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에서 90년대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 김치를 비롯한 동양 음식의 위상은 처참했다. 지역 신문에서 동양인들이 생선을 익히지 않고 먹는다고 대서특필한 것을 보고 학교 친구들이 너네들이 날생선을 먹는게 사실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많은 유럽인을 충격에 빠뜨린 혐오음식이었던 회는 김치와 함께 나의 최애 음식이었다. 사실대로 말하자 순진한 친구들이 크게 상처를 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 당시에 나는 마늘이 든 어떤 음식도 학교 가기 24시간 전에는 먹지 못했다. 김치 한 쪽이라도 저녘으로 먹은 다음 날에는 마늘을 전혀 먹지 않았던 반 친구들이 귀신 같이 알아채고 지적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먹은 음식 냄세에 대해 불평한다는 점 빼면 착한 친구들이지만 그들의 리그에서 내 어린 시절의 더 오랜 시간을 보내지 않은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폐쇄적 우월의식을 갖고 있던 서유럽 사람들은 김치는 고사하고 그 재료 중 하나인 마늘조차 이탈리안이나 동양인처럼 세련되지 못한 나라 사람들이 먹는 음식 취급했고 수십년이 지난최근 조차 그들의 기본 의식에는 큰 변화가 없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반면 다인종 국가인 미국에서는 김치가 꽤 무난한 기반을 다져왔고 2020년 현재 미국 주류사회에서의 입지를 더 넓혀가고 있다. 최소한 내가 사는 도시에서는 점심으로 생김치를 넣은 타코나 샐러드를 먹은 외국인 친구들이 김치 냄세를 폴폴 풍기며 일하는 경우도 종종 있고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고급 식료품점에서 1파운드(400g)에 12달러 안팎으로 횟감과 나란히, 같은 가격에 팔리기도 한다. 단, 아직은 이 비싼/몸에 좋은/이국적인 음식을 즐길 줄 아는 열린 마음의(open minded) 고소득 군이나 젊은이 혹은 고학력 층이라는 소비층에 한정되어 있다. 덕분에 외국인들 중에 김치를 척척 먹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이가 많다.
일반 미국 가정에서는 음식에 공을 들이는 시간이 한국에 비해 현저히 적다. 그래서인지 신선한 채소처럼 관리가 상대적으로 어렵고 맛있게 조리하기 까다로운 음식을 일반적으로 많이 먹지 않는다. 덩치가 산만한 어른들도 햄버거에 토마토 한 조각 양파 한 조각을 빼지 않고 먹었다며 뿌듯해 하는게 일반적이다. 그래서일까.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요즘, 김이나 김치 같은 한국식으로 조리된 야채들이 시장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Maximillian Petty는 어린 나이 부터 수 차례 우수 셰프상을 받아 온 성공적 사업가이자 전형적인 20대 백인 가장이다. 최근에 그가 새로 낸 음식점 Eden Hill Provisions에서 식사를 하다 그가 직접 담근 김치를 자랑스럽게 진열해 놓은 것 보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견한 김치는 이제 김치가 한국인의 애국심에 의존하지 않고도 현지 레스토랑에서 대접을 받는 현실을 대변하고 있었다.
창가에 트로피처럼 진열된 김치 (이 곳은 항상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뤄서 개장 전 모습을 레스토랑 웹사이트에서 퍼 왔다)
미국 어린이집 급식에 입맛이 길들여진 내 꼬맹이의 소울푸드는 미트볼과 김치다. 야채를 온 몸으로 거부하지만 백김치만은 언제든지 대환영이다. 그러면서 본인은 자기 친구들과 달리 야채를 먹는다며 자긍심이 대단하다. 내가 90년대 유럽 한 초등학교에서 그랬듯 내 아이 역시 어린이집에서 유일한 동양인이다. 하지만 나는 아이에게 아침 식사로도 김치를 준다.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다른 아이들과 즐겁게 뒹굴고 논다. 남다른 섬유질 섭취량 때문인지 어린이집에서 방귀장인(fart master)이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그 별명을 마치 훈장처럼 자랑스러워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