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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Aug 16. 2022

말보다는 글이, 그리고 그보다 침묵이.


수줍음이 많고, 소심한 사람이었다. 그저 이만큼 살다 보니 세월만큼 쌓인 뻔뻔함과 그래도 어울려 살아보겠다고 후천적으로 체득한 수다스러움으로 때로는 명랑하게 보일 만큼 말을 많이 하기도 하지만 사실 나는 말이 어색하다.    

특히, 감정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이 편치 않다.


내가 힘들다거나, 기쁘다거나, 아프다거나, 지친다거나 그런 말을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기쁨을 나누는 일에도 어색하고, 아픔을 꺼내는 일은 낯섦을 넘어 힘들다. 그런다고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뻔하디 뻔한 결말 때문일 것이다.      


그나마 말보다는 글이 조금은 편해서 간혹 글로 불특정 다수에게 쩌렁쩌렁 속엣말을 하곤 하는데, 실은 그조차 괴로운 일이다. 마음 안의 그것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손끝으로 내보내는 매 순간, 가쁜 호흡과 쏟아지는 눈물을 부르는 일이다. 그 와중에 적절히 걸러내기까지 해야 하니, 가뿐할 일도 아니다.      

결국 좋지 않은 상황에는 말이든, 글이든 좋지 않다.     

늘 하는 말이지만 해결책은 없기도 하고 한편 명확하기도 한데, 모든 것이 나에게 달렸다.


화가 날 때 침묵을 택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다. 화를 삭이는 과정이라 하던데 나는 그보다는 이해의 과정이고, 위로의 과정이다. 


화를 낼 대상이 자신이니 이걸 죽일 수도 없고, 미워하는 데도 한계가 있지 않겠는가.    

미운데 짠하고, 꼴뵈기 싫은데 딱하니 입이라도 닫아야 밉다는 소리가 안 나올 것 아닌가. 


...입 닫고 숨을 곳을 찾는다.






처음에 작업실을 구해 나왔을 때부터 일정 부분은 현실 도피였다. 

뭣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중년의 뚱뚱한 여자 사람보다는, 작가였던 혹은 작가일 사람이라는 허세 섞인 합리화가 덕지덕지 붙은 공간이 나의 작은 작업실이었다.      


글 한 줄 안 쓰는 날이 태반임에도 빠듯한 형편에 따박따박 월세를 내면서 이곳을 유지하는 이유는 숨을 곳이 없으면 정말 죽을 것 같아서였다.         

 

그 속사정을 알 리 없는 늙은 엄마는 늙어가는 딸에게 도시락을 들려보낸다.

늘 내가 먹을 수 있는 양보다 많은 하얀 밥을 꾸역꾸역 우겨넣을 때마다 슬픔이 뒤엉킨 짜증이 목구멍에 잠기는 것 역시 알 도리가 없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죄 없는, 그러나 명백한 죄책감이다. 



오늘도 또 숨을 곳을 찾는다.

글이 두서없고, 어지러운 것은 作者가 두서없고 어지럽기 때문이다.     



입을 닫고, 손가락을 닫는다. 

짙은 침묵 안에서 오롯이 나를 들여다본다.

끝내 어려운 답을 찾아내거나, 페이지를 덮거나. 


선택은 내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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