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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Nov 27. 2020

어쩌겠나, 써야지.

지난 여름에 작업실을 구해서 나온 후로 이미 두 계절이 지났다.

그간 계획 했던 일의 대부분은 실패로 끝나버렸고 추운 계절 앞에서 내게 남은 것은 살떨리는 불안과 막막함 뿐이었다.     

어디 가서 말을 꺼내기도 구차스럽고, 지나온 세월이 문득 후회스럽고, 매 순간 더욱 절실하지 못했던 나 자신에 대해 끝없이 실망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뭘 해야하지? 나는 어쩌지? 괜찮다고 마음을 다잡다가도 밑도 끝도 없이 무너지는 일의 반복이었다. 그럴수록 단단해져야 한다는 교과서(?)적 이론은 먼나라 이야기였다.


그런데...     





응모작이 내 마음 안에서 완벽하지 않았기에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였다. 그래서 소식을 듣고도 한동안 멍한 상태였다. 한참 후에야 '헤헤헤헤' 물색없이 혼자 웃었다.     

목표했던 일을 다 이루지는 못했지만, 다 실패하진 않았다.          




사실 글쓰기는 지독한 외사랑이다. 

혼자서 달려들었다가 상처받았다가 다시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엉겨붙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끝내 놓지 못하는 이놈의 빌어먹을 사랑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내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수시로 지치고 나가떨어지면서도 나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냥 혼자 쭈그리고 앉아 글을 쓰다가 어느 날은 방안이 울리도록 울었고, 어느 날은 정물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대여섯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 물 한 잔 마시러 의자에서 일어나면서 무릎이 꺾여 방바닥에 나뒹군 날도 있고, 퉁퉁 부은 얼굴로 추접스레 콧물을 삼킨날도 많았다. 그렇게 버티는 것이 글쓰기였다.     


혼자 버텼다고 했지만 온전히 혼자만의 힘은 아니었다.

나를 알고, 모르는 많은 이들이 문득문득 응원을 전해주었기에 죽을 것 같은 마음 뒤로 슬그머니 살고 싶어졌다. 그래서 울면서, 버티면서 글을 썼었다.     


그리고, 브런치.

(지금 쓰고 있는 곳이 브런치 라서 특별 언급이 아니라 내가 어딘가에 글을 쓰는 공간은 여기밖에 없다. 그러니 너무 으쓱하지 마라, 카카오.)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서 나의 글쓰기는 키가 자랐다.

나 좋아서 쓰는 글이라고는 했지만 누군가가 읽는 글이라는 적당한 부담감이 하고 싶은 말을 압축하는 법, 더 나은 문장을 찾는 법, 기왕이면 매력적인 구성을 찾아내는 방법을 궁리하게 만들었다. 이 모든 것들을 의식하며 쓴 것은 아니었으나 그저 일기처럼 써 재끼는 글줄 안에서도 나도 모르게 길을 찾고 있었다. 힘들다고 징징거리며 낯부끄러운 줄 모르고 눈물 콧물 처발라댔던 글이 한 뼘의 발판이 된 것이다.     


이렇듯 글은, 내가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던 순간에 다시 머리채를 잡아 일으켜 주었다.            

                                           



코로나 시국에서도 나름 ‘청정지역’을 유지하던 내가 사는 작은 도시는 며칠째 확진자가 무서운 속도로 추가되는 중이다. 심각한 상황이라 생각은 했지만, 코로나 상황이 시작된 이후에도 확진자 수는 거의 0에 수렴하는 지역에 살다 보니 실제로 와 닿는 느낌은 조금 느슨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갑작스런 확산에 꽤나 당황하는 모양새이다. 이 시국에 나는 지독한 감기에 걸렸다. 엊그제, 밤부터 새벽까지 추워지는 공기를 느끼면서도 보일러 온도를 올리지도, 난로를 켜지도 못했던 탓이다. 

아, 이번에는 난방비 때문이 아니다.     


무언가를 쓰고 있던 중에 한 순간의 호흡도 놓칠 수가 없어서 움직이지 못했다. 아주 작은 움직임 때문에, 잠깐 난로를 켜느라 손을 뻗는 그 동작 하나 때문에 호흡과 감정이 흐트러지는 것이 싫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새벽 5시였고, 방안은 입김이 나올 지경으로 추웠다. 미친짓이다. 이미 그 전부터 가볍게 앓고 있던 감기가 심해진 것은 그 ‘미친짓’의 대가였다.      


나는 이런 인간이다. 

그러니 어쩌겠나.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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