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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Sep 18. 2022

어떤 이상한 가족의 이상한 작별 이야기(1)

*매우 길고 지루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상하다(異常하다.)


1. 정상적인 것과 달라 별나거나 색다르다

2. 기능이나 활동이 원활하지 못하다

3. 의문이 있거나 의심스러운 데가 있다          



이상한 가족은 지방 소도시에 사는 4인 가족이다.

부모와 딸 둘.     


이 가족의 아버지가 이 세상의 삶을 마쳤다.

아버지가 병원에 실려 가던 날, 이름 없는 늙은 작가 나부랭이로 살고 있던 큰 딸은 허름한 작업실에서 풀리지 않는 원고를 붙잡고 씨름을 하고 있었고, 오후 4시 언저리 잠시 낮잠을 자고 싶어 집으로 들어갔었다. 하지만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를 반긴 것은 쓰러지듯 자고 싶었던 그의 침대가 아니라 닫힌 방문 너머의 아버지와 큰 딸이 들어서기가 무섭게 ‘저 방에 또 앓아누웠다.’는 엄마의 한숨 섞인 전언이었다.           

엄마의 언어습관은 대부분이 한숨이거나 짜증이거나 신세한탄이었다.

듣는 사람이 불편하다고 해도 그때뿐, 고단한 세월만큼 뼛속에 박힌 말 습관은 고친다고 고쳐질 리 없는 일이다.         

 

불쑥 화가 치민 딸은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병원을 갈 거면 빨리 차에 타고 아니면 119라도 불러! 그러게 내가 가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어! ”     

 

라고 짜증을 쏟아냈다.     


고단했다. 반복되는 상황이 너무 고단했다.     

 

아버지는 계속 아팠다. 여기가 괜찮아지면, 저기가 아팠고, 저기가 좀 나으면 다른 곳이 아팠다. 딱 10년 전, 후두암 진단을 받고 방사선과 항암치료로 5년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폐에는 수년간 낫지 않는 결핵이 있었고, 1년여 전에는 허리가 부러졌다.      


그런데 그는 늙은 자신을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았으며, 스스로를 딱하게 여겼다.

술만 취하면 당신 이름을 목놓아 부르던 사람이었다.      


“내가 최**이여! 니깟 것들은 나한테 아무것도 아니여! 다 죽어! 이 최**이 안 죽었어. 같잖다. 야야!”   

       

80세에 가까운 나이에도 돋보기 없이 지역신문을 읽을 만큼 시력이 좋았던 그는 어느 날부터 글씨가 잘 안 보이기 시작했다. 동네 안과에서 특별한 병명을 찾아낼 수 없으니 처치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안약만 처방해 주자 욕을 욕을 하며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그 길로 서울에 사는 고모에게 전화를 했고, 고모는 또 득달같이 작고한 언니의 아들들인 조카들을 들볶아 서울의 모 대학병원 안과에 떡하니 예약을 잡아놓았다.      


그리고 보호자 자격으로 따라나선 엄마까지 두 노인네가 고속버스를 타고, 택시를 타고 찾아간 대학병원의 안과에서는 현재 결핵치료제가 눈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했고, 치료를 위해 항생제를 써야 하는데, 이 항생제가 결핵치료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사용 여부를 현재 치료받는 병원의 의사에게 물어보고 의사의 소견서를 받아오라고 한 것이다.

    

그렇게 서울의 대학병원의 전달사항은 이 집구석에서 유일하게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큰딸에게 날아들었다. 종이 조각을 받아 든 큰딸이 할 일은 1시간 거리의 또 다른 대학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상황 설명을 하고, 소견서를 받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두 노인네들은 서울 병원에서 받아왔어야 할 의견서를 쏙 빼놓고 그냥 덜렁덜렁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서울 병원에 전화를 해서 사정을 설명하고, 구술로 받아 적은 내용만으로 아버지가 원래 다니던 대학 병원 담담 교수에게 설명하는데, 그는 ‘의사가 발행한 의견서’ 없이 자신에게 ‘소견서’를 내놓으라는 것에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고, 그 유탄은 고스란히 큰 딸이 맞아야 했다.          


이 치료는 절충안이 없었다.

눈을 택하면 폐가 나빠지고, 폐를 택하면 눈이 나빠졌다.

그래서 안과의사는 일정기간 동안만 안과치료제를 복용하라고 권고하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말을 듣지 않았다.

‘안경 없이 신문을 읽는 밝은 눈’을 놓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럴만한 게 악마스럽게도 약효가 좋았다.

결국 치료가 끝났음에도 호흡기 내과의 치료제는 먹지 않았고, 엄마가 그것을 나무라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눈이 나빠지잖아!”    

