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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May 13. 2020

너 따위에게 지지 않는 법3.

매일 매일 끝장을 보다.

가열차게 무언가를 쓰겠노라 마음먹고 노트북을 연다. 아래 한글을 띄우고 쓰기 시작한다. 노트북 자판 위의 손가락이 빨라지고 마음 안에 풍선이 부풀어 오른다. 다 잘될 것 같다. 즐겁고 뜨겁다. 마음이 급해진다. 이 불길이 사라지기 전에 완성해야 한다. 그럴싸한 오프닝을 구상한다. 상황을 그려보고, 문장을 떠올린다. 어떻게 하면 이 불길이 활활 타오르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 불길을 생생하게 전달할까? 놓치지 말아야지. 이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지! 당장 달아날 것 같은 감정을 다급하게 붙들고 떨리는 심장으로 자판을 두드린다. 세기의 명작이 탄생할 것 같다. 이 흥분, 이 환희!    


그리고 얼마 후, 그 불덩이는 장작하나 제대로 불살라 보지도 못한 채 노트북 폴더 안에 잠들어 버린다.          


늘 끝이 문제였다. 여기서의 '끝'이 곧이 곧대로 스토리의 끝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의 경우, 처음 이야기를 시작할 때부터 엔딩을 정해놓고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단순히 이야기의 끝이라면 수백개라도 만들 수 있다. 주인공이 죽었다가, 살았다가, 혹은 죽은 줄 알았더니 살아날 수도 있으니까. 중요한 것은 죽을만했는가, 살만했는가, 죽은 줄 알았더니 살아날만했는가의 과정이다. 나는 항상 그 과정에서 무릎을 꿇었다. 시커먼 구멍이 여기저기 뻥뻥 나 있는 나의 이야기들은 결국 빈 틈을 메우지 못하고 폴더 안에서 차곡차곡 잠이 들었다. 

즉, 이야기로써의 생명을 가질 수 있는 <완성도>에 있어  타인은 둘째치고 우선 내가 납득 할만한 수준으로 끝을 맺을 수가 없었다. 시작의 자신감, 흥분과 설렘의 뜨거움만큼 좌절은 깊어졌다.   




자신의 문제점을 가장 잘 아는 이는 자기 자신이다. 타인은 모르겠다. 나의 글쓰기는 늘 창대한 시작과 미약한 끝으로 규정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제 매일 초고를 쓰기로 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본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알고 가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래서 시작부터 끝까지 매일 같은 이야기를 주욱 주욱 써 나가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시작과 끝은 대부분 고정되어 있다. 매일 반복되는 과정에서 추가되는 것은 중간과정이다. 매일 뼈대를 세우고 있다.     


물론 허점투성이에 빈 구석이 많다. 아무 말 대잔치로 채울 때가 더 많고, 개연성은 개나 주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매일 나의 이야기를 들여다 보는 것이었다. 지겹고, 지겹고 지겨운 일이다. 사실 처음 해본 짓도 아니다. 이러다가 ‘이만하면 되겠지.’ ‘쓰다 보면 더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날 거야.’ ‘찾아온 영감이 도망갈지도 몰라.’ 하는 식으로 적당한 타협과 조바심에 멈췄던 것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 창고행!  


이번에는 진짜로 '끝장'을 보기로 했다. 

        

매일매일이라고  썼지만 실상 '듬성듬성'임을 굳이 감추지는 않겠다. 


