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6시 출근, 밤 11시 퇴근, 약 2개월에 한 번씩 주말 근무와 평일 새벽 1시 퇴근.
20대의 내가 어느 보습학원에서 강사로 근무했던 시절의 근무시간표다.
월급은 박봉이었지만 시간적으로 괜찮은 일이라 생각했다. 다른 것보다 출근 시간 6시가 매력적이었다.
낮 동안 글을 쓰고, 밤 시간에 돈을 벌고. 그러니까 생계도 유지하고 꿈도 놓지 않고.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말 안 듣는 사춘기 아이들에게 지식을 주입하는 일은 명줄을 잘라먹는 것처럼 기 빨리는 일이었으니(직업적 사명이고 뭐고 없이 일했던 내가 그랬다는 것이지 특정 직업군을 일반화하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피곤에 쩔어 한 낮에 일어나 밥먹고 씻고 출근 시간 맞추기도 벅찼다. 간간이 회식을 빙자해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어차피 다들 늦게 일어나도 괜찮다며 내일이 없는 사람들처럼 술을 마셨다.
몸도, 마음도 엉망이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나보다 연차가 있던 강사들 모두 우울한 얼굴과 우울한 기운을 뿜고 있었다. 누적된 몸과 마음의 피로가 그들에게 우울을 기본장착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때 나 역시 ‘어린’ 글쟁이로서의 첫 도전이 처절하게 박살난 직후라 자존감은 바닥을 찍고 있었으며 나의 가치를 스스로 깎았던 때였다. 후루루 떨쳐내고 다른 일을 찾아 내거나, ‘내 글’로 정면승부를 할 용기도 없었다. 말로는 꿈을 놓지 않았다 하면서 마음 한편으로는 ‘이만하면 됐지. 뭐.’라며 스스로를 위안하며 주저앉으려 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지갑보다 마음이 더 가난했다.
운영자였던 원장 부부는 시험 기간마다 이어지는 연장 근무마다 겨우 얼마쯤의 보너스를 통장으로 꽂았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세요. 선생님만 챙겨 드리는 거에요.’ 라며 10만원 쯤 든 봉투를 쥐어 주었다.
그 봉투를 받아든 이들은 사람을 갈아 넣다시피하는 연장 근무를 묵묵히 받아들이고 수강생들의 과목별 성적이 곧 나의 성과인 양 미친 듯이 문제풀이 공장을 가동시켰다.
“외워라. 이해고 나발이고 그냥 외워.”
모두가 미쳤고, 나도 미쳤다. 시험이 끝나면 수강생들의 성적에 따라 강사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과목별 평균성적과 성적 상승률을 기준으로 원장 부부는 노골적인 비교를 주저하지 않았다. 국어 담당 최선생은 항상 우수강사였다. 원장부부의 강같은 칭찬이 마르지 않았다.
시험 성적 잘 뽑기로 입소문을 탄 덕에 학원의 수강생은 점점 늘어났고 그만큼 일은 많아졌다. 월급이 찔끔 올랐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세요.’ 봉투도 간간히 가방 속에 들어왔다. 그러나 강사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세요’ 봉투는 모두에게 주어진 것을.
그리고 회식이 잦아졌다. 피곤해서 바로 퇴근하려고 해도 어차피 내일 늦잠 자도 되는데 한잔만 하자는 ‘오너’의 뜻을 거스르기는 어려웠다. 그 속내도 알 것 같았다. 그들은 자신의 학원에 소속된 이들이 그저 피곤에 쩔어 잠이 들고 시간에 쫒겨 출근을 하고 남들 다 자는 시간에 퇴근 하는 일을 반복하며 갈 곳 없이 이곳에 익숙해 질 것을 바라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가면서 어느새 눈에 보일 정도로 수강생이 늘었지만, 월급은 더 이상 오르지 않았다. 업무량이 늘어난 강사들 사이에 불만이 피어올랐다. 눈치 빠른 원장이 회식을 제안했고, 1차, 2차, 마지막 3차에서는 발렌타인 17년산이 등장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원장은 진솔한 이야기를 꺼냈다.