      



위에서 잠시 등장했던 고모는 딸 다섯, 아들 셋의 세 번째 딸이다. 위로 오빠가 셋, 언니가 둘, 아래로 동생이 둘. 딸 중에 가운데이고 아버지의 바로 아랫 동생이다. 실제 열세 살에 시집 온 할머니가 낳은 자식이 열셋이라던가, 열둘이라던가 했다는데 호적에 이름을 올린 여덟만이 돌을 넘겨 이름을 남기고 어른이 되었다.     

 

이 고모는 강원도 평창에서 재산깨나 있던 집안이 환란에 휩싸이며 쫄딱 망해버리자, 집안이 멀쩡했던 때 시집 잘 간 바로 위 언니의 집으로 들어가 식모살이를 시작했다. 혼기를 놓쳐 그대로 혼자 늙었고, 재산은 꽤 있으되 쓸 줄을 몰랐다. 그의 삶은 1970년대 혹은 1980년대 어디쯤에 멈춰있는 것과 같아서 본인이 살고 있는 집이 삼각지역에서  약 2분 거리임에도 여전히 용산역 옆이라 주장하고 있다. 또한 본인만큼이나 먹고 살기 고단했던 오빠의 삶을 기억하는 터라 수시로 먹을 것을 택배로 보냈다.      


<유통기한 임박한 라면, 국수, 어디서 얻은 떡, 또 어디서 얻은 쌀, 어딘가에서 얻은 엑기스, 싸다고 잔뜩 산 돼지 뒷다리, 소금에 푹 절여 폭 삭은 조기 등>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의 짜증과 함께 대부분 버려질 쓰레기들이었지만 보내는 누이나 받는 오빠나 멈출 생각이 없었다.      


아버지는 택배를 보냈다는 동생의 전화를 받으면 고새를 못 참고 택배회사에 쫓아가 직접 찾아와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고 그걸 못하게 막으면 안절부절과 짜증을 반복하던 사람이었다. 어차피 저녁때면 배달 기사가 들고 올 것인데 그 시간을 못 참는 것이다. 동생이 보낸 귀한(?) 음식이 상할까 봐 그러는 것이다.


그날은 아버지가 짜증을 내거나 말거나 택배를 찾아오지 않았다. 이미 기력이 쇠한 아버지는 슬슬 내 눈치를 보면서 내가 택배사에 가기를 원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내 허리가 더 소중하다면서 단호하게 거절했고, 아버지의 걱정과 달리 택배는 저녁에 문 앞에 놓였다.  그런데 이미 이야기했듯 온갖 것들이 들어있는 택배 상자는 배달기사가 ‘아유, 씨.’ 소리를 낼 만큼 어마어마하게 무거웠고, 배달 기사는  상자를 현관문 앞에 말 그대로  내던졌다. 그 소리가 쿵! 울렸고, 아버지가 느린 걸음으로 현관으로 나갔다.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누가 말릴 틈도 없이 박스를 드는 순간 우둑! 하면서 아버지의 허리가 부러졌다.     


이미 오랜 시간 병약해진 아버지의 허리는 수술과 시술, 그 어떤 것도 불가했고 그저 더 이상 나빠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후 정기적으로 다니던 1시간 거리의 근처 대학병원은 큰 딸이 모시고 다닐 수밖에 없었고, 별로 친하지 않은 부녀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엄마가 따라다녀야 하는 온 가족의 고행이 시작되었는데 이후 큰 딸이 작은 회사에서 알바를 시작하자 두 노인네가 버스를 타고 고집스레 병원을 다녔다.     


그러나 아버지는 눈이 나빠진다며 처방약을 제대로 챙겨 먹지 않았다. 그렇다고 병원을 놓지도 않았다. 엄마의 구박을 들으면서도 아버지는 매달 병원행을 고집했다.       


그리고 또 고모에게 허리가 아프다고 하소연을 했다. 오빠를 끔찍이 아끼는 동생은 또 조카(본인이 식모살이했던 언니의 아들)를 들볶아 이번엔 대학병원 정형외과에 예약을 잡았다. 본인이 쓰레기 더미만 보내지 않았으면 부러지지 않았을 오빠의 허리 때문에. (정작 고모 본인은 몰랐다.)


큰 딸은 서울까지는 무리라고 가지 말라고 했었다.

대학병원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도 그 허리를 어찌해 줄 수 없다고 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본인 몸 상태 때문에 맞지 않겠다며 친히 ‘접종 거부’ 했던 코로나 백신을 당장에 맞아야겠다며 나섰다. 가족들에게 상의도 없이 다짜고짜 보건소에 찾아가 서울 대학병원을 가야 하니 당장 접종하겠다고 하니 난감해진 보건소 담당자는 자식에게 전화를 걸었고, 결국 딸이 담당자의 짜증 섞인 면박을 대신 듣고, 아버지를 일단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급히 예약을 해서 며칠 후에 백신을 맞았다.     

