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s Seattle May 19. 2020

부모가 본 부모의 민낯

"괜찮아요. 난 아직 아들이 하나 더 있으니까."

부모가 되면 그동안 주입 받아온 부모의 미화된 모습 뒤의 및낯을 알게 될 기회가 많아진다. 내가 본 가장 충격적이었던 민낯은 부모로서의 나의 자세에 큰 영향을 미쳤다.


나의 첫 산부인과 주치의는 한국 부모와 비슷한 점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유태인였고 중년의 엄마였다. 그녀는 친절하고 자신감이 넘쳤으며 본인의 옳은 생각을 무지한 젊은 부모들에게 나눠주려는 사명감에 불타 보였다. 일례로 모유수유를 부담스러워하는 나를 여러 달에 걸쳐 끈질기게 설득해 확실히 손을 들게 만들었다. 본인은 인간이 가장 바쁠 수 있는 인턴일 때와 레지던트일 때 두 아들을 2년씩 모유수유했다는데 현대의 편의를 누리고 사는 나같이 널럴한 직장맘이 감히 분유수유를 하겠다는 것은 나쁜엄마 선언이나 다름 없었다. 나와 나의 아이의 안녕을 책임 지는 그녀가 존경스러웠고 그녀를 흐믓하게 할 수 있어 기뻤다.


출산 예정일 4주 전 정기 검진에 그녀가 예고 없이 결석했다. 간호사들이 이리저리 바쁘게 알아보다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그녀의 21살 큰 아들이 집에서 뛰어 내려 자살했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물었고 3일 뒤에 정기 검진에 나와서 평소처럼 행동해 달라는 말을 들었다. 내 주치의가 그러길 원한다는 것이다.


다시 만난 그녀는 놀랍도록 침착했다.  간호사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줄줄 흘리는 내 앞에 말을 조금 더듬 거릴 뿐인 그녀는 담담히 아들이 원래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었으며 입원 대기 중에 그런 일이 생겼다는 것, 고작 3층 밖에 안돼는 집에서 효율적으로 자살에 성공했다는 것 등을 설명했다. 내가 너무 마음이 아파하니 그녀가 "나는 괜찮아. 아직 아들 하나가 더 있으니까." 라고 내뱉았다. 순간 등줄기가 서늘했다. 그리고 그녀가 내 원피스를 가르키며 자신이 아끼는 조카에게 사 주고 싶으니 메이커와 품번(정확한 물건을 찾기 위해 인터넷에 입력하는 코드)을 알려달라고 했다. 그 원피스는 길거리에서 산 싸구려로 메이커와 품번을 찾을 길이 없었는데 다음 점검 때 그녀는 꼼꼼하게도, 아마 어떤 명품 카피 같으니, 가격에 상관 없이 비슷한 원피스의 품번을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 선물을 받을 조카를 생각하면 신이 나는지 흐뭇한 미소까지 지으며. 나는 어서 이곳을 탈출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조카와 환자들에게 한 없이 배려 많은 그녀가 아들을  대체 가능한 물건 즘으로 생각한다 사실이 부모의 성스러운 이미지를 산산히 깨부수었다.


물론 그 의사는 극단적인 예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난 그녀가 정신 없는 와중에 이기적인 인간일 뿐인 부모의 보편적인 면모를 실수로 들킨 것이라고 생각한다. 냉정히 봤을 때 아이의 인생을 좌우할 권리를 뺏기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부모가 많은가 오직 아이의 행복만을 위해 거름이 되려는 부모가 많은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