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개인 물품은 사물함에 보관한 후 도서관 입구에 비치된 투명가방에 최소한의 필기도구 정도만 지참하고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국회도서관 투명 가방- google 이미지 참조.
별도로 노트북의 반입이 허용되며, 반입 허용 물품에도 어느 정도 융통성은 있기에 텀블러, 간단한 개인용품이 든 파우치 정도를 들고 들어가는 것에 제재를 받은 적은 없다.
대략 2016년 겨울쯤이었던 것 같다.
늘 하던 대로 국회도서관 입구에서 사물함에 개인 물품을 보관하고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주변이 소란스럽다. 소리 나는 쪽을 돌아보니 70대쯤으로 보이는 노인 한 명과 도서관 직원이 실랑이 중이었다. 정확하게는 노인이 일방적으로 소리를 지르고, 직원은 그를 설득하는 중이었다.
요약하자면 노인은 비닐가방을 들고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고, 직원은 원칙이 그러하니 지켜달라는 것이었다.
노인은 ‘왜 내가 니들에게 굽혀야 하냐! 왜 내 물건을 니들 맘대로 뺏느냐!’ 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뻔하디 뻔한 대로 이야기는 ‘너 말고 높은 사람 나와!’ 로 착실히 전개되고 있었다.
그러나 높은 사람이 나온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는 일이라, 처음 응대하던 직원에 다른 직원까지 등장 해 인내심을 가지고 설득한 끝에 결국 노인이 사물함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이후에도 노인의 고함과 짜증은 멈추지 않았다. 일단 사물함 제어 장치에 회원카드를 인식시키고, 터치스크린에서 빈 사물함을 찾아 원격으로 잠금장치를 열고, 열린 사물함 안에 물건을 보관하고 사물함 문을 닫고 나오는 지극히 당연한 일련의 과정이 노인에게는 짜증나고 어려운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노인의 언사는 도를 넘었다.
하나하나 가르쳐 주는 직원에게 ‘**년! 똑바로 가르쳐 줘야 될 거 아냐!’ 라며 욕설을 시작했다. 또한 그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으며 주먹으로 사물함을 치기에 이르렀으되 그렇다고 같이 ‘**새꺄! 시키는 대로 잘 좀 쳐 해봐!’ 라고 응대할 수도 없는 직원은 그야말로 울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2016년 겨울은 국정농단을 심판하자는 촛불이 거리를 밝힐 때였다.
또한 그와 반대 입장에 선 이들, 그중 특히 노인들을 많이 만날 때였으며, 속칭 '태극기 부대'의 태동기였기도 했다. 거리에서 만나는 노인들 중 몇몇은 사람 잘못 둔 탓이지 대통령이 무슨 죄가 있느냐며 그분을 적극 항변하였고, 때로는 욕설과 시비로 울분을 뿜어내던 때였다.
그렇기에 나는 그 노인을 그 부류로 지레짐작했다. 고백컨대 ‘쯧쯧....어딜 가나 티를 내지.’ 하며 속으로 혀를 차고 있었다.
시끄러운 노인은 제 성질을 못 이긴 듯 급기야 몸을 훽 돌리면서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아뿔싸. 그때 그의 가슴팍에 선명한 그것을 본 나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의 가슴팍에서 빛나는 그것은 세월호 노란리본이었다. 그걸 본 이상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노인에게 다가갔다.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지금 굉장히 시끄러워서 다른 분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아까부터 지켜봤는데 여기서 개인 물품 못 가지고 가는 건 지켜야 할 규칙이에요. 저도 그렇고 여기 오는 사람들 전부 다 그렇게 하고 있어요. 그게 싫으면 여기 안 오시면 되죠. 그리고 직원한테 쌍욕하지 마세요. 남의 집 귀한 자식입니다.”
“넌 뭐야?”
“지나가던 사람이요. 그리고 저한테 반말하지 마세요. 저 아세요?”
“넌 꺼져!”
“그리고 부탁인데 가슴에 그런 거 달고 진상 짓 하지 마세요.”
“뭐? 이게 뭐? 이게 어때서!”
“그러니까요. 그 노란 리본 달고 진상 짓 하면 다른 사람들이 노란리본 단 사람들이 다 할아버지 같은 줄 알잖아요. 노란리본 가방에 달고 다니는데 제가 쪽팔려서요.”
예상치 못한 전개였나 보다. 순간 노인이 조용해졌다. 아마도 그는 노란리본을 달고 정의를 생각했을 것이며, 그의 의식은 일정부분 ‘깨시민’의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슬픔을 이해하고 공감했을 것이다. 높은 확률로 그 또래에서 왕따 아닌 왕따였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는 진상이었다.
나는 말을 이어갔다.
“할아버지, 세월호 사고는 원칙을 지키지 않아서 일어난 일 아닌가요? 지금 할아버지는 원칙과 규칙을 무시하려고 애꿎은 직원한테 욕을 퍼붓고 있는 것 같은데요?”
노인이 잠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불퉁하게 내뱉었다.
“그래. 니 말이 맞다. 미안하다.”
끝까지 반말은 기분 나빴으나 넘어가기로 했다. 최소한 잘못을 받아들인 것 같았으니.
일단 주변은 조용해졌고 노인은 얌전히(?) 사물함 이용법을 배웠다.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입구의 직원이 감사하다고 슬쩍 인사를 건네준다.
'정의로운 진상'을 만났다.
세상은 자로 잰 듯 이쪽이나 저쪽이 아니다. 늘 그렇듯 적당히 뒤섞인 채 살아가는 것이다. 그 세상살이의 모양새를 노인에게서 보았다. 그래도 그 노인은 굽힐 줄 아는 사람이었다. 가끔 스스로를 너무 믿다보면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내 세상에만 빠지기 마련인데, 노인이 그 경계에서 자신을 돌아봤을 것이라 나는 믿고 싶다.
참고로 글로 써 놓으니 제법 괜찮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주변의 이목이 집중되는 상황에 대한 긴장과 일정부분의 빡침, 소심함을 뚫고 나온 ‘또라이력’의 조합으로 내 목소리는 바들바들 떨렸다. 그러니 영화나 드라마의 배우처럼 쿨하고 멋진 퇴장은 아니었다. 쩝. 보통사람의 한계다. 절대 유명해재지 말아야지. 떨려서 어찌 살겠나.
생각난 김에 도서관 시리즈(?)이야기를 마무리 했습니다.
일요일이잖아요. 저는 다시 독자의 자리를 지키러 갑니다.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