백신을 맞고 이틀을 꼬박 앓고 나서 이틀 후에 집안 장손(큰 형의 손자, 서열상 큰 딸에게 조카가 되지만 큰 딸보다 열 살이 많다.) 도움을 받아 서울로 떠난 아버지는 돌아오자마자 다음날, 일어나지 못하고 앓아누운 것이다.


집에 돌아왔던 딸은 짜증을 냈고, 그대로 작업실로 돌아갔다.

그날 밤 응급실 의사에게 전화가 걸려와 아버지의 산소포화도가 지금 당장 돌아가셔도 이상할 게 없는 상태라며 유사시에 심폐소생술을 시행할 것인지를 물었다. 옆에서 ‘그런 거 안 한다.’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으나 의사는 다른 가족의 동의도 구해야 한다며 지금 당장 응급실로 오든지 의견을 밝히라고 했다.      


소생 거부.     

 

큰딸이 답했다. 아버지의 갈비뼈는 한 번만 눌러도 바로 부러질 상태였고, 소생은 커녕, 온몸이 바스러질게 뻔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그날 살아남았다.

그때 엄마와 큰 딸은 아버지가 늘 그러했듯 한 차례 폭풍을 일으켰다가 한껏 잠잠해진 모습으로 되돌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코로나 때문에 자유로운 출입이 어려운 상황에서 가족이 아버지의 간병을 하는 일은 불가했다. 이 가족의 큰 딸은 출근을 해야 했고, 엄마에게는 보살펴야 할 둘째 딸이 있었다. 제 발로 걷지 못하고, 화장실도 갈 수 없는 심한 장애를 가진 장애인이었다.      


그렇게 병원에 홀로 남겨진 아버지는 증세가 좋았다가 나빴다가를 반복했고 결국 섬망이 찾아와 난동을 부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간호사와 몸싸움(?)을 하다가 피부가 다 벗겨져 드레싱을 하고 침상에 묶였다. 이런 피부 상태인 것을 짐작도 못한 간호사는 보호자의 질책이 두려웠는지 큰 딸에게 전화를 걸어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을 설명하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아버지의 피부 상태가 보통 사람들과 달라서 살짝만 잡아도 허물이 벗겨지는데, 미리 묻지도 알려주지도 않은 상호 간의 불찰이 있었으니 문제 삼지 않겠다. 다만, 다음부터는 ‘잡지 마라.’ 일렀다.     


이후 엄마가 병원 측의 특별 배려로 면회를 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당신이 버림받은 것이 아니니 기다리는 말을 전하고 아버지의 상태는 조금 좋아지는 듯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의사의 호출 전화를 받았다. 엄마 말고 다른 보호자를 찾은 것이다. 의사 입장에서는 자신의 말을 그나마 제대로 이해할 대상이 필요한 것 같았다.


의사 앞에 앉은 큰 딸은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을 이해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동생은 내가 돌볼 테니 지금 당장 엄마는 아빠 옆을 지키라고 했다.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눈이 나빠진다며 약을 끊은 순간부터? 택배상자를 들다가 허리가 부러진 순간? 안맞겠다고 버티다 뒤늦게 맞은 코로나 백신? 쇠약해진 몸으로 서울까지 간 고단한 일정? 밥이 안 넘어간다고 해서 간호사가 줬다는 베지밀이 기도로 넘어가 흡인성 폐렴을 일으킨것?.......명확한 답은 없었다.


예의 말버릇처럼 ‘아으., 뭐가 이렇게 사는 게 더럽냐.’를 한탄하던 엄마는 다음 날 병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빠 괜찮아. 별일 없어.’ 하던 엄마의 말과는 달리 아버지는 큰 딸의 생일 다음 날, 이른 아침에 세상을 떠났다.      


의식이 없는 채로, 숨만 붙어있던 모습이 큰 딸이 마주한 아버지의 마지막이었고 술만 취하면 불쌍해서 어쩌냐던 당신의 둘째 딸은 끝내 만나지 못했다.      

큰 딸은 많이 후회했다. 그날 숨소리마저 조용하던 방문 너머의 아버지를 보지 못했던 것을, 의사를 면담할 때, 특별히 의사 재량으로 허가해 줄 테니 페이스 실드를 쓰고 아버지를 만나라고 했을 때 보지 않겠다고 한 것을.     


큰 딸은 아버지의 생전 마지막 눈빛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1년이 훌쩍 넘었다.             




다음 편에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말보다는 글이, 그리고 그보다 침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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