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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Mar 19. 2022

증평역에서 내린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제주도.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3월 초, 알바 하던 직장의 퇴사를 앞두고 제주도 여행을 계획했었다. 예정대로 퇴사를 하자마자 바로 다음 주에 제주로 떠났다.


이른 봄의 제주는 좋았고, 따뜻했고, 비가 쏟아졌고, 바람이 불었다.

무척이나 외로웠고,  한없이 편안했다.




첫인사, 차귀도의 안개와 바람






가파도의 청보리, 유체, 괜찮고, 괜찮다.



송악산 둘레길, 25000보.



포듀뮤지엄의 생각거리, 제주에서 만난 이중섭, 서귀포의 하늘.






가파도로 들어가는 배를 탔는데, 핸드폰이 없었다. 또 핸드폰을 잃어버린 줄 알고 얼른 배에서 내려 헐레벌떡 되돌아와보니 렌터카 안에 얌전히 있던 핸드폰. 너무 좋아서 ‘아, 다행이다. 여기 있다!’ 하고 소리를 질렀는데, 옆 벤치에 앉아 쉬던 아저씨들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끄덕, 깊은 공감과 응원을 눈빛으로 건네주신다. 이거 참, 감사합니다. 다시 숨차도록 뛰어서 출발 2분 전에 배에 올라탔다.     


송악산 둘레길을 걸었다. 걷기 전에 해녀의 집에서 해물 한 접시를 하려는데, 일행과 함께 온 현지 아저씨 한 분이 말을 걸었다. 얼마간 각자의 테이블에 앉아 몇 마디를 나눴는데 나중에 소라 한 접시를 사주신다. ‘손님, 저쪽 테이블의 신사분께서 드리는 겁니다.’같은 로맨틱한 맨트 대신 해녀 아주머니가 접시를 툭 놓고 가시면서 ‘저짝 삼춘이 주거마씨. 맛나게 듭서.’ 하시면서 찡긋 웃으셨다. 혼자 여행 다니다 보니 이런 재미도 있다.                


혼자 여행을 다니면 밥 먹는 일이 제일 힘든 일이라고 하는데, 나는 여행 내내 혼자서도 야무지게 잘 찾아먹고 다녔다. 길을 잘못 들어 인파에 치이며 질려가던 차에 우연히 발견한 ‘혼밥’전문 식당이나(실제로 3인분 이상은 안 파신다고.), 평소라면 사람들로 복작거렸을텐데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한적했던 공천포의 작은 식당이나, 길게 줄을 서야 한다던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의 돼지김치말이 등등을 아무 기다림 없이, 눈치(?)보는 일 없이 먹으면서 따박따박 배를 불렸다. 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불던 마지막 밤은 숙소 옆 작은 와인바에서 혼술을 하며 여행을 마무리하는 호사까지 누렸으니 이만하면 선방이다.




내돈내산  그리고 남돈 남산

               




4박 5일 중, 하루는 흐렸고 이틀은 쨍했고, 이틀은 비가 왔다.

평소에 1미터도 걷기 싫어하던 사람인데 풍경에 취해 25,000보를 걷기도 했고, 살랑살랑 걷고 싶었던 길은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포기해야 했다. 대신 무작정 차를 몰아 닿은 곳에서 오래전에 본 영화속 풍경을 눈앞에서 만났다.     



비, 건축학개론.


치유의숲, 비온뒤 흙냄새.




마지막 날에는 비온 뒤 숲을 걸었다. 그리고 못내 바다가 아쉬워서 예정에 없던 여정을 추가했는데, 네비가 시키는 길을 벗어나 내멋대로 바닷가를 달리다가 5-6년 전에 여행왔다가 길을 잘못 들었던 골목길로 ‘또’ 길을 잘못 들고 말았다. 그 길이 그길인 걸 어떻게 알았느냐.  담장위에 올라앉은 강아지 때문이다. 그때 만난 애를 또 만났다. 너무 반가워서 “야, 너 오랜만이다!” 했는데, 개가 알아들을 리가. 그냥 컹컹 짖을 뿐이다.



6년? 전에 만난 강아지. 담장위에 올라간 녀석이 귀여워서 찍었었다. 이번에는 사진을 못 찍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가까운 곳이 오래 , 처음으로 제주도에 혼자 여행을 와서 3일을 지낸 곳이었다. 그 때 묵었던 숙소가 잘 있는지 궁금해서 슬쩍 찾아갔다. 버스에서 내려 어두운 밭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면 주인장이 직접 지었다는 작은 게스트하우스가 한 동 덩그러니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여행객들과 바닷가에서 보말을 주워 삶아 먹고 맥주를 마셨었다. 그 풍경은 당연히 사라지고 없었다. 그저 밭뿐이었던 곳은 곳곳에 건물이 들어섰고, 한적하던 바닷가는 프렌차이즈 커피점부터 밥집과 술집까지 모든 것이 다 있었다. 조금 서운했지만, 내 추억을 훼손하기 싫다며 한없이 잡아둘 수도 없는 것이 또 세상의 흐름일 것이다.      


또한 옛 기억은 보정되기 마련이다. 되돌려보면 마냥 좋기만 했겠는가. 아무것도 없던 휑한 바닷가는 가볍게 밥 한 끼 사 먹을 걷다가 불쑥 들어가서 차 한 잔 할 곳도 없었다. 짙은 밤바다는 무섭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배낭에 바리바리 짐을 짊어지고 걸어다니고, 게스트하우스에서 낯선 이들과 인사하며 한 방에서 밤을 보냈던 나는 렌트한 차를 타고 다니며 옆에 누가 있는 것이 싫어서 호텔방만 고집하는 사람이 되었다.


