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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Aug 09. 2020

인생사, 협찬입니다.

7월의 어느 날, 모친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 책상 들고 어디 갔냐?”     


그 즈음 나는 책상을 들고 가출(?)을 감행했다.     



코로나의 여파로 도서관은 내내 휴관 중이었고 노트북을 둘러메고 이 카페, 저카페로 메뚜기 뛰는 생활도 슬슬 질려가던 참이었다.  게다가 진행하던 일은 갑님의 ‘시간 미루기’ 스킬, ‘지마음 내킬 때 진행’ 스킬로 인해 점점 골 때리는 형국으로 몰려가고 있었고, 급기야 나는 하던 일을 내 팽개치고 ‘배째쇼.’로 응수했다. 시간을 지켜달라 누누이 말했으되 돈을 주는 이는 그이고 돈을 받는 이는 나라는 당연하고 치사한 갑을관계의 특성상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마감에 맞춰 내 몸을 갈아넣는 일이 반복될 것이 자명한 터였다. 

‘에라 모르겠다. 당신과 나 사이에 돈을 빼면 남을 것이 없으니 내가 그 돈 안 받고 만다.’를 시전한 것이다.     

지리멸렬한 이야기는 접어두고 원래 약속된 금액의 반을 받고, 일감도 반만 넘겨주고 터는 것으로 그분과의 인연을 접었다. 나는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이것저것 둘러보고 챙겨보는 시간이 긴 인간이다. 혹시 뭘 흘린 건 아닌가, 이번 정류장이 아니라 다음 정류장은 아닐까? 등등 걱정도 많고 탈도 많다. 그러느라 내리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한번 내린 버스는 돌아보지 않는 게 또 나다.

그러니 그렇게 미련하면서도 여태 잘(?) 사는 것이겠다.     


아무튼 그렇게 수중에 들어온 없어질 뻔한(?) 돈을 들고 작업실을 구했다.

말이 좋아 작업실이지 원룸의 방 한 칸이다. 자다 말고 ‘작업실로 쓸 원룸을 구하자.’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고 이틀 만에 적당한 방을 구했다. 


그런데 막상 질러놓고 보니 텅 빈 원룸에는 채울 것이 많았다. 그 와중에도 몸에 밴 가난뱅이의 습관은 떨쳐지질 않아서 이것저것 돈을  쓰는 것이 아까워서 이고지고 집안의 물건을 들어 날랐으니, 그 중 하나가 책상이었다. 조립식 책상. <국민 원룸 가구>로 불리는 철제 프레임에 mdf합판으로 만든 싸구려 책상. 내 방에 보조책상으로 놓여 있던 것이다.


딱 이렇게 생긴 책상 이다. 이미지 출처: google. 



직접 손으로 나사 하나하나 풀어서 낡은 승용차에 테트리스 하듯 우겨넣고 2층까지 끙끙 거리며 들고 올라왔다. (여담으로 그 책상이 사라진 다음에야 모친이 나의 심상치 않은 일탈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게 이고 지고 나른 책상을 재조립과정에서 뽀사(?)먹었다. 상판이 부서지고, 우르르 무너진 철제 프레임이 낙하하면서 발등을 찧었으니 이건 뭐 삽질에 헛발질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깟 푼돈 아끼려 책상 들고 나르다가 허리를 삐긋 했는데, 발등까지 시퍼렇게 멍이들었다. 치료비가 책상값 만큼 들었다. 내 노동력까지 생각하면 명백히 소탐 대실이다.     


책상이었던 것.

남은 책상의 흔적 중 일부이다. 어떻게 버려야 되는지를 몰라서 구석에 처박아놨다. 나중에 버리기로. 두고두고 보면서 푼돈에 바르르 떨 때마다 소탐대실을 상기시키면 좋을 것 같다.       




   

책상이 뽀사지고 허리가 나가고, 너덜너덜 해진 마음으로 지인이 운영하는 카페를 찾았다. 사실 작업실을 구했다는 얘기를 굳이 할 생각이 아니었는데, 발을 절뚝거리는 사연을 설명하다가 미주알 고주알 앞 뒤를 고해바쳤다.

어라? 창고에 안 쓰는 책상이 있단다. 그런데 막상 보니 엄청난 사이즈라 가져갈 엄두를 내지 못해 사양했는데 지인의 친구의 도움으로 트럭을 동원해 배달부터 설치까지 한방에 해결됐다. 밥 한끼 사는 것으로 책상이 생겨버렸다. 할렐루야!(글쓴이 종교 없음.)     


그리고 한번 터진 물고는 제 갈길을 가기 마련이라, 곧 내 입이 가벼워졌다. 나의 원룸 작업실은 구하고 보니 친구의 퇴근길이 빤히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친구의 퇴근 시간에 맞춰 전화를 걸어 차를 멈춰세웠다. 창가에서 손을 흔드는 나를 보고 도깨비에 홀린 듯 올라온 친구는 잘했다는 말만 일곱 번쯤 하고, 잘 될거라는 덕담을 쏟아내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주 주말에 휴지와 물티슈를 들고 나타났다.

이후에도 몇 번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창가에 서 있는 나와 운전 중인 친구가 애틋하게 서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지인들에게 드문드문 소문을 냈다.


원룸을 작업실로 세팅(?)하면서 나름 정해둔 원칙이 있다. ‘이곳에서 밥하지 말지어다.’ ‘잠 자지 말지어다.’ 생활공간과 작업공간이 뒤 섞이면 그저 나이 마흔 줄에 원룸살이 하는 반백수일 뿐이라는 일종의 강박과 고집이다. 그래서 나는 느즈막히 도시락을 싸 들고 출근해서 늦은 밤, 퇴근한다.     



오늘도 도시락.



작업실 창문을 열면 이런 풍경이 들어온다.




마음 먹은 대로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았으나 또한 이런저런 사정으로 근래에 뜻하고, 원하던 일을 하나 시원하게 말아먹고, 한 일주일 마냥 손을 놓고 놀았다. 그 심정을 요약하자면 '참으로 뭣 같은데, 괜찮아.'였다. 마음을 다스리며 이곳에 혼자 있는 시간이 지겹지 않고, 내 목소리가 울리는 텅빈 고요가 평화롭다.

다만 이 평화에 기대 나약하게 안주하지 않으며 치열한 시간을 보낼 일이 간절하다.          




사람이 힘들다고 했다. 어쩌면 실패자의 자기방어일 것이다. 배알이 꼬이고, 창백한 질투로 몸서리친다. 사실 나는 그렇다. 그래서 당신들이 나를 잊기를 바랐다. 잊혀지고 지워지는 이름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얄궂게도 나의 작은 원룸 작업실 안에는 온갖 ‘사람’ 들의 협찬 물품이 부서진 책상을 대신 채웠다. 일상을 꽁꽁 싸매고 숨긴채 나 혼자 들고 나르던 책상이 부서진 곳으로 내가 소심하게 소문 낸 이들에게서 응원의 선물이 도착했던 것이다.



협찬의 향연!




이름과 마음이다.

사람이 질린다며, 혹은 귀찮다며, 지레 상처가 싫다며, 실은 열등감을 숨기지 못해서 틈만 나면 숨을 곳을 찾아든 나는 결국 사람들에게서 응원을 받았다.


당신들의 마음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겁이 많은 내가 또 어느 곳으로 숨어들더라도 나는 곳곳에 남은 사람의 온기에 문득 웃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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