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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May 14. 2020

삔데 또 삐고.

발목이 시큰거린다. 얼마 전에 가볍게 삐끗 한 발목이 정작 당시에는 별일 없다가 뒤늦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제부터 내내 불편하다가 결국 어제는 치료도 받았지만 치료 후에 곧장 집으로 들어오지 않고 운전하고 다닌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하필이면 페달을 밟는 오른발이다. 그리고 정확하게 페달을 밟고 떼는 그 자세, 발목이 위아래로 접혔다가 펴지는 동작이 특히 불편하다. 지금 딱 그 위치가 시큰거려 종아리까지 불편함이 뻗치는 중이다.    


이 오른쪽 발목으로 말할 것 같으면, 툭하면 접지르고 툭하면 삐끗이다. 샤워를 하다가 욕실에서 살짝 미끄러지면서 삐끗, 동네 슈퍼에서 나오다가 문턱에서 삐끗, 멀쩡하게 평지를 걷다가 땅 위로 솟은 감자 만 한 돌멩이에 걸려서 삐끗, 높낮이가 어긋난 보도 블럭 단차에 걸려서 삐끗......하나 하나 세기도 벅찰 만큼 수 없이 삐끗.     




처음 오른쪽 발목을 심하게 다친 것이 대학 1학년 때였다. 당시 동아리방 건물은 많이 낡았고, 외진 곳에 있었다. 늦은 밤, 나는 친구 두 명과 함께 동아리방 건물 앞 잔디밭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을 마시다가 화장실이 가고 싶어 동아리방 건물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그만 어두운 계단에서 굴러버렸다. 무려 두 개를 남겨 두고.      

비명을 내지르며 30cm 높이에서 떨어졌는데, 그때 발목을 심하게 접지른 것이다.

이게 아프긴 되게 아픈데 술은 잔뜩 취했고 두 개 남겨 놓고 구른 상황이 웃겨 미치겠고, 게다가 쪽팔리고.

상황이 웃겨서 웃다가 발목이 아파서 울다가, 다시 쪽팔려서 웃다가 발목이 아파서 울다가. 뭐 자세히 볼 것도 없이 그저 미친 사람 같을 꼬라지(?)로 발목을 부여잡고 한참동안 주저앉아 있었다.


겨우 정신줄을 챙겨서 집까지 걸어오는데 술이 덜 깬 탓에 마취가 된 것인지 그럭저럭 절뚝거리며 걸을 만 했다. 그러다 함께 술을 마셨던 남자 사람 친구가 부축을 해 주는데 자세가 영 불편하다. 나보다 20센티쯤 컸던 그 녀석의 팔을 잡고 걸으려니 오히려 뒤뚱뒤뚱 리듬이 깨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냥 됐다고 혼자 걷겠다며 씩씩하게 걸어 가는데 이 친구가 '업어줄까? 하더니 업히란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당시 내 몸무게가 소위 연예인 프로필 몸무게라 할 만한 43-44키로 언저리였다. 그러니까 거짓말 조금 보태 깃털 마냥 가벼웠다. 그런 나를 운동 좋아하는 무술 동아리 회장이던 친구가 업고 가는 일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내가 병적으로 신세 지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인데다 이 친구의 태도가 묘하게 웃겨서 냉큼 업힐 수가 없었다.


슬그머니 내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 넘기기는 해도 감히 볼을 손으로 만지지는 못하고, 부축해 준다면서도 어정쩡 팔을 잡을 뿐 내 팔을 착 당겨서 제 팔에 엮지는 못하면서 내내 입으로는 '마음이 아파서 안되겠다.' '그냥 업히면 안되겠냐'를 반복하고 있으니 그 부조화가 웃길 따름이었다. 결국 친구는 꿋꿋이 혼자 걷는 내 팔을 어정쩡 하게 잡았다가 놓았다가 하면서 졸졸 따라 걸을 뿐이었다. 달빛이 겨우 비치는 진짜 어두운 길이었다. 그리고 풀리지 않는 의문 하나, 분명 그날 밤에 내 자취 방에서 같이 잤던 함께 술을 마셨던 여자사람 친구는 그 길에 없었다. 얘는 어딜 갔다 온거지?


아무튼 그 길을 함께 걸었던 멀뚱하니 키가 크던 그 친구는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서는 바로 그 전설처럼 전해지는 ‘군대에서 축구하고 포상휴가 간 이야기’를 신나게 늘어놓는 재미 없는 녀석으로, 내 졸업식 날 눈보라를 헤치고 꽃다발을 들고 찾아온 의리 넘치는 친구로 남았다. 물론 지금은 어디서 뭐하고 사는 지 알수 없고.




그날 발목을 다치고 치료를 제대로 안 했었다. 병원은 너무 가기 싫었고 한의원 침만 봐도 겁을 먹고 무서워했던 때였다. 그래서 젊은 혈기(?)에 파스 몇장 붙이고 말았는데 아마 그때 어긋난 발목이 느슨해진 채로 어설프게 아문것 같다. 그러니 툭하면 아무데서나 삐끗. 삐끗. 하는 것이지.   

삔데 또 삐고, 삔데 또 삐는, 그래서 수시로 시큰거리는 발목을 볼 때 마다 아주 오래전 겨우 계단 두 개 남겨 놓고 굴러버린 날이 생각난다. 세상에 그게 구를 위치인가?      


그리고 그 녀석.

이놈아, 묻지 말고 냅다 업고 튀었어야지!     

물론 단 1의 설렘도 주지 않던 형제 같던 너였으니 그랬다고 뭔일이야 났겠는가마는.

뭐 사실 너도 간절하게(?) 업고 싶은 건 아니었잖아.        

   


발목이 많이 시큰거려서 오늘 하루 재택근무(?)에 들어간 기념으로 쉰내나는 옛날 얘기를 끄적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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