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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Jun 02. 2020

살아지는 날.

무척이나 지랄 맞은 날이 있다.

그런 날이라고 이마에 ‘지랄맞음’ 이라 써 붙이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낯 모르는 이들이나 혹은 낯만 아는 이들에게 미주알고주알 나불거릴 필요도, 이유도 없으니 마주하는 얼굴 앞에 실 없이 웃음을 흘린다. 부러 괜찮은 척이거나 남 보기 좋자는 것이 아니라 웃는 얼굴로 끙끙 나를 달래는 중이었다.     


왜 그렇게 지랄맞으냐 물어보면 팔순 노파의 설움처럼 난데없이 눈물이 쏟아질 판인데, 정작 지랄 맞다고 밖에 답할 길이 없는 멍청하고 대책없는 몸뚱이에 피곤함이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당장 밥벌이가 아쉬운 판에 돈 주겠다는 이에게 기껏 전화를 해서는 “다른 사람하고 하시면 안될까요?” 하고 물어보는 꼴이나 그래도 진행하자는 말에 마음 한편 포옥 내려앉는 안도가 겹치는 순간에 나는 미칠 듯이 피곤해서 문득 서럽고, 문득 지겹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일을 맡긴 또 다른 이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지금 이 돈 받자고 덥썩 물 일이 아닌데, 그때 뭐에 미쳤나보다.” 라며 한껏 목소리를 높여 허세를 떨어댔다.


아이고, 맹물 같은 년.     


내 글을 쓴답시고 뭐 달라지겠나. 그저 제 뽕에 취해 잠시 들떴다가 냉정히 돌아보면 쓰리고 아픈 한 글자, 한 글자가 입안 가득 쇳물을 머금게 할 것인데.     


잠든 사이에 등 밑으로 큼직한 싱크홀이 생겨버리기를 바라는 것 같은, 일어날 일 없는 과장된 절망을 그리다가 결국 그렇지 않음에 슬그머니 내려앉는 그 속내를 어디라도 들킬까봐 부랴부랴 집어삼킨다.          


중학교 2학년 담임 선생이 노트 뒷면에 남겨줬던 메모가 떠오른다.     


“**야, 살고있는 거니?, 살아지는 거니?”          


나의 무기력은 아주 옛시절부터 몸에 밴 냄새 같은 것이었나보다.

뭐, 한숨 자고 일어나면 또 살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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