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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May 23. 2020

잃어버린 것이라 하던 것.

몇 해 전, 특별한 계획 없이 머릿속에 그저 ‘우도’만 넣고 제주로 여행을 떠났다. 제주 동쪽 끝 작은 섬 우도는 근래들어 그 호젓함이 옛 시절 같지 않다지만 큰길에서 조금만 멀어져도 세상의 소음, 그 중 무엇이라도 들려주길 바랄 정도로 조용한 섬이다. 섬을 한 바퀴 도는 투어버스를 타고 아무데서나 내려서 골목으로 숨어들어 나 혼자 걷다가, 혼자 밥을 먹고, 산호 해변에 주저앉아 캔맥주를 호로록 마셨다. 밤에는 게스트 하우스 도미토리 숙소에서 만난 여행객들과 어색한 인사를 주고받고, 얼마 안 가서는 그들과 모여앉아 우리가 이른 봄의 평일에 제주에서 만나게 된 사정을 안주 삼아 땅꽁 막걸리를 나눠마셨다. 어떤 이는 오래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떠났다고 했고, 어떤 이는 휴학을 하고 큼직한 배낭을 메고 제주 전역을 비박으로 다니는 중에 비가 쏟아져서 옷도 좀 말리고 쉬고 싶어 게스트하우스에 묵은 것이라 했다. 취업 면접장에 트렁크를 끌고 가서 면접이 끝나자마자 정장과 구두를 우겨넣고 그대로 제주행 비행기를 타고 왔다는 이도 있었다. 각자의 이야기가 중구난방 한 바퀴 돌았다. 얼마 전에 사표를 냈다는 친구가 내게 물었다.           


“언니는요?”

“......글쎄요. 나는 별일이 없는데요. 사실 늘 별일이 없어요. 그래서 별일이 없어서 왔어요.”     


우도의 풍경, 비싼 밥, 여전한 술판.




다음 날, 배를 타고 우도를 나와 성산포에 닿았다. 이번 목적지는 김영갑 갤러리. 오직 목적지만 콕콕 찍어놓고 렌트도 하지 않은 뚜벅이 제주 여행은 버스 시간에 맞춰 길을 따라 이어질 참이었다. 무계획 중에도 나름의 계획으로 이른 시간 배를 타고 나와 부지런을 떨었다. 이제 버스 정류장을 찾아가면 된다. 요즘 세상은 참 좋아서 휴대폰 길 찾기 하나면 척척 알아서 길을 안내 해 주니 큼직한 지도를 펼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휴대폰이 사라진 것이다. 가방을 탈탈 털고, 방금 전 들렀던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여객터미널 안내데스크와 승선권 매표소에 분실물이 들어온 것이 있는 지 물어 보았다.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길을 잃었다.     


휴대폰이 없으니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어디로 가야할 지도 모르겠고 지금이 몇 시 인지도 알 수 없었다. 일단 공중전화로 휴대폰 분실신고를 했다. 뭐가 그리 급했는지 모르겠지만 꼭 해야 할 일을 하듯 단호하게 분실신고를 해 버렸다. 그리고 집에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내가 지금 제주도에 와 있는데 배를 타고 섬에 들어갔다가 나왔어. 그런데 핸드폰이 없어. 전화 못 받으니까 그런 줄 알아.”     


전날 아침 일찍 가방을 메고 나서면서 그저 잠시 어딜 다녀오겠다고 했을 뿐이었는데 잃어버린 휴대폰 때문에 모친에게 제주행을 고하게 되었다.      


일단 거리로 나섰다. 뭐, 어떻게 되겠지.

편의점에 들어가 생수를 한 병 사고 카운터의 알바생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버스 번호를 물었다. 알바생은 휴대폰으로 길을 검색해서 내가 타야할 버스와 정류장, 환승 할 곳을 메모지에 적어주었다. 고맙다는 말을 몇번이나 하고나서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갔다. 편의점 알바의 친절한 안내에도 불구하고 초행길은 낯설었다. 한참을 헤매다가 버스정류장에 닿았다. 이번에는 옆에 서 있는 청년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시간을 물었다. 생각보다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다른 일정은 모르겠지만 김영갑갤러리에는 무사히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얼마 후, 버스가 왔고 버스에 올랐다. 기사님께 내릴 정류장을 물으러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건너편 자리에는 내가 시간을 물어본 청년이 자리를 잡았다. 같은 버스를 탔구나. 생각했다. 버스를 탔다는 안도감에 이제야 몰골 걱정이 된다. 거울이나 꺼내 볼까 싶어 가방을 더듬거리는데 앞 주머니에서 무언가가 만져진다. 직사각형 모양의 제법 묵직한 이 물체는?


그렇게 가방을 탈탈 털었고, 여객선 터미널의 직원분들에게 부탁해 내 폰으로 전화를 수 없이 걸었고, 공중전화로도 걸었다. 그동안 징징 울리고 있었을 내 핸드폰은 가방 안에 있었다. 가방의 제일 앞 쪽에. 나는 단호하게 믿었다. 그곳에 넣었을 리 없다는 믿음에 열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 모든 시련을 끝낼 아주 쉬운 방법이 있었음에도 나는 의심하지 않았다. 이럴 때는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하늘을 찌른다. 믿을 타이밍이 따로 있지.       


