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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Sep 20. 2020

붉은 신호등

편의점 앞의 횡단보도는 겨우 몇 걸음이었다. 몇 걸음만 걸어가면 반대편 인도에 닿는 곳에 횡단 보도가 있었고, 나는 횡단 보도의 하얀선을 세 개 쯤 밟았다. 그리고 우뚝 멈춰섰다. 저쪽부터 달려오던 차는 횡단보도 앞에서 멈춰 설 것이라는 나의 기대와 달리 점점 더 속도를 높여 나를 스치듯 지나갔다.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나는 비명을 질렀고, 차는 멈춰서서 운전석 창문을 내렸다.     


나는 횡단보도 안보이냐 소리를 질렀다. 그는 왜 안 건너가고 중간에 서냐고 했다. 나는 차가 오니까 섰다고 했고, 그는 일부러 치라고 서 있는 거 아니냐고, 진짜 웃기는 여자라고 비아냥이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차가 내려오니 저 차가 어쩔 것인지를 보고 건너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차가 멈추면 건너고, 차가 지나갈 기세면 뒤로 물러설 생각이었다. 무작정 건너다가 차에 치일까 겁을 먹은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횡단보도 안에 사람이 서 있으니 차가 멈추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멈출 기세가 없이 오히려 속도를 높이는 차를 보고 내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려던 찰라, 차는 나를 스치듯 지나간 것이다. 이 상황 설명을 차분히 주고 받기에 뒤로 주욱 차가 밀려있는 좁고 시끄러운 도로 한복판과 서로 감정이 격해진 두 사람이라는 조건은 좋은 조건이 아니다.     


각자의 주장은 각자대로 이유가 있는 법이지만, 이런 상황에서의 결말은 늘 그렇듯 최악으로 치닫는다. 50대로 보이는 운전자는 대뜸 ‘싸가지 없는 년.’ 이라고 한다. 나는 ‘운전 똑바로 하고 다녀. 이 새끼야.’ 라고 응수했다.

뒤로 밀린 차들이 경적을 눌러대고, 남자는 몇 마디쯤 욕을 더 지껄이며 사라졌다. ‘별 미친년’ 이라는 말이 들린 것 같다.     


나는 잘했는데 무조건 상대가 잘못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의 욕지거리에 만만치 않게 되돌려 줬으니 자랑할 일도 아니다. 누군가 나를 아는 사람이 그 광경을 봤다면 끔찍한 일이다. 쪽팔려서 얼굴을 어찌 들고 다니겠나.


그럼에도 이 낯부끄러운 일을 글로 적는 것은,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이다. 이대로 둘 수가 없었다. 그러니 그만하라고.     




그 난리통이 지나고 작업실로 걸어오는 길에, 울컥 목울대가 울렸다. 계단을 올라오면서 치고 올라오던 울음은 결국 방안에서 터져버렸다. 그때부터 울기 시작했다.

너무 많이 울어서 머리가 쪼개질 것 같을 때까지 펑펑 울고 말았다.


무언가에 홀린 듯, 말도 안 되는 판단을 내릴 때가 있다. 

주차된 차가 마음에 안 들어 뒤로 조금 물린다는 것이 정작 나는 밖에 있고 밖에서 시동을 걸어 후진기어를 넣는 모자란 짓을 하거나, 30분 전에 도착한 역에서 내내 시간을 죽이다가 굳이 막판에 화장실을 다녀와 코앞에서 기차를 놓친다. 정작 화장실에서는 손도 씻고 입도 헹구고, 머리카락 정돈까지 하느라 기차 시간이 닥친 것도 의식하지 못했다. 이렇듯 가끔 내나사가 제대로 풀려버린다.  속절없이 혼자 뒤로 가는 자동차나, 나를 플랫폼에 세워두고 휘잉 가버리는 기차처럼 멍청하거나 우스운 실수담이야 이불이나 펑펑 차고,  머리통을 한 대 콕 쥐어박으면 될 일 이지만 어떤 순간, 내 안에서 튀어나오는 악의 본성이, 악의가, 비뚤어진 화가 일을 키울때가 있다. 앞 뒤 없이 악의가 가득찬 감정이 치고 올라올 때, 냉정히 돌아보면 그 정도 일이 아님에도 눈 앞이 아득해지도록 화가 날 때, 나는 내가 진심으로 딱하고 징그럽다. 

          

한동안 허리 통증이 심해지면서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어떻게든 사람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한 걸음 딛을 때마다 땅에 닿는 발걸음이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직립보행이 낯선 기분이었다. 그 틈에 차곡자촉 살이 붙었는지 몸이 무거워졌고, 덩달아 마음 안에 무기력이 스며들려고 한다. 떨치고 싶었다. 이대로 또 주저앉아서 울고 불고, 그러다 또 괜찮은 척 허세나 떨면서 자기기만으로 버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굳이 걸어서 빵집이며, 마트며 부러 다녀오던 길이었다. 그런데 하필 횡단보도에서 멍하니 판단이 늦어졌고,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지 못해 누군가와 날을 세우고 싸워야 했다. 낯모르는 이에게 싸가지 없는 년 소리를 듣고, 낯모르는 이에게 욕을 내뱉었다. 실은 횡단보도에서 난데없이 멈춘 순간부터 이 모든 사달은 무의식중에 내가 만든 것이다. 상대가 내 의지대로 멈출리 없음에도 멈출것을 기대한다는 것부터 잘못 들어선 길이다. 그냥 후다닥 뛰어서 지나가거나 속으로 욕한마디 해 주고 스쳤으면 맥없는 해프닝으로 끝날일인데도 한껏 날이 선 내 안의 화가 결국 맥락없는 싸움을 불렀다. 싸우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게 싫다. 그렇게 분노가 나를 잠식하는 순간을 맞이하는 순간이 싫다. ‘나이 잡술만큼 잡순 분이 운전 참, 양아치같이 하네.’ 하고 그냥 지나갈 수도 있는 일이었음에도 왜 그 소용돌이 안에 내가 있어야 하는지, 억지스럽게 읽힐지 모르지만 그 찰라의 순간이 억겁의 뱀구덩이에 빠진것처럼 싫었다.      


혹자는 이렇게 써 놓은 글을 읽고, 자기 더러운 성질머리를 착한 척 합리화 한다고 읽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나는 세상 모든 이의 마음속에 좋은 사람으로 읽히고 싶은 욕구 따위, 애초에 없는 사람이다. 그런 거 신경 썼으면 저려오는 손목 붙잡고 이 글을 쓰고 있지도 않는다.        

  

나는 선하지 않더라도 보통의 사람들이, 그들의 잔잔함이 미치도록 부럽다. 매사 적당한 진폭을 가진 사람들이 부럽다.


별 것 아닌 일에, 한껏 악의를 끌어 올려 그 꼴로 결국 나를 부수게 되는 게 싫다. 

그 감정 끝에 밀려오는 서러움이 싫다.  


붉은 신호등을 켰다. 그곳에 멈춰라. 감히 발을 내딛지 마라.  닫아걸고, 숨어 있어라.



유난히 붉은 하늘이 쏟아진 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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