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s Seattle Jun 15. 2020

모범소수자의 굴레_두번째_교육열

미국식 맹부모조부모이모삼촌고모숙모삼천지교

미국에서 무섭게 아이를 잡으며 교육하는 동양계 부모를 호랑이 부모(tiger parents)라 부르지만, 나는 이게 전형적인 모범소수자(model minority)의 굴레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이목을 부드럽게 리하지 못하는 이민 일세대 부모를 일컫는 말이라면 모를까. 교육열 자체로만 보면 방계 가족들까지 본인의 인맥을 끌어들여 자기 집안 아이의 성공에 오랜 시간에 걸쳐 꼼꼼하게 공을 들이는 미국 중산층 이상의 교육열에는 이민자들이 범접하지 못 할 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력서에 쓰기에 번듯한 글로벌 회사나 정부 기관 짐만 되는 중고등학생 인턴자리가 허다한데, 대부분 그 기회를 만든 사람의 가족 혹은 지인의 아이들을 위한 것이다. 인맥이 부족한 이민자 부모들이 제한된 자원으로 기존 교육제도 틀 내에서 아둥바둥하는 모습이 기득권층 입장에서 밉살스럽게 보였을까? 호랑이 부모에 대한 이런 편견 아래 자란 요즘 동양계 부모들은 무난한 혹은 쿨한 부모로 비춰지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집 꼬맹이가 체력도 약하고 운동에 전혀 취미를 보이지 않아 요즘 즐겨 보는 만화 시크릿 쥬쥬에 나오는 발레를 가르쳐 보기로 했다. 마침 시립 발레단이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유아 교실은 선착순 입학이라 10개가 훌쩍 넘는 등급 별 반 중 가장 초급 반에 들어 갔다. 시립발레단은 아직 배가 볼똑 나온 아기 몸매의 학생들마저 대부분 올백 발레리나 머리를 하고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지금껏 본 적 없는 치열한 교육의 현장이었다. 자본주의 국가 미국에서 교육열을 대변하는 기부금 덕인지 모든 학생들이 매 수업 시간 그랜드 피아노에서 흘러나오는 생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었다.


정갈한 유니폼을 입은 꼬마 발레리나들이 춤을 추는 교실 밖 복도에는 바쁘게 사느라 퀭한 얼굴의 학부모들이 바닥에 주저앉아 미쳐 끝내지 못한 회사 일을 하거나 눈을 번뜩이며 정보 교환을 하고 있었다. 타인의 이목을 많이 의식하는 이 지역 사람들이, 10대 이후에 공공장소에서 이렇게 단체로 퍼질러 앉아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렇기에 도떼기 시장을 연상시키는 복도 관경이 매 주 새롭다.


유소년 발레단은 두 세달마다 바뀌는 정규 발레단 공연 프로그램에 맞추어 어린이 무용수 캐스팅 오디션이 끊이지 않는데, 오디션에 합격한 아이들 명단 앞에 긴장한 모습으로 모여있는 가족들 모습이 한국의 대학 합격 대자보를 연상 시킨다. 내가 한국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할 때까지 몇 번 밖에 겪지 않은 합격 여부의 스트레스를, 내 아이 반 친구들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수 없이 치르는 것이다. 고작 네 살인 우리집 꼬맹이도 발레교실 친구들은 어린이집이나 다른 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달리 서로 잘하는 것을 기뻐해주지 않는다고 호소한다.


또 눈에 띄는 것은 흑인 및 동양계 아이들이 많이 보이는 공식 웹사이트 사진과는 달리 실제 수강생의 대부분이 백인이라는 것이다. 우리집 아이 보다 한 단계 윗 반에 간만에 중국계 엄마가 보여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걸었더니 그 엄마가 뜬금 없이 본인을 빼어 박은  딸을 가르키며 '우리 아이 몸매 비율에서 볼 수 있듯 우리는 그냥 취미로 잠깐 하는 거다'고 말했다. 눈치밥에 상처를 많이 받은 듯한 모습이었다. 어린 시절 서유럽에서 혹독하게 치루었던 차별의 고단함을 2020년 시애틀에서 또 접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도 선생님들의 다양한 연령대, 인종, 몸매에서, 차별의 문제를 인정하고 바뀌려고 노력하는 모습의 흔적이 많이 보여 해볼만 하다고 느껴진다.


작가의 이전글 52년 만의 은퇴 end of an era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