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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Dec 09. 2019

아니, 그럼 울어요?

어느 타이밍에 알아봐 줘야 할까?


친구의 루이비* 빽은 영롱한 ‘새것’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러 가는 길, ‘빽’은 그녀의 손목위에 무심한 듯 소중하게 걸려 있었다.  오랜 친구 사이의 수다가 뻔히 그러하듯  주제도 맥락도 없이 중구난방 이어지던 대화는 ‘도대체 사는게 뭔지’로 흘러가는데...


바로 이때다.


“사는 재미 별거 있겠어? 돈 벌어서 빽이나 좀 사고 그런 거지. 이쁘네.”


친구의 입이 헤죽 벌어진다.

귀여운 것.




자랑하고 싶었나보다. 자기는 큰 빽 보다 작은 빽이 좋다며 이것 말고 프*다는 어떻고, 구*도 있는데 이건 좀 커서 잘 안 들게 된다고.

그렇군. 다음엔 에르메* 한정판으로 지르라고 했다. 알겠다고 한다.


그 친구가 살아낸 세월을 오랜 시간 지켜보았고 보일 속내 안 보일 속내까지 속속 다 알고 있는 사람이 나다. 그러니 그 친구의 ‘빽 자랑’은 흔히들 입에 올리는 ‘은근한 자랑질’ 과는 거리가 멀다.

그만큼 버텨냈으니 이제 좀 괜찮아도 된다는 휴~ 바람소리였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 나이에 빽자랑이라니..’ 하고 비웃을 지도 모르겠다. 이미 20대에 한 두개쯤은 질렀을 가방을 두고 무슨. 혹은 그게 뭐 자랑거리가 되기나 하는 물건인가? 하고 갸웃할 수도.

그러나 그런 세상이 있다면 이런 세상도 있는 것이다.


물론 친구를 많이 이해하지만 얄미운 구석이 없지는 않다. 요놈의 지지배가 가난한 작가 나부랭이한테 빽자랑을 할 때는 그 의도가 순수하기만 했겠는가.

그러나 내가 친구의 빽자랑에 피식 웃을 수 있는 것은 내가 물욕이 없거나 나는 이미 물질에서 얻는 만족을 초월했다거나 하는 도 닦는 소리가 아니다. 또는 ‘그 따위’ 명품 보다는 진짜 가치 있는 것은 따로 있다는 둥의 '말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도 않다. 빽은 빽이다. 그리고 이쁘다.


그냥, 내가 지금 그것까지 탐할 기운이 없다.

지금 내 마음이 닿아있는 곳, 오직 그것만 보고 있어서 다른 것에 마음이 흔들릴 여유가 없는 것이다. 괜히 목표니 결심이니 하다가 성미 급하게 찾아온 불안함에 마음이 무너질까 일기도 쓰지 않으며 앞날 생각 같은 것은 백치처럼 모르쇠 하면서 나는 그저 고개 처박고 하얀 백지에 검정 글자를 타박타박 새겨 넣고 있다. 밤늦도록 시립도서관 열람실에서 수험생 사이에 끼어 앉아 책을 들춰 보고, 혹시 생각을 놓칠까 빠른 글씨로 괴발개발 메모를 휘갈기고 있다. 지금 내가 그런 '꼬라지'다. 그러니 이 시절을 잘 지나고 난 후에 그래서 다른 것을 욕망할 기운이 남아 있다면 그때는 한정판 빽에 눈이 팽팽 돌아갈지도 모르겠다.




밀어닥치는 생활고는 춥다. 오래 앉아있느라 석고가 된것 같은 허리가 묵직하고, 저릿하게 아픈 손목은 제 멋대로 오타를 낸다. 드륵. 휴대폰 화면 위로 은행 입출금어플의 알림이 팝! 튀어오른다.


‘뭐지? 카드 결제일 아직 안됐는데?’


괜히 간담이 서늘하다.


‘어라? 입금일세?’


그리고 원고료 일부 선입금을 했으니 튀지 말고 나머지 원고 마무리 잘 하라는 <알바 원고 갑님>의 문자가 도착했다. 통장이 텅장을 찍더라도 그래서 생활고에 얼어죽을 판이라도 가끔은 거만하게 튕겨도 될 일이다. 고분고분하다고 돈 더 주는 거 아니더라.




두 해 전쯤, 속병이 제대로 나서 동치미 국물로만 연명한 적이 있었다. 몰골은 말씀이 아니셨지만 살이 정말 ‘쪽’ 빠져서 가끔은 아픈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요즘들어 내내 소화가 안 돼 기왕 아플 것이라면 그때처럼 살이나 빠졌으면 좋겠다는 싱거운 소리 지껄이며 탄산수를 들이붓다시피 하던 차에 오늘은 점심에 먹은 스콘 한 조각이 명치에 걸려버렸다. 그 탓에 저녁을 거르고 도서관에서 내려오던 길, 그 와중에 수제비가 먹고 싶어졌다.


수제비 먹다가 죽기야 하겠나.

수퍼에 들러 감자수제비를 사고 계산을 하는데 수퍼 사장님이 말을 건넨다.


“가만 보면 아가씨는 참 잘 웃어.”


그래요? 하고 또 웃으면서 수퍼를 나섰다.

음.....괜히 한마디가 하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꺼낼 것 없는 말이다.

꿀꺽 마음속으로 삼킨다.



아니, 그럼 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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