아, 그 때 내가 묵었던 게스트하우스는 외관의 빛이 많이 바랬고, 마당도 좁아졌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여담이지만 몇 년 전에 제주여행책을 쓴 작가분에게 전해 들은 바로는 그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이 게스트 하우스에 손님으로 왔던 분과 만나 결혼했다고 했는데 여전히 그 사람이 주인장인지는 모르겠다.

      

많은 것들이 변하고, 나도 나이가 들었다. 어떤 것들은 끝내 사라지고 어떤 것들과는 오랜 시간을 돌아서 재회한다. 여전히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고,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지 않지만 한편으로 흐린 날씨가 길위의 여유를 선물하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가슴저림과 감격을 만나기도 하듯 결국 흐르는 대로 흘러가다보면 닿을 곳에 닿는 것이 삶의 여정일 것이다.  

            




제주를 떠날 때 까지 끝내 날씨는 흐렸고 그 덕에 쨍한 바다는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이렇게 또 여행을 떠날 이유가 쌓였다. 다음에는 좀 덜 서툴겠지. 또 조금 더 유연해지겠지. 농익은 만큼 놓는 법도 알게 되겠지.    





여행이 끝나고 저녁 비행기로 돌아와 청주 공항에서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청주공항역은 청주공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이다.)

운전하기 피곤할 것 같아서 기차로 이동했는데, 다음에는 차를 가져가서 주차해 놓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피곤했다. 역시, 나는 늙어가는 중이다.


주섬주섬 열차에 올라 자리를 잡았다. 곧 열차가 출발했다.      

다들 자리를 잡은 열차 안에 한 사람만이 자리에 앉지 않고 서 있었다. 곧 승무원이 다가와 자리가 없냐고 물었지만, 답이 없었다. 이어 표 확인을 하자 표가 없다고 한다.어디서 탔냐는 물음에 답이 없었다. 역무원은 객실 안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면서 이 분이 어디서 탔는지 보신 분 있냐고 물었다. 많은 시선이 빨간 옷을 입은 그에게 향했다. 여자였고, 나이들어 보이는 옷차림에 비해 얼굴은 앳되어 보였다.시선의 초점이 일관되지만 사람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는다. 단답형의 음절은 딱딱 끊어지며 유기성이 없다.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과 특유의 말투, 지적장애인인 듯 보였다.


열차는 곧 증평역에 도착했고, 승무원은 여자를 데리고 내렸다.          

내내 마음에 걸렸다. 역 관계자도 알겠지. 설마 그냥 보내지는 않았겠지? 지나가는 승무원에게 물어볼까 망설였지만 그만두었다. 지나친 오지랖이다. 나이가 들수록 남의 일에 관심이 많아 진다더니.....

   

한 시간 후, 내가 내릴 역에 열차가 멈췄고 나는 내려야 했다. 묵직한 캐리어를 끌고 열차에서 내렸다.

집으로 돌아와 기절한 듯 잠에 들었고, 느즈막히 일어났다. 눈이 내린다.     




작업실로 나와서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봄날을 부정하듯, 갑자기 눈이 쏟아지는 자칫 비현실적인 현재를 바라보면서 며칠 동안 비워두었던 서늘한 방에 난로를 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열하게 살날을 다짐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내내 마음에 걸린것, 어젯밤 기차에서 스쳐간 그 사람이 생각났다.         


코레일 고객센터에 전화해 사정을 설명하고 증평역 전화번호를 문의했다. 전화를 받은 증평역의 직원은 어젯밤 근무자가 아니라서 어젯밤 일은 모른다고 퉁명하게 전화를 끊었다. 웹으로 증평역을 관할하는 경찰지구대를 찾았다. 전화를 걸어 조심스레 사건 경과를 물었다. 확인 후 연락을 준다고 했다. 약 5분후에 전화가 걸려왔다.


어젯밤, 증평역 부역장의 신고로 현장에 출동했고 빨간 옷을 입었던 그는 1994년 전**씨로 영동군에 살고 있으며 혼자 집을 나섰다가 열차에서 발견된 것 같다고 한다. 보호자인 아버지에게 연락해, 아버지가 와서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전화를 건 경찰관님이 너무나 디테일한 정보를 말씀하셔서 조금 당황했으며 개인정보는 알려주실 필요 없다고 했다.)     

          

스치고 지나갔을 사람, 나와 일면식도 없고 앞으로 만날 일도 없을 사람, 그런데 쓸데없이 그의 일상이 걱정되었고 그와 그의 가족의 일상이 무너지지 않았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나의 일상 또한 어떻게든 닿을 곳으로 굴러가기를 소망하며 다시 힘껏 살아내야 할 현실을 담담하게 마주하는 중이다.



4박 5일 제주의 풍광보다 빨간 옷의 그녀가 더 마음에 남은 것은 내가 발 디딘 곳, 보통 사람들의 삶의 굴곡과 위기, 그리고 극복이 바람에 방파제를 넘어와 차 앞유리를 덮치던 제주바다의 파도보다 가까웠기 때문일 것이다.  


한번의 여행이 또 끝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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