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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Dec 09. 2019

시골 도시의 '라떼' 에 대하여.

내가 사는 곳은 시골이다. 정확히는 인구 십여만의 ‘시’ 이지만 그냥 시골이다. 

그러니 이곳을 ‘시골도시’라 하자.

나는 이곳에서 태어나 조금 큰 도시에서 대학을 다녔고, 서울에서 좀 살기도 했고, 집은 여기 있으되 주로 노는 곳은 서울이라 고속버스를 셔틀 타듯 하기도 했다. 

지금은 이곳에서의 일상이 딱 맞는 옷인 것처럼 자연스럽지만, 한때는 여러 가지로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었다. 주로 그들만의 작은 세상에서 한껏 경직된 채로 변화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것을 마주할 때였다.

그리고  그 때마다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우습게도 ‘여긴 서울이 아니거든요.’ 였다. 




낙향하여 이 동네 영화관에 처음으로  혼자 갔던 날.

멀티플렉스를 가장한 시골 극장 직원 아저씨(지금은 보통의 영화관처럼 젊은 직원들이 매뉴얼에 따라 응대한다.)가 외계생명체를 본듯 ‘혼자요?’를 되물었으며, 영화 상영 중에는 아저씨 한 분, 아주머니 한 분이 쑥 들어와 상영관 안 이곳저곳을 걸어 다니며! 대화를 나누는 상황을 만났다. 조용히 좀 해달라고 했더니 그 중 아저씨가 내 곁으로 다가와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내려 보신다. 아마도 아주머니에게 여기는 어떻고 저기는 어떻고 새로 생긴 영화관을 브리핑 하던 중이었나 본데 ‘감히 나더러 조용히 하라고?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의 심정으로 나를 내려다 본 모양이다. “왜요? 할 말 있으세요?” 하고 되물으니 ‘허헛...쯧쯧’ 하고 사라지셨다. ;;;; 


이 부분을 항의했더니 돌아온 대답이 “여기는 서울이 아니거든요. 서울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여기서는 그렇게 깐깐하게 안 굴어요. 다 같이 즐기는 거지, 혼자서 쓰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였다. 


네, 혼자 영화 봐서 미안합니다.




10여 년 전쯤 이 동네에도 우후죽순으로 ‘커피전문점’이라는 것이 마구 생겼다. 프렌차이즈 카페도 없는 시골도시에 한 집 건너 하나씩 커피 전문점이 들어섰고, 그 중 열에 아홉은 중년을 넘긴 아주머니가 주인이었다.  

(중년 이상의 여성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딱 설명하기 어려운 그 분위기가 있다. 특유의 시골정서와 만나면 더욱  시너지를 발휘하는 그런 것)

한번은 친구와 차를 마시러 가서 카페라떼를 주문했는데, 한 모금을 머금자 마자 도로 뱉어버렸다. 

달다. 그것도 너무 달다.  도저히 그냥 마실 수준이 아니라서 항의했더니 돌아온 대답이 황당했다.


“원래 라떼에는 기본적으로 시럽 들어가요. 빼달라고 말했어야죠.”

“네? 묻지도 않고 시럽 넣는 경우는 처음인데요.”

“라떼는 들어간다니까요.”

“제가 라떼인 줄 모르고 시켰을까요?”

“서울에서는 어땠는지 몰라도 여기는 그래요.”

“네? 저는 서울이라는 말 꺼낸 적이 없는데요.”

“아우, 다시 해드릴게요. 그런데 라떼는 시럽 들어가요. 아가씨.”


모르겠다. 나는 커피에 문외한이라 ‘카페라떼’에는 원래 시럽이 들어가는 것이 전통인지 모르지만 그 어디서도 묻지도 않고 시럽을 꾹꾹 눌러 담은 카페라떼는 먹어본 적이 없다. 이쯤 되면 서울 만물설도 아니고 일종의 자격지심이나 열등감이 아닌가 싶었다.

시장논리에 의해 지금 이 시골도시에도 많은 카페들이 생겼고, 최고급은 아니어도 평타는 친다는 프렌차이즈가 족족 들어섰으니 더 이상 시럽 넣은 라떼를 혼나가면서 먹을 일은 없다.


그러나 진짜 골 때리는 ‘시골도시 라떼’는 따로 있었다.




여러 부분에서 경직되고 답답한 부분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시골도시의 공무원 세계는 견고한 성과 다름없는 그들만의 세상이었다. 요샛말로 꼰대를 지칭하는 ‘라떼는 말이야..’ 가 수시로 울려 퍼지는 곳이 바로 그곳이 아닐까 싶다.


시립도서관 2층은 열람실과 강의실로 구성되어있다. 강의실은 도서관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문화프로그램 강의실로 이용되는 공간인데 그 안에는 강의 목적으로 설치된 pc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개량한복을 아래위로 차려입은 초로의 남성이 강의실 pc를 개인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강의실로 들어가 피씨를 켜고, 패스워드를 넣은 다음 인터넷 서핑도 하고 커피 한잔 마시면서 동영상도 보다가, 불 꺼놓고 꾸벅꾸벅 졸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그가 더운 날엔 냉방을 틀고, 추운 날엔 난방을 틀어가며 오랜 시간 강의실을 개인 사무실처럼 이용하는 동안, 가끔씩 열린 문틈으로 본 것을 하나씩 끼워 맞춘 과정이다.


적어도 1년은 되었을 그 긴 시간 동안 누구하나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도서관에 등장하면 일단 대출 데스크 직원에게 손을 번쩍 들어 ‘어이~’ 하고 인사를 건네고, 그들에게 '꾸벅' 인사를 받고, 직원 아무나 붙잡고 ‘박팀장 어디 갔어?’ 하며 팀장의 안부를 묻는다. 목이 마르면 직원 사무실로 쑥 들어가 커피를 타서 마시다가 강의실 pc앞에 앉아 신문을 읽고 시간을 때우는 남자.

이 지역 퇴직 공무원이다. 이 시골 도시에서 제법 고위층 공무원으로 재직하다 퇴직을 하신 그 분은 여전히 모든 공무원들의 ‘윗사람’ 이었다. 


내가 강의실 pc의 사적이용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을 때, 대출 데스크의 계약직 직원은 감히 그에게 pc를 사용하지 말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슬그머니 그가 이용 중인 강의실의 문을 '꼭' 닫아주었다. 보이지 않도록. 

제재는 커녕 그를 보호하듯 문을 닫아주는 것에 대해 이유를 물어보니 내 눈치를 보며 ‘제가 말씀드리기는 어려워서요..’ 라며 곤란한 얼굴을 내보였다.


아무래도 그 선에서는 해결이 어려울 것 같아 보였다. 시청 홈페이지를 통해 시립도서관 pc 관리자가 강의용 pc의 패스워드를 개인에게 알려준 점,  그를 통해서 한 개인이 오랜 시간 그것을 사적으로 이용하고 있음에도 눈 감아 주고 심지어 편의를 제공해 주는 공무원 문화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곧 시립도서관 강의실 pc의 패스워드가 바뀌었고, 보통날과 다름없이 강의실로 출근하셨던 전직 공무원의 목소리가 울렸다.


“어이~ 이거 왜 안 돼?”


총대를 멘 팀장이 다가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듯 했다.

그리고 그는 뒷짐을 지고 헛기침을 흘리며 도서관을 빠져나갔다.


마침 그 앞에서 책을 보던 나는 시럽 없는 라떼의 고소함이 떠올랐다.

역시 라떼는 노시럽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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