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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Dec 07. 2020

하기 싫은 일을 하기 싫어서 하는 일

어차피 흘려보낼 시간이라면.

글이 써지지 않는 날에는 그저 가만히 앉아있었다. 상념마저 멈춰버린 시간이 무위로 흘러가는 것이다. 한없이 늘어졌던 기상 시간은 엊그제부터 <그나마 아침일 때>로 맞춰지는 중이다. 마음 안에서 <불안과 다그침>을 비워냈기 때문이다. '일어나자마자 급하게 하루를 시작하지 않아도 좋다.'는 여유를 스스로에게 건넸다. 침대에 걸터앉아 벽지 무늬를 세는 것도 괜찮고, 잘 마시지 않던 인스턴트 커피믹스를 홀짝 거려도 괜찮다. 늘 하던 대로 아침밥은 건너뛰어도 되고, 눈곱이 붙은 채로 집을 나서도 괜찮다. 


나는 수 없이 종종거리며 스스로를 다그치고, 끝없이 불안해하고, 나를 미워했지만, 우습게도 그런 것 치고는 대단히 이룬 것이 없다. 별로 이룬 것도 없으면서 나는 나를 너무 혼내고, 다그치고, 미워했다. 그래서 적어도 불안과 다그침만이라도 비워내려고 했다. 그리고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의 범위를 넓혔다. 


당장 눈앞에 놓인 일을 하고 싶지 않은 마음, 글 한 줄이 쓰기 싫은 마음, 추운 아침에 눈 뜨기 싫은 마음. 

그런데 그런 것들 뒤에는 반드시 책임질 일이 뒤따랐다. 잠시 눈을 감아 외면해도 결국 내 손으로 해결해야 할 것들이 주렁주렁 뒤따라오는 법이다. 그래서 정말 하기 싫은 것이 무엇인지 범위를 확장해 보았다. 그 끝을 따라가 보니, 결국 나는 목표를 앞에 두고 제풀에 지쳐 포기하고, 그 때문에 또 좌절하는 악순환이 끔찍하게 싫었다. 그렇다고 해도 당장에 신이 내린 듯 명작이 써질리도 없고, 자잘하게 하기 싫은 것들은 여전히 하기 싫었다.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나는데, 사람이 게으른 이유는 완벽하고 싶은 두려움 때문이라고 했다. 글이 써지지 않는다고 그저 하루를 멍하니 흘려보내는 나는, 지독한 두려움 덩어리였다.

그래서 글이 써지지 않는 날에는 가장 하기 싫은 것을 하나씩만 하기로 했다. 하고 싶은 일을 완벽하게 하지 못할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흘려보낼 것이라면, 차라리 그 시간에 하기 싫은 다른 일을 하나쯤 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러나저러나 시간은 지나가니까.



  

오늘은 '걷기' 였다.

가까이에 근린공원이 있어서 트랙을 따라 뱅뱅 돌아도 되겠지만 기왕이면 호수가 보고 싶었다. 지난번에 찾았을 때, 아직은 가을이라 했는데 이제 겨울이 시작되는 중이었다.





트렁크에서 운동하기 좋은 운동화를 꺼내 신고 (가볍고 내 발에 잘 맞아서 걸을 때 불편하지 않다. 오직 걷기 전용 신발이다.) 두툼한 패딩으로 중무장을 했다. 걷는 내내 바람이 앞에서 불어서 모자가 계속 훌러덩이다. 걷는 방향을 바꾸면 되겠지만 걷는 방향도 나 나름의 선호도가 있는 영역이라 바꾸기 싫었다. 덕분에 모자는 계속 훌러덩이다. 맞은 편에서 바람에 실려(?)오던 이가 벗겨지는 모자를 꽉! 부여잡은 나를 보며 피식 피식 웃는다. 마스크로 가려도 다 보인다. 실룩이는 입가와 눈매를 어찌 감추나. 멍청해서 이렇게 걷는 게 아니라, 나는 이 방향이 더 좋아서 이렇게 걷는다. 흥.





큼직하고 동그란 해가 너무 예뻐서 제자리에 멈춰 서서 해 사진을 찍었다. 몇번을 찍어도 사진상으로는 사이즈가 확 줄어버리니 내가 본 큼직한 해를 도무지 담을 수가 없다. 역시 아름다운 것은 그 순간 눈에 담는 것이 최선이다. 호수는 슬슬 얼어붙을 기세인데 아직 얼지 않은 호수에는 오리들이 떼로 몰려다니고, 자맥질에 날갯짓에 제법 바쁘다. 금방 눈이 올 것 같은 뿌연 하늘과 스산한 분위기를 타고 바람이 세진다. 한 바퀴만 돌려고 했는데 두 바퀴를 돌았다. 글이 쓰기 싫어서 가장 하기 싫은 일을 했다.  


하기 싫은 일을 하기 싫어서  하는일, 그러다 보면 그 일이 하기 싫어서 '두려움 때문에 하기 싫던' 일을 하지 않겠나 하고 막연히 생각한다. 그리고 사실은 하기 싫은 일은 해야 할 일이기도 했다. 

        



                             


나조차도 낯설고 믿을 수 없지만, 나다. 

사진발, 각도발을 감안해도 제법 슬림하다. 겨우, 2년전이다.

음... 글쓰기 싫어서 걷다 보면 혹시 살이 빠지지 않을까? 어느 쪽이든 '개이득'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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