매일 같은 것을 반복하는 일은 분명 비효율적이다. 어떤 날은 지겨운 중에도 죽도록 지겹다. (살아본 적은 없지만)미운 짓만 골라 하는 남편이랑 50년쯤 같이 살았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마주한 얼굴이 그 남편인 것 처럼. 그럼에도 이 지겨운 일을 반복하는 이유는 매일 같은 이야기를 쓰지만 단 한 순간도 같은 순간이 없다는 것이다. 어제의 문장과 오늘의 문장이 달랐고, 뻥 뚫린 구멍이 채워지기도, 기껏 채운 곳이 지워지기도 한다. 삶과 죽음과 웃음과 눈물이 매일 다른 얼굴로 낯설게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역시 살아본 적은 없지만)지겹도록 마주한 50년 묵은 남편의 얼굴에서 문득 설렘을 만나듯 매일 새로운 무엇이 쌓여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는 중이다.  지겹고 지겹고 사랑스러운.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샷 추가 해 주시고, 물은 조금, 얼음은  많이!


동네 카페에 나왔다. 중학교 동창인 도서관 직원의 조심스러운 예측에 따르면 도서관의 휴관은 상반기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집에서 써도 될 일을 굳이 커피값 쏟아가며 카페에 나와 있는 것은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집에서는 공부도, 일도 잘 안되는 이유다. 그에 하나를 더 보태자면 ‘커피값’이다. 내가 주로 터를 잡는 곳이 저렴한 프렌차이즈 카페지만 기본 커피 한 잔에 출출할 때 간식이라도 추가하게 되면 야금야금 통장은 텅장을 향해 꾸준히 전진하게 된다. 그 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흘려보낸다면 그것은 그대로 허공에 흩어진 시간과 커피값이 되므로 본전 생각이 나서라도 몇 자 끄적이게 된다. 가난한 글쟁이는 그렇게 사소한 것에 발발 떨며 글을 쓴다.      


아침에 일어나면 잠시 멍을 때리다가 아침밥을 먹는다. 그리고 샤워를 한다. 샤워를 마친 후 커피가 내려지는 동안 얼굴에 처발처발 기초 화장품을 바르고, 커피를 마시면서 색조 메이크업을 마무리한다. 젖은 머리를 말려 헤어제품을 바른다. 옷은 며칠 사이에 입지 않은 것으로 골라 입는다.      

내가 츄리닝 바람에 모자를 눌러쓰고 카페에 나오는 일이 없다. 대단히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도 아니고, 정성 들여 그려봤자 썩 예쁜 얼굴도 아니다. 그렇다고 동네 카페에서 썸을 기대할 것도 아니고, 혹시 기대한다 한들 늘 ‘별일’ 없다.      


나는 적당히 불편해야 글이 써진다. 헐렁한 티셔츠와 품 넓은 바지보다는 아랫배에 힘 빡! 줘야 하는 원피스나 자칫 긴장을 풀면 살찐 뱃살을 감당 못하고 후크가 터져 버리는 정장바지가 나에게 최적화된 작업복이다. 직장생활을 하지 않고 혼자 일을 한 시간이 길었다. 그 시간 동안 늘어질 만큼 늘어져 봤기에 지금의 나는 열심히 하루를 사는 이들처럼 매일 씻고, 얼굴에 그림을 그리고 적당히 조이는 옷을 골라입고 매일 노트북을 들고 집밖으로 나서는 것이다.      


오늘의 드레스 코드- 분명히 커피를 쳐! 흘리게 될 하얀 블라우스.


매일 매일의 반복, 나쁠 것이 없다.                                                             



이 글을 접하신 분들 중에는 이미 탄탄한 내공을 갖춘 작가님들이 많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이 자칫 ‘쥐뿔 모르는 것이 척 하는 어떤 것’으로 비춰질까 약간은 민망하고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이 시리즈 초입에 언급하였듯 이 글은 그저 저의 기록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일까’는 솔직히 전혀 고려사항이 아닙니다. 좀 우스우면 어떻고, 오바스러우면 어떻고, 손발이 좀 사라지면 어떨까요. 내가 멈추지 않음을 스스로에게 상기시킬 수 있다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저의 기록이 끝나는 날에 저의 성장이 함께하길 소원합니다. 그리고 저 혼자 걷는 길이 외롭지 않도록 이 기록을 함께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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