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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윤 Nov 26. 2019

치킨 먹다가 세콤이 출동했다

새벽에 다들 고생 많았어요

 4명의 친구들과 함께 새벽 2시에 우리 집에 왔다.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 샴페인과 보드카를 마신 후였다. 나는 내 방에 들어오자마자 눈앞에 보이는 잠옷을 입고 침대로 돌진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니 쏘가 내 옆에서 자고 있었다. 갑자기 방문이 열리고 친구들 모두 내방으로 들어왔다. 두 명이서 자기도 좁은 침대에 두 명이 더 올라왔다. 네 명이서 한 침대에서 웅크려 누웠다. 쏘는 여름 반바지에 긴 발을, 솔은 수면 원피스에 수면 바지를, 워니는 아디다스 삼선 바지를 입고 있었다. 책상 앞 의자에 앉은 은이는 어제 외출복 그대로였다.


"나 어제 이불 없이 자서 추워 죽는 줄 알았어." 원이가 말했다.


 나는 친구들에게 이불 아니 잠옷 바지 하나 안 꺼내 주고 잠들었다. 알아서 옷장 서랍에서 꺼내 입거나 안 꺼내 입은 거였다. 미안했다. 집에 초대해놓고 니들 알아서 놀아라 했으니.


 "어제 세콤 아저씨가 출동했어. 동생도 어제 개 빡쳐서 집에 왔어."


응? 동생은 엄마 아빠랑 병원에서 잔다고 했는데. 세콤은 아저씨는 또 뭐고?




 우리 집에 세콤이 설치되어있다. 내가 한 달 동안 발리 여행 갔을 때 엄마 아빠는 병원에 있고, 동생은 부산에 있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 아무나 들어올까 봐 엄마는 걱정했다. 그런데 엄마가 시간 내서 집에 들렀었는데, 현관문에 나사 하나가 풀려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엄마는 놀라서 그날 바로 세콤에 연락하고 보안장치를 설치했다.


 세콤은 안전한 만큼 불편하다. 집에 들어오면 집 안에서 다시 한번 비밀번호를 눌러서 '경비 해제'를 해야 한다. 현관문이 꽉 잘 맞물려서 잠겨있어야 한다. 비밀번호를 누르지 않거나 문이 살짝이라도 열려 있으면 침입자가 있다고 여긴다. 집주인이 집에 잘 들어왔다는 것을 세콤에 알려야 하는 것이다.




 내가 깊은 잠을 자던 새벽에 친구들은 배고팠다. 치킨을 시켰다. 치킨 배달부한테 치킨을 받고 집 대문을 꽉 닫지 않았다. 세콤은 바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새벽 4시에.


 "너네 엄마가 전화를 겁나 많이 했는데 우리가 안 받았어. 그래서 출동했데." 솔이가 말했다.

 "엥 왜 안 받았어?" 내 핸드폰을 보니, 엄마한테 9통, 동생한테 4통의 부재중이 찍혀 있었다. 나는 자느라 못 받았지만, 너네는 치킨이 생각날 정도로 정신이 말짱했는데.


 이유는 즉슨 치킨 배달부가 우리 집 벨을 눌렀는데, 애들이 문을 안 열어줘서 전화를 몇 번이나 했었던 것이다. 애들은 치킨을 받은 후에도 치킨 배달부가 전화하는 줄 알고 안 받았다고 한다. 자기네 핸드폰으로 주문해놓고, 배달부가 우리 집 번호를 어떻게 알겠냐고.


"왜 문을 안 열어 줬어?"

"우리는 벨이 울리길래, 문열림 눌렀다? 그런데 계속 안 열렸어. 너네 집 문은 열리는데, 1층 입구에서 문이 안 열리는 거야."

"그래서 배달부는 어떻게 들어왔는데?"

"몰라. 어떻게 들어왔더라. 여기 집 앞까지 올라왔는데 겁나 짜증 내더라고. 새벽 4시에 피곤하지 우리는 문도 안 열어주지 짜증낼만 해. 세콤 왔는데도 우리가 한참있다가 문 열어줬어. 치킨 배달부인 줄 알고. 우리한테 집착하는 줄 알았어."


 그래. 4병의 다른 술이 너네 머리를 뒤섞어 놨겠지. 집 설명을 안 한 내가 잘못이지. 세콤이 너무 예민하지. 주거침입이 빈번하게 발생하니까 4대 1 쪽수가 아무리 많아도 무서웠겠지.


 치킨을 한 열 번 정도 들으니 치킨이 먹고 싶었다. 식탁에 가보니 몇 개 먹지도 않은 양념 치킨이 있었다. 나는 그대로 방으로 가져와서 치킨을 뜯기 시작했다. 동생의 발소리가 들렸다.


"언니! 내가 어제 새벽 4시에 30분에 택시를 타고 이렇게 집에 와야겠어? 그 나이 먹고 5살이나 어린 동생을 이렇게 걱정시킬래? 나 어제 진짜 손 벌벌 떨면서 집에 왔다고!"

"그래. 걱정 많았겠다. 미안해. 근데 나는 자느라 몰랐어."

"자느라 몰랐다고 할 소리야? 친구들 데리고 왔으면 언니가 잘 챙겨야지."

"그래 맞아. 치킨 먹을래?"

"아니! 됐어!"


 흑흑. 동생한테 단단히 혼났다. 그런데 왜인지 모르게 억울했다.




 며칠 뒤 엄마 아빠를 보러 병원에 갔다. 엄마한테 혼날까 봐 병원 가기 전까지 연락 한번 안 했다. 병원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엄마가 세콤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괜히 민망해서 센 척했다.


"세콤 선 다 뽑아 버릴 거야! 그걸 설치를 왜 해서 괜히 왜 걱정만 늘려! 설치 안 했으면 모를 일이고 신경 쓸 일도 아니잖아. 그 새벽에!"

"에휴. 말을 왜 그렇게 해. 이미 설치해서 앞으로 3년은 써야 해. 이거 사진 봐봐. 이렇게 모자 쓴 남자가 사진에 찍혔어. 얼마나 무서웠는데. 집에 들어왔는지 어쩐지 모르니까 얼마나 걱정했다고."

"치킨 배달부였어. 그런데 왜 이렇게 사진 두 개밖에 안 나와? 동영상 촬영은 안되나?"

"응. 그냥 이렇게만 찍히더라? 세콤 설치한 곳이 한두 개겠어? 다 보관하고 계속 감시하고 있을 수는 없겠지."

"나는 자느라 몰랐다고. 동생도 나한테 엄청 뭐라 하고. 세콤이 아니라 세콤 보고 있는 엄마한테 감시당하는 기분이야."

"그러니까 앞으로 친구들 와서 놀면 미리 말해. 그러면 엄마가 경비 해제해놓지. 너 어차피 내가 하지 말라고 해도 다 할 거잖아."


 우리 엄마는 갈수록 말랑거려지는데, 나는 자꾸만 딱딱해진다. 센 척 그만해야겠다. 그리고 새벽에 치킨 때문에 참 많은 사람들이 욕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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