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oijak Aug 12. 2020

꼭 걸어야 겠어요?

중부지방이 폭우로 몸살을 앓던 때, 나도 덩달아 앓았다.

침대 낙상 사고로 오른쪽 어깨, 팔, 허리 쪽에 가벼운 부상을 입었고 주기적으로 재발하는 내성 발톱이 성을 내서 욱신거리며 열을 내는 통에 밤잠을 설쳐야 했다. 조금 타이트한 운동화와, 폭우에 쏟아진 빗물이 발톱 틈으로 새어 들어간 것이 염증을 일으킨 것이 아닌가 짐작한다. 하필이면 그 발가락을 책상에 부딪혔고, 영혼까지 탙탈 털리는 날카로운 통증이 아픔의 클라이막스를 찍었다.     


보통의 경우 속된 말로 ‘독한년’ 소리가 나올 만큼 스스로 발톱을 파내고 파고든 발톱을 잘라낸 뒤에 과산화수소로 소독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그 일련의 고통과 고통이 주는 묘한 쾌감까지 즐기던 나였지만, 이번에는 약 1.5배로 부풀어 오른 시뻘건 엄지발가락과 발 전체로 뻗치는 열감이 내 선에서 해결될 일이 아닌 것 같았다.      

병원에서 항생제를 처방받고, 주사도 맞았다. 

발톱은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 그 와중에 비는 계속 내렸다.


새 마음으로 마음을 다잡던 8월은 쏟아붓는 비와 함께 몸도 마음도 절뚝거리며 시작되었다.




잠시 빗줄기가 멈칫한 사이, 오랜만에 호숫가를 찾아 나섰다. 머릿속이 복잡해 좀 걷고 싶었다. 

게다가 심상치 않은 몸 상태는 더 이상 숨쉬기 운동만으로는 안 될 처지임을 온몸으로 고래고래 알리고 있었기에 그나마 할 수 있는 걷기운동이라도 시작할 참이었다. 지면에 다 옮기지 못할만큼 비루하기 짝이없는 근래의 몸 상태로 볼 때 이제 운동은 생존의 문제였다.

     

호수가에 다다를 즈음 다시 빗방울이 후두둑 흩뿌리고 있었다. 저만치 경찰차가 보이고 차들이 속도를 늦췄다. 음주단속이라도 하나 싶었는데, 산사태가 나서 도로가 통제중이라고 한다. 하필.    

 

그런데 그냥 돌아가기 싫었다. 우회도로를 타고 호수 위쪽으로 접근해 내려왔다. 다행히 산사태가 큰 규모는 아닌 듯했다. 인적은 드물었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길목도 경찰이 막고 서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차량을 통제 하던 경찰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기, 선생님. 걷는 건 괜찮죠?”

“예?”

“호수가 산책로 한바퀴 걷는 거요. 그건 괜찮죠?”

“예, 괜찮습니다. 차량만 통제중이라서.. 그런데 꼭 걸어야 겠어요?”

“네?”

“비도 오고, 또 무너질 지도 모르는데 안 걷는게 좋겠는데...”

“음.... 그쪽으로 안 가고 반만 걸을게요.”     


경찰은 그러시라며 피식 웃었다.


돌아가기 싫었다. 그래서 걸었다. 오만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어떻게 해야 하나..하는 원론적인 생각부터, 내일은 뭐먹지? 같은 시덥잖은 생각을 스쳐 지난 2월 예정이었다가 코로나 사태로 미뤄진 결혼식을 이번 달 말에 한다는 친구 결혼식에 신고갈 마땅한 여름 구두가 없다는 생각까지. 음, 이 참에 전에 사고 싶었던 슬링백 하이힐을 지를까?

엄지 발가락이 움찔 아팠다. 


'알겠어. 발가락아. 하이힐은 아니구나.' 


부슬부슬 비는 내리고, 한껏 수위가 차오른 호수에 인적은 드물었고..

나는 우산을 쓰고 걷고 있었다.                              




꼭 걸어야겠어요?

그럼요. 언제까지 멈춰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사, 협찬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