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하늘을 가로지른 비행기가 제주도 위를 날고 있을 때, 바다는 밤하늘처럼 검은 저녁이었다. 까만 수면 위에 떠 있는 배들의 불빛이 마치 별빛처럼 반짝였다. 나는 창가에 얼굴을 붙이고 그 장면을 오래 바라봤다.
어떤 풍경은 말이 없어도 설명이 된다. 노을과 바다, 그리고 드문드문 반짝이는 배들의 불빛은 나에게 ‘여기에서 시작되는 시간’을 말해주고 있었다. 창밖의 풍경은 서서히 다른 리듬을 제시했다. 도시에서는 누구보다 빨리 움직이는 것이 미덕이었다면, 이곳은 반대로 천천히 볼 줄 아는 사람들이 미덕인 듯 보였다.
저 아래 어딘가에서 내가 살게 될 시간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 생각은 예상보다 깊게 다가왔다. ‘살게 될 시간’이란 단어는 단순한 거주를 뜻하지 않았다. 일상의 작은 의식들, 아침의 시작과 함께하는 따뜻한 차와 커피 준비, 창문 닦기, 지나가는 이웃에게 건네는 인사는 새로 시작되는 시간의 주인공이 될 거라는 뜻이었다. 밤의 바다를 보며 나는 작은 결심을 더했다. 매일의 금전적·사회적 목표보다, 하루의 풍경을 온전히 느끼고 마음에 담는 일을 더 귀하게 여겨보겠다고.
비행기가 착륙을 준비할 무렵, 나는 핸드폰 메모장을 꺼내 첫 문장을 적었다. 그 문장은 나중에 이 글의 시작이 되었고, 지금 당신이 읽는 문장의 토대가 되었다. 노을과 함께 시작한 시간은 어쩌면 끝까지 노을을 닮아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 길지도, 그리 짧지도 않은, 서늘한 빛으로 모든 것을 물들이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