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호. 카페인더뷰
아침 식사를 늦게 한 탓에, 점심은 빵과 커피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따뜻한 햇살과 좋은 뷰가 있는 카페가 좋겠다 생각한다. 그렇게 집에서 약 10분 거리에 있는 [ 카페인더뷰 ]를 찾아가기로 한다.
왕송호수가 보이는 길가에 위치한 카페인더뷰는 외관3층, 큰 통창, 무엇보다 엘리베이터만 보더라도 발걸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해 보인다. 입구의 바로 왼쪽에는 사람들이 주문을 하고 있고, 그 뒤로 서너명의 직원들이 주문받은 메뉴를 준비하고 있다. 오른쪽에는 맛있는 빵들이 즐비해있고, 사람들은 저마다 쟁반을 들고 빵을 고르는데 여념이 없다.
"방금 오신 분들은 손세정제 이용 부탁드립니다."
손세정제를 손에 듬뿍 뿌린 뒤, 자리를 빠르게 선점하기 위해 2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오른다.
내가 앉았던 소파 테이블.
2층에 막 도착하니, 원형 테이블 하나에 3대 가족이 모여 앉아있다. 아마 집에 있는게 답답해서 나왔을 것이다. 그러다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와 눈이 마주친다. 자연스레 시선을 피해 주위를 둘러보니 그 테이블을 제외하고는 텅텅 비어있다. 이 시간에 이렇게 비어있다고? 다행이도 큰 통창 앞에 따뜻한 햇살이 잔뜩 비추는 푹신한 소파 테이블이 비어있다. 입고 있던 패딩을 벗어 던짐으로써 내 자리가 되었음을 선포한다.
지갑5년 넘게 썼더니 꽤나 헐거워졌다과 휴대폰아이폰SE2을 챙겨 들고 다시 1층으로 향한다. 좀 전까지 사람들이 엄청 많았는데?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쟁반을 집어드는데, 이상하게도 집게가 하나도 없다. 직원에게 집게를 하나만 달라고 말해야겠다. 뒤를 돌아보니 직원들이 너무도 바삐 움직이는 까닭에 괜시리 피해가 될까 싶어금세 내가 알바했을 때의 경험을 떠올렸다 입을 꾹 다문다. 그리고선 봉지에 담긴 빵을 집어든다. 역시 말을 안하길 잘했다. 빵과 함께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바로 옆 쇼케이스에 있는 우유크림롤케이크가 눈에 들어왔다. 쇼케이스에 갇혀있는 이 빵은 나를 먹어달라며 애원하는 눈빛을 마구 보내는데, 도저히 저버릴 수 없다. 결국 빵을 두 개 시켰다.
빵과 커피를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앉자마자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산미가 덜하고 고소해사실 커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은 전혀 없고, 그냥 아는 체 하고 싶다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는 봉지에 담긴 빵을 꺼낸다. 나뭇잎 모양의 우드 재질의 그릇에 빵들을 올려놓고는 이리저리 사진을 찍는다. 결과물을 보고는 내 촬영 능력이 썩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인스타에 올릴까 고민하다가 그냥 사진을 찍은 것만으로 이내 만족한다. 아이폰은 잠시 내려두고 왼손에는 포크를, 오른손에는 칼을 쥔다.
‘너의 속살을 끝도 없이 파내려가주지.’
아주 비열하고 냉혈한 살인자마냥 가차없이 썰기 시작한다.
‘자, 이제 네 차례다.’
이번에는 포크를 들고 마구잡이로 살을 도려난다. 그리고는 마구잡이로 뜯어먹는다. 마침내, 나는 아주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인스타에 올릴까 고민했던 바로 '그' 사진
(좌) 어니언치즈빵 3,800원 (우) 밀크 롤케이크 4,500원
창밖을 내다본다. 늦은 오후아마2-3시였던 걸로 기억한다였음에도, 코로나로 지친 사람들의 끝없는 산책 행진이 이어진다. 커피를 마시는 중년의 부부, 강아지와 산책을 나온 20대 여자, 턱에 마스크를 걸치고그러다 코로나 걸린다 침을 뱉으며 지나가는 10대 무리들 등 참으로 각양각색이다. 그래도 날씨가 따뜻해서인지 옷차림이 가볍다. 롱패딩을 입은 사람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가벼운 바람막이나 가디건 정도를 걸치고 있을 뿐이다. 셔츠만 입고 돌아다닐 수 있는 계절이 오기를 잠시동안이나마 바라본다.
어느새 잔의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지막 한 모금을 끝으로 잔을 내려놓으려 하다, 테이블에 붙어있는 iloom이 눈에 들어온다.
‘호오.. 돈을 좀 썼겠는걸?’
생각해보니 화장실에 있는 핸드드라이어마저 다이슨 제품이었다. 이 카페를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돈을 썼을까 잠시동안 생각에 잠긴다. 머리 속 계산기사실 내가 가진 계산기는 문과용이라 더하기 기능도 잘 작동하지 않는다를 두드려도 해답이 나오질 않는다. 에라이, 모르겠다!
2층 창가에서 바라 본 왕송호수. 밖으로 보이는 왕송호수는 참 예쁘더라.
이제 슬슬 일어나야겠다. 벌써 카페에 온지도 2시간이 다되어간다. 그릇은 왼쪽에, 잔은 오른쪽에. 사용했던 포크와 나이프를 정갈하게 올려 놓고, 버리기 좋게 휴지를 모아둔다. 이건 알바를 오래 하면서 생긴 정리하는 습관덕분이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한 커플이 내 쪽을 슬며시 쳐다본다. 아마 내가 이 자리에서 일어나면 자리를 옮길 생각인가보다. 일어나는 척 하면서 조금 더 있어볼까 장난기가 발동한다. 하지만, 그건 너무 귀찮은 일이다.
"감사합니다. 안녕히가세요!"
기분좋은 끝인사에 나도 덩달아 "네. 수고하세요."라고 대답한다. 노을이 슬며시 지는 하늘이 보인다. 그대로 잠시 걸었다. 집에 가면 왠지 잠이 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