그토록 찾던 핸드폰을 발견했지만 꺼낼 수는 없었다.

건너편 자리에 앉은 청년, 방금전까지 핸드폰이 없다며 시간을 물었던 청년이 내릴때까지 나는 핸드폰이 없는 사람이어야 했다. 그저 ‘저기, 내가 정신머리가 조금 없을 뿐, 미친것이거나 당신에게 끼를 부리려는 건 아니었어요.’ 라고 마음 속으로 머쓱한 자기변명을 주절거렸다. 그리고 창밖만 바라보았다.     


 



정지된 핸드폰은 통화도 데이터도 먹통이다. 그저 시계이자 카메라였다. 그만하면 충분히 감사한 일이었으나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제대로 가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목적지 인근까지 가는 환승 버스는 있지만 배차 간격이 너무 길어서 지금부터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고, 차라리 내려서 걸으라고 버스 기사님이 알려준 대로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큰 길을 벗어나자 작은 시골길이 나왔다. 차도 사람도 없었다. 저 멀리서 개 한 마리가 뛰어온다. 반갑다고 꼬리를 치더니 졸졸졸 앞서 걷기 시작한다. 그 궁둥이가 귀엽다. 너무 적막해서 외롭던 차에 고마운 길동무를 만났다.


어디선가 나타난 길동무. 동네 개님.


걷다 보니 배가 고파졌다. 휴대폰 분실 소동으로 달아났던 입맛이 돌아온 휴대폰을 따라 알량하게 되돌아온 것이다. 마침 그 앞에 국수집이 보였다. 들어가서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데 나를 따라오던 개가 마당에서 놀고 있다. ‘뭐야, 이 집 강아지였어? 흔한 삐끼견이군.’ 말 한마디 없는 개를 두고 나혼자 실 없는 생각을 하다가 피식 웃음이 났다. 마침 음식을 내온 사장님께 녀석의 정체를 여쭤봤더니 키우는 개는 아니고 아랫동네 사는 개인데 김영갑갤러리에 가는 손님을 따라 온다고 한다. 김영갑 갤러리 가는 중이면 쟤만 따라 가라고 하신다.   

   

내가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녀석은 먹던 간식도 내팽개치고 나를 따라 나선다. 몇 걸음 앞서서 걸으며 내가 잘 따라오나 살피기도 하면서. 숙달된 길잡이가 분명했다.

갈래길에서도 녀석은 거침이 없었다. 가진 것은 먹통이 된 전화 뿐인 내가 믿을 것은 오직 우연히 만난 개 뿐이었다. 고불고불 길을 따라가니 드디어 목적지가 눈앞에 보였다. 여기까지 길동무, 길잡이를 해준 개가 마냥 고맙고 기특했다. 평소 무서워서 개를 잘 만지지는 못하지만 이 녀석은 한번 쓰다듬어 주기라도 해야지 마음을 먹었는데 내가 문간에 닿자마자 녀석은 뒤도 안돌아 보고 돌아가 버렸다. 여기부터는 너 혼자 알아서 해. 내 일은 다 했어. 라고 하듯.


무심한 녀석. 그리고 고마운 녀석.     


개님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목적지, 김영갑 갤러리.



사실 핸드폰을 잃어버린 날, 주민등록증도 잃어버렸다.

핸드폰은 돌아왔지만, 가방을 샅샅이 뒤져도 주민등록증은 찾을 길이 없었다. 정책이 바뀌기 전이라 주민등록 등본과 공항 경찰의 확인으로 신분증을 대체해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그런 사정으로 김영갑 갤러리의 다음 목적지는 가장 가까운 읍사무소였다. 제주여행을 여러번 해봤지만 공공기관은 처음이었으니 그도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덕분에 관광지가 아닌, 삶의 한복판 시장통 버스 정류장에서 보따리 보따리 끌어안은 할머니들과 나란히 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여행길 하루의  끝자락, 제주 어느 읍내 시장통의 해가 저물고 있었다.  


공항경찰이 얼굴을 꼼꼼히 살핀후 나 맞다고 찍어준 도장.


그리고 몇 달 후에 주민등록증을 찾아가라며 동사무소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배타고 돌아온 모양이다.




             

나는 내가 잃어버렸다는 것들을 저 구석 어딘가에 둔 것을 잊고, 끝내 잃은 듯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차갑던 날이 언제였는지 어느새 마냥 뜨거워진 햇볕에, 그 속에 숨어드는 바람에, 별것 아닌 이야기들 안에서 나는 살아있는 것을. 모르는 길의 두려움과 설렘이 뒤섞인 시간 안에서 문득 선물처럼 길동무가 나타나고, 다음 길을 떠날 때는 훌훌 털고 제 갈 길을 가버릴 것임을, 내가 서 있는 곳의 시간을 보지 못하고, 방향도 모르는 채 그저 내 두 발의 본능에 의지해 길을 나서고, 어느 날에는 나름 그럴싸하리라 믿었던 목적지를 놓치고 뜻하지 않은 곳에서 저무는 해를 보는 것, 그 또한 제법 괜찮은 것.


결국 그것이 살아냄이라는 것을 짐짓 모르는 척 잃어버렸다 하는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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