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으로 제주도 집을 검색했다. 화면 속 사진들은 하나같이 아름다웠다. 햇살이 잘 들고, 마당이 있고, 바람이 지나가는 길이 보였다.
화면 속 집들은 마치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저마다의 매력을 뽐냈다. 유리창으로 쏟아지는 빛, 서늘한 색감의 현무암 돌담, 나무로 만든 작은 대문. 사진을 하나하나 넘길 때마다 마음은 조금씩 풀렸다. 그중 하나의 집이 눈에 들어왔다.
현무암 돌담이 둘러싸고 있었고, 작은 마당이 있었다. 카페와 집, 스테이를 함께 운영할 수 있는 구조였다. 마치 내가 오래전부터 상상해 온 공간 같았다. 사진 속 집은 제주의 시간을 그대로 담고 있는 듯했다.
사진은 한 장의 약속처럼 보였다. 가능한 한 실제가 그 약속에 가깝기만을 바랐다. 그래서 나는 그 집의 소개 글을 여러 번 읽었다. 부동산과 연락을 주고받고 집을 보고 집주인과 만났다. 집주인은 친절했다. 지나치게 친절했다. 웃음이 많았고, 말도 부드러웠다. 하지만 설명을 들을수록 어딘가가 매끄럽지 않았다. 미묘한 어긋남.
나는 촉이 좋은 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중요한 순간마다 그 촉을 무시한다.
사실 촉은 늘 옳은 것은 아니다. 촉은 때로는 걱정과 결합되어 과잉 반응을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객관적 증거를 찾으려 했다. 계약서의 조항, 집의 상태 같은 것들. 하지만 설렘은 그런 절차를 빠르게 건너뛰게 만들었다. ‘그냥 이 집이면 되겠다’는 생각이 마음을 밀어붙였고, 결국 나는 계약서를 썼다. 설렘이 의심을 눌렀다.
계약이 끝난 후 집에 다시 들어갔을 때, TV가 사라져 있었다. 계약 당시 포함되어 있던 옵션이었다. 특약으로 명시했던 천장 벽지 재도배도 약속과 다르게 진행되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섬은 풍경만 다른 게 아니라, 일의 속도와 방식도 다르다는 것을.
이해와 실망은 손쉽게 교차했다. 섬의 삶은 느슨한 신뢰가 기반이 되기도 하는데, 그 빈 공간은 때로는 대수롭지 않은 실수로 채워진다. 그러나 그 실수는 큰 비용을 남기기도 한다. 분노보다는 허탈함이 컸다. 하지만 이미 계약은 끝났고, 나는 이곳에서 살아야 했다.
나는 가구를 구하고 바닥을 닦았다. 작은 수습의 연속이었다. 하루는 전등을 고치고, 또 하루는 주방 수납장을 조정했다. 공간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조금씩 나의 것이 되어갔다. 그 과정에서 나는 집에 대한 감정을 재정비했다. 집은 완벽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매일 들어가 쉬고, 일을 시작하고, 그림을 그리는 곳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제주에서의 첫 교훈은 이것이었다.
계약은 사람을 믿는 일이 아니라 문장을 믿는 일이다.
문서는 불완전한 사람의 마음을 대신해 약속을 고정한다. 사람의 말은 사라지지만 문장은 남는다. 그 단순한 진실은 당장은 피곤했지만, 내 생활을 앞으로 더 단단하게 만드는 지점이 되었다. 이후의 선택들은 좀 더 신중해졌고, 작은 약속 하나도 문장으로 남기려 했다. 그렇게 조금씩 ‘섬에서의 일’은 내 방식으로 자리 잡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