦은 시간까지 불이 켜진 식당도 드물었다.
그 고요함은 처음에는 낭만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무료함으로 변했다. 그리고 무료함은 외로움으로 이어졌다. 도시의 편의가 사라지자, 작은 불편이 크게 느껴졌다. ‘오늘 뭐 하지’라는 질문이 매일 밤 반복되었다. 친구들이 모두 돌아가고, 카페는 문을 닫았다. 사람의 소란이 사라진 뒤 남는 것은 자신만의 숨소리뿐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나만의 시간을 채우는 법을 배웠다. 저녁에는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가끔은 작은 산책을 했다. 혼자 서서히 익숙해지는 연습을 했다. 초반의 낭만은 점차 생활의 일부가 되었고, 외로움은 서서히 덜 아픈 동반자로 변했다. 제주는 결국 나에게 시간이란 단어를 다르게 써보게 만들었다.
그것은 채움의 시간이자,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