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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Dec 05. 2020

아침에 일어나는 일과 돼지 뒷다리.

생이 아침잠이 많다. 학교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살았지만 늘 지각을 밥 먹듯 했고, 강제력이 없는 날에는 해가 중천에 떠야 일어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의 엄마 조차 ‘딸년에게 아침밥을 재촉하는 일’ 따위는 아주 일찍 포기하셨다.      


물론, 아침에 출근해야 하는 일을 한 적도 있었으니 그때만큼은 자본주의의 노예로서 그 직분에 맞게 아침에 일어나는 기적을 행하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후의 1분까지 이불에서 버티느라 아침 출근길마다 아찔한 속도로 도로를 질주하는 위험천만한 운전행태를 매일 반복해야 했다. 하늘이 도왔는지, 살아있다. (감사합니다.)      


밤이 되면 말똥말똥해지고, 어둑해지는 무렵부터 기분이 좋아지고, 깊은 밤의 고요가 나를 평안하게 했으니 그 밤을 잠으로 보내기엔 너무 아까웠다. 그렇다고 잠의 총량이 적지는 않으니 자연히 기상 시간은 늦어졌다. 그러나 이것도 누울 자리 보고 발을 뻗어야 하는 법, 세상의 시간은 어쨌거나 저쨌거나 하루는 24시간이고, 한 달은 30일 전후였으며, 일 년은 365일 내외였다. 무엇을 하든 기한은 정해지는 법이다. 제아무리 독고다이(獨 go, die)로 살고 싶다 해도 세상의 중심은 내가 아니다. 당연히 정해진 시간에 맞춰 결과물을 만들어야 했으니 나도 자연스레 낮에는 무언가를 하고, 밤에는 잠을 잤다. 나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하루가 길었고,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밤에는 마음껏 놀 수 있으니 심리적 성취감 면에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한동안 적당히 아침에 일어나, 적당히 밤에 잠드는 생활을 유지했었지만 최근 몇 달 사이에 모든 생활 리듬이 엉망으로 꼬여버렸다. 아니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는 편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슬그머니, 야금야금 한 시간, 두 시간 기상 시간이 늦춰지더니 결국 요 며칠 오후 2시에 비척비척 일어나는 지경이 되고 말았는데 그도 뭐, 나만 괜찮으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하지만 괜찮지가 않았다.     




처음에는 무언가를 쓰느라 새벽까지 잠이 들지 못했던 것이었지만, 나는 많은 부분 게으르고 물렁한 사람이라 하나의 목표가 끝난 후에는 마냥 느슨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니 그 시점부터는 그저 잠이 오지 않아서 맥없이 밤을 흘려보냈다. 핸드폰을 끼고 유튜브를 보다가, 나중에는 두통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빙글거리다가 눈이 튀어나오기 직전에 제풀에 지쳐 잠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몸이 전 같지 않다. 객관적으로 인과관계를 증명할 길은 없지만, 그 이후부터 미친 듯이 살이 쪘고 무기력했다. 분명히 자고 일어났는데도 피곤해도 너무 피곤했다.      


오후 2시에 일어난 사람이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를 시작하는 시간은 오후 5시쯤이다. 겨울이라 해는 짧고, 조금 머뭇거리다 보면 해가 졌다. 그 시간에 나가 운동? 적어도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토실토실 오른 살은 떠날 줄을 모른다. 무거운 몸은 무거운 마음을 동반하고, 아, 만사가 귀찮다. 허리와 손목, 뼈마디 구석구석 또한 정상이 아닌터라 한걸음을 뗄 때마다 ‘에구구, 어이구야’ 할머니의 추임새가 절로 나온다. 운동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게 말이다. 그런데 창밖은 어둡고 춥다


나는 하루를 시작한 지 겨우 몇 시간 되지 않았는데 어느새 세상은 문을 닫을 준비를 하고 있다. 괜히 도시락이 먹기 싫은 날, 배달의 민족을 호출한다. 배달 최소금액을 맞추려다 보니 항상 정량보다 많은 양의 음식을 배달 시킨다. 아까우니 버릴수도 없고, 남겨두면 먹게 되지 않을테니 결국 내 뱃속에 저장! 살이, 찐다.         




오늘도 새벽 네시 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추천한 영상들도 질려가던 차에, 책을 낭독해 주는 영상이 추천영상으로 걸렸다. 침대에서 내려와 좁은 공간에 웅크리고 앉아 무심히 영상을 틀었다. 하필이면 하루 30분을 걸으면 어쩌구 저쩌구.....결국 걸으란 얘기였다. 운동? 이런 젠장.   

  

방에서 나가서 냉동실 문을 열었다. 어디서 온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맛이 없어서 홀대 받고 있는 돼지 뒷다리살이 꽁꽁 얼어있다. 어디서 온 것인지 알 수 없는 돼지 뒷다리살을 꺼내 냉장실로 옮겼다. 내일은 저것을 두드려서 돈까스를 만들어야지. 생각하며 다시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청소기를 돌렸다. 엄마가 좋아한다. 효녀 코스프레가 아니라 나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러니 주변이 정갈해야 한다. 목표는 돼지 뒷다리. 그런데 냉장실에서 해동 중인 돼지 뒷다리가 아직 덜 녹았다....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돼지 뒷다리가 뭐라고.


일단 작업실에 나와 책을 몇 장 읽었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잠시 후에 집에 잠깐 돌아가야 한다. 할 일이 남아있다.  

    

우선 적당히 녹은 돼지 뒷다리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그리고 칼집을 내서 팡팡 두드린다. 가능하면 흠씬. 노곤해지도록 흠씬. 소금을 살살 뿌리고, 후추를 뿌린다. 그 상태로 얼마간 숙성시키면 좋겠지만, 나는 성격이 급하므로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 노곤해진 뒷다리살에 소금과 후추를 배어들게 한다. 큼직한 볼에 계란을 풀고, 쟁반에 밀가루를 펼치고, 다른 쟁반에 빵가루를 펼친다. 순서대로 퐁당, 퐁당. 퐁당. 

돈가스를 튀길 것이다. 등심보다는 맛이 없겠지만, 뒷다리살도 잘 두드리면 괜찮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기를 튀긴 음식이 맛이 없기는 어렵다.      



목표는 삶의 습관과 방향을 기꺼이 바꾸게 한다.

비록 그것이 돼지 뒷다리라고 할지라도.     



그래서 운동은? 

..................사람,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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