“애들이 많이 늘어서 선생님들이 힘든 거 압니다. 다 선생님들 덕분이에요.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월급도 막 올려주고 하면 좋겠는데 운영 하는 입장에서는 그게 그럴 수가 없어요. 언제 애들이 줄어들지 모르는데 한번 올린 월급을 도로 줄일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고 내 몫을 줄일 수도 없고. 내가 가져가는 돈 최소 1000만원은 줄일 수 없는 돈이니까.”
그 말을 듣는 강사들은 형식적인 웃음조차 짓지 못했다. 말없이 술잔을 비우는 영어 강사의 얼굴이 한껏 붉어졌다. 당시 그 학원에서만 7년을 근무한 원장 친구인 영어 강사의 월급은 170만원이었다. 강사들끼리의 술자리에서 술이 잔뜩 오른 나머지 서로의 월급을 묻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깨고 말실수로 자신의 월급을 깐 것이다. 당시 그는 다른 강사들보다 월급이 많은 것에 대해 이런저런 해명(?)까지 했었다.
며칠 전에 나온 교육청 현장 조사에서 학원의 불법 운영을 눈감아 주는 대가로 교육청 공무원의 주머니로 들어간 봉투에는 300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이것저것 돈 들어갈 데가 많다는 원장의 변이 이어졌다.
운영이 어려워지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인력감축이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분식집 김밥값이 500원 오른다.
경기가 어렵다면서 기업은 채용을 줄인다.
절대로 내 몫을 줄일 수는 없다는 원장님의 1000만원, 그런 마음은 특이한 경우였을까?
번외로.
학원이 승승장구하자 원장은 월급을 올리는 대신 능력있는(?) 인재를 충원했다. 그리고 분위기 쇄신차원으로 기존 강사 중 누군가를 잘라내고 싶어했다. 그런 원장에게 해고 대상 제 1순위였던 영어강사는 내가 하지도 않은 말로 원장에게 나를 정리하라고 조언 했다고 한다. 원장은 나를 해고 하면서 '아이들이 내말보다 선생님 말을 더 잘 듣는게 원장으로서 불쾌하다.' 고 했다. 언제는 그래서 좋다던 것은 뭐, 넣어두고, 나도 완벽한 인간이 아니니 싫은 구석이 있었겠지. 딱 영어강사의 말만 듣고 그럴리는 없으니 그 점은 유감이 없다. 자르고 말고는 오너 맘 아닌가? 다만 해고 방식에 대한 예의의 문제였다. 구구절절은 생략하지만 그는 감정적이었고, 무례했다.
그렇게 홧김에 잘라내고 나서 문제가 생겼는지 어느 날, 학원에 근무 중이던 어린 강사가 술 한잔 하자며 전화를 했다. 그는 위의 영어강사 이야기을 전하며 넌즈시 다시 나올 생각이 없는 지 내 의사를 떠 보았다. 원장이 시켰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한다. 그 와중에 오지랖 넓게도 그 영어강사가 딱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기분 나쁜것이 백만배 더 컸다. 다음날 나는 원장과 영어강사에게 문자를 넣었다. 원장에게는 "누구 시켜서 간 보지 마세요." 라고 , 영어강사에게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갑자기 그만 두느라 인사도 못했네요." 라고.
원장은 답이 없었지만 여기저기 소문을 낸 모양이다. 이후에도 다른 학원 몇 곳에서도 일을 했는데 나중에 슬쩍 물어보는 경우가 있었다. "**학원 원장님하고는 무슨 문제가 있었나요?" 라고. 블랙리스트인가보다. 풋!
사실 그 학원을 그만 둘 즈음의 나는 내 인격의 줄이 끊어짐을 느끼고 있었다.
분기별 두 번의 시험 기간마다 문제 풀이 공장, 점수 올리는 괴물이 되던 나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 던 10만원짜리 봉투가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
돈 무서운 줄 몰랐던 시절이다. 그런데 이후에도, 여전히 지금까지도...... 나는 그모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