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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윤 Oct 15. 2019

팔팔 끓어야만 사랑인가요

강신주의 감정수업을 읽고

  

 작가는 감정이 움직여야 사람, 사물, 사건이 유의미한 것으로 다가오고, 감정을 구분하고 이해함으로써 충만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감정을 간단하고 명료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파트별로 나누어, 감정의 선을 선명하게 구분 짓고 있다. 그래서 감정의 종류와 특성을 파악하기는 쉬웠다.


 아쉬분 부분도 있다. 작가의 사랑에 대한 관점이 협소하게 느껴졌다. 특히, '경탄' 파트를 읽으면 읽을수록 불편했다.





•48p. 잿빛 삶이 핑크 빛을 띠게 되는 기적을 그 누가 바라지 않겠는가? 사랑은 경탄과 함께 시작되고, 경탄과 함께 유지되는 법이다. 결국, 내 마음속에 애인에 대한 경탄이 없어졌다면, 사랑은 이미 덧없는 옛이야기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0p. 청혼이 이루어지는 순간, 두 사람은 새로운 가족, 새로운 무리로 묶이게 된다. 바로 이때가 불륜 관계가 해체되는 시점, 즉 사랑이랑 감정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52p. "범상함을 초월하려는" 노력이 사라지는 순간, 다시 말해 "너절한 타성에 빠져 그저 생리적인 욕구나 채우려고 만나는 관계"가 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서로에 대해 경탄의 존재로 남을 수 없게 된다. 어쩌면 애인이나 부부 관계보다 불륜이 사랑을 유지하는 데 더 유리한 조건인지도 모를 일이다.





 작가의 말대로라면 편안하고 안정적인 관계에서는 사랑을 지속하기 어려운 것인가. 긴장하고 불안정하고 선을 두고 거리를 유지하며 신비로운 존재로 보여야 하는가.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부부 사이에는 사랑이 남아 있지 않을까. 여러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30년 가까이 계약관계로 묶여 있는 부모님께 여쭤보았다.


"엄마 아빠는 서로 사랑해?"

"응, 사랑하지."


 두 분은 턱을 살짝 들고 가냘프게 뜬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옅은 미소와 함께.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해?"

"무조건적인 거지. 힘들고 어렵고 슬퍼도 감싸 안고 함께하는 것이지."

"작가가 사랑을 유지하려면 상대방에게 '경탄' 포인트를 계속 찾아야 한데. 언제나 긴장하고 떠날 준비를 하면서."

"그렇게 귀찮게 따지면서 어떻게 살아. 편하게 사랑하면 되지."



 그렇다. 까치집을 머리에 달고 눈곱 낀 얼굴을 마주 보며 아침밥을 먹고, 밤 10시 소파에 드러누워 드라마를 보며 방귀 한번 뿡 뀌고 엉덩이를 털기도 하고, 오늘 하루 무엇을 했는지 어땠는지 물어보지 않아도 얼굴 한번 쓱 보고 육포에 맥주 한 캔 하자고 물어보는 이런 '범상한 관계'에서도 사랑이 있다.

 

 우리 부모님은 오랜 세월로 겹겹이 쌓인 믿음과 신뢰로 죽을 때까지 함께 한다는 무언의 약속을 지키고 있다. 이들의 사랑은 손 델 듯 뜨겁지 않지만 은은한 온기를 유지하며, 때론 식기도 하지만 대화와 화해를 통해서 온도를 올리기도 한다.


   나는 이성과 몇십 년간 연애하거나 결혼을 해보지 않았다. 사랑이 무엇인지 고민해봤지만, 사랑을 한 문장으로 쓰기는 여전히 어렵다. 그러나 '경탄'이 남아있을 때만 사랑이라는 것, 모든 사람에게 사랑의 유효기간과 조건을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

 

 함께 살면서 새로운 모습만 발견하고 경탄, 기쁨의 감정만 지속할 순 없다. 색다를 거 없는 반복되고 무료한 일상 속에서도 묵묵히 서로를 바라보고 곁에 머무르는 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헌신적이고 안정된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단언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사랑의 모양은 사람의 모양처럼 각각 다르다. 사랑을 단 한 가지 모습으로만 존재한다는 것은 개개인의 고유한 가치관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다채로운 사랑의 모습을 이해하고 인정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쩌면 내가 사랑을 한 문장으로 적지 못한 것이 원래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2016년 5월 양떼목장에서 내가 찍어준 우리 부모님



2018년에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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