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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Sep 17. 2020

마늘도 찧고, 생강도 찧고.

내가 사는 집(정확히는 부모님 집)은 오래된 연립주택이다. 집도 늙고, 그 안의 사람도 꼬박꼬박 늙어가는 한물간 동네의 전형이다. 집이 낡은 만큼 여기저기 금도 제법 쩍쩍 가고 있고, 덧칠한 페인트는 아무리 새로 발라도 때깔이 곱지 못하다. 비막이로 설치한 옥상 위의 철판지붕은 이곳이 혹 공장인가? 싶을 정도로 센스가 없어서 볼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낡은 집의 문제는 많고 많지만 그 중 으뜸은 방음이다. 술술 새는 난방효율이나, 조금씩 바스러지는 외관은 돈을 조금 더 써서 보일러를 팡팡 틀거나, 군데군데 보수해 가며 살 수 있지만, 방음은 자체적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영역이다. 물론 공동주택에서 어느정도의 층간소음은 감수해야 할 몫이니 그저 팔자려니...하면서도 그때마다 약 1도쯤 머리온도가 상승하다가 내려가기를 반복하며 적응하고 살고 있었다.


옆집의 알람 소리에 덩달아 깨는 것은 예사에 앞집 현관문 닫는 소리에 우리 집 현관문이 들썩하고, 2층의 발걸음 하나하나는 고스란히 내 머리 위에서 공명한다.

혼자 사는 옆집 할머니가 굳이 본인이 주무시지 않는 것으로 추정되는 내 방과 맞붙은 방에 핸드폰을 두고 동절기에는 6시 50분, 하절기에는 5시 50분에 알람을 맞춰놓고 아침마다 그 방으로 쿵쿵 달려와 알람을 끈다는 것에도 익숙해졌다. 아마도 당신이 주무시는 동안은 핸드폰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할머니 나름의 법칙이 아닌가 짐작할 뿐이다.    


그런데, 마늘은 힘들었다.

2층 아줌마는 '모친피셜' 근처에서 주점을 하다가 접었다고 한다. 그래서 거의 하루 종일 집에 머무르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분이 언제부턴가 줄기차게 마늘을 찧기 시작했다. 살림하고 사는 집에서 마늘 찧는 소리가 안 날수는 없는 일이다. 허나 이 마늘찧기는 도가 지나친다. 한번 찧기 시작하면 적어도 30분, 어느 날은 1시간을 훌쩍 넘기기 십상이다.     


딸과 함께 단출하게 두 식구가 산다는데 도대체 무슨 마늘을 1시간을 찧는가? 어쩌다 한번 그럴 수도 있겠지. 한번에 대용량으로 찧어서 냉동을 해 놓을 수 있다. 김치를 담는 날일수도 있다. 그러나 2층은 일주일에 3번은 마늘을 찧는다. 마지막으로 마늘 찧는 소리를 들은 게 지난 일요일이었다. 쿵..쿵..쿵쿵쿵.... 쿵 쿵.. 쿵쿵쿵. 아침 9시 30분 이전 부터 시작한 마늘 찧기는 10시 10분 경에 마무리 됐다. 하아...     

새벽에 잠들었다가 마늘 찧는 소리에 결국 잠이 깨서 한 30분을 뒤척였다. 당시 핸드폰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이거 무슨 소리냐고! 애먼 모친에게 투덜거렸던 탓에 핸드폰 통화목록을 추적해 요일과 사건을 재구성 한 것이다.      




오늘도 2층은 아침 9시부터 마늘을 찧었다. 새벽 5시쯤에 겨우 잠이 들었는데 마늘 소리에 또 깨버렸다. 결국, 주섬 주섬 옷을 챙겨입고 2층으로 올라갔다.      


나: 마늘 찧으세요?

2층: 그런데요?

나: 뭘 좀 깔고 찧으시던가 적당히좀 찧으시죠. 머리가 울려서 잠을 못자겠어요.

2층: 아니, 집에서 마늘을 찧을 수도 있지. 마늘 안 찧어?

나: 왜 말이 짧아지세요?     


(나왔다. 마법의 문장! '어따대고 반말이세요!' 대화가 이 방향으로 흘러가면 이건 타협이 없는 대화다. 끝. 디 엔드. 그럼에도 이미 결말을 아는 대화가 맥없이 이어졌다.)     


2층: 아니, 기분이 나쁘잖아? 집에서 마늘 찧는다고 올라오는 게 정상이야? 마늘도 못 찧고 살아요?

나: 찧지 말라는 게 아니라 뭘 깔고 하시든가, 어디 올려놓고 하시든가. 바닥에 놓고 찧으면 아래층에서 울리는 건 생각 안 하세요? 그리고 가정집에서 길어야 5분이지, 30분, 1시간씩 마늘을 찧는 경우가 어딨어요? 

2층: 집이 이런 걸 어떡해? 그리고 무슨 1시간을 찧어? 

나: 어쩌다 한 번이고 잠깐이면 안 왔죠. 바로 며칠 전에도 40분 넘게 찧으셨잖아요?

2층: 뭐가 며칠 전이야? 나 마늘 딱 세 번 찧었어요! 

나: (말문 막힘).....세 번요? 제가 기억하는 것만도 세 번은 확실히 넘겠네요. 미치지 않고서야 한번에 뛰어올라오겠어요? 그리고 며칠 전에 안 하셨다구요?

2층: 안했어. 일주일도 넘었어! 아무튼 몰라. 모르겠고, 어쩔 수 없어요. 나는 마늘도 찧고, 생강도 찧고 살 거야! 가요! 별걸로 다 올라와!    

  

쾅, 현관문이 닫혔다.


어이가 없다.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오면서 이건 ‘냅둬야’ 겠다 생각했다. 상식적으로 1시간의 마늘찧기가 아래층에 끔찍한 소음이 될 걸 모를수가 없다. 그런데 그는 단 1그람의 미안한 기색도 없이 뭔가에 잔뜩 화가 나서 공격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머리위에서 ‘지축을 울리는’ 마늘 찧기가 자신의 당연한 권리인 듯, '감히' 그것을 침해하는 것에 양껏 분노하는 모습으로 눈꼬리를 치켜 뜨고 입가를 비틀었다. 오가며 웃으며 인사하던, 자기 고양이를 데리고 조용히 산책을 하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일그러진 모양새였다.

     

냅둬야지, 어쩌겠나. 집으로 돌아오니 머리위로 한껏 강도가 세진 쿵쿵 소리가 울렸다. 아마도 신경질이 났는지 더욱 힘 주어 내리치는 모양이다. 저 기세면 마늘은 아작이 나겠구나..

‘이 구질구질한 동네를 어서 떠나야지.’등등 괜한 청승을 떨기 전에 연관성 없는 생각의 꼬리를 잘랐다. 동네 탓이 아니라 1시간씩 마늘 찧는 사람이 문제다. 그런데 해결책이 없다. 애쓰지 말고 마늘 찧는 아줌마를 ‘냅두자.’                           

               

내가 마음이 넓거나 머리를 스치는 일상의 통찰, 뭐 깨달음 그런것이 아니라  말 해봐야 소용없는 막막함이 2층 아줌마에게서 보였기 때문이다. 한껏 악에 받친 듯 마늘도 찧고, 생강도 찧고 살거라 ‘바락’ 소리를 지르는 그에게 이러쿵 저러쿵 떠드는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어느 정도 미안한 기색을 기대하고 올라간 것부터 나의 오만한 뻘짓이었다.

  

그래요, 2층 아주머니, 마늘도 찧고 생강도 찧고 살아요. 아침 9시에 아줌마가 마늘을 찧으면 나는 이제부터 시끄러운 알람 소리로 생각하고 그 덕에 찐하게 매달린 통증과 슬그머니 파고드는 무기력을 떨치고 일어날 참이니까. 

        


분노의 마늘찧기는 약 5분 후에 멈췄다. 그러나 11시를 넘긴 시간까지도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쿵쿵 소리로 미루어 여전히 마늘을 찧고 있음이 분명했다. 다만 장소를 옮긴 모양이다. 싱크대에 서서 찧거나, 식탁 위에서 찧거나. 적어도 바닥에 대고 때려 찧지는 않는 모양이다. 얼마나 가려는지. 아무튼, 아줌마. 찧어요. 까짓 거. 아침 마다 쿵쿵 찧어요.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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