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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Feb 14. 2023

담담과 왈칵, 거기 어디쯤.

        

코로나 감염은 후유증을 남겼다.

격리기간은 일주일이지만 후유증은 한달, 그 이상도 생각해야 한다고 의사가 말했다. 

격리기간 동안 밥 먹고, 약 먹고, 자고 딱 세 가지로 하루 일과가 끝났다.

그것 밖에는 할 것이 없었고, 할 수도 없었다.     

따분하고 무거웠다.      


격리만 끝나면, 작업실에 나가 밀린 글도 쓰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운동도 다시 나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행정적 절차가 끝났을 뿐, 몸은 여전히 무겁고 아팠다.

갑자기 터져 나오는 기침, 가래, 지긋한 두통.

나오기는 나왔는데, 머리가 댕댕 울리니 뭘 하나 집중할 수가 없다.     

게다가 입맛이 싹 달아나 버렸으니 좋다면 좋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눈으로 보기에도, 체중계에 올라가 봐도 살이 깎였다. 감사한 일이다.      


다만, 입맛은 달아났으되 배가 안 고프지는 않아서 뭐라도 입에 넣어야 했다.

배달 음식을 시키려 해도 최소 배달금액을 맞추려면 양이 많아 버릴 판이고, 훌쩍 오른 배달비는 괜히 심통이 난다. 귀찮다...귀찮다 중얼거리면서 작업실 근처 작은 가게 쪽으로 발을 뗀다.




찐빵, 만두, 김밥. 딱 세 가지 종류의 음식을 파는 이곳은 1년여 사이 주인이 세 번 바뀌었다.      

그 설비 그대로 메뉴도 그대로 주인만 얼굴을 바꿨는데 첫 번째 주인은 만두가 덜 나가는 봄철이 되자 갑자기 ‘달팽이 액기스’니 ‘붕어즙’ 이니 ‘홍화씨가루’ 같은 찐빵, 만두, 김밥 같은 것과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팔더니 몇 달 문을 닫았고, 이어 머리에 큼직한 리본핀을 꽂은 두 번째 주인이 만두 찐빵과 함께 ‘공주 김밥’을 팔기 시작했다. 매장 안에는 ‘성공의 열쇠’ ‘부의 창조’ ‘무한의 가능성’이 빼곡하게 쓰인 보라색 벽이 눈길을 잡아 챘으며 다단계로 짐작되는 단체의 이름, 연락처가 붙어있었다. ‘공주김밥’ 과 썩 어울리는, 여리여리하고 눈이 크던 두 번째 주인은 어느 날부터 가게 안쪽에 누워서 낮잠을 자기 시작했다.      


지난해 가을,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여자와 5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가 함께 등장했다. 둘의 관계는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사이인 것 같은데, 젊은 쪽이 사장인 것 같다. 

혹은 공. 사 구별이 명확한 가족이거나.      


새로 시작한 이들이 그러하듯 이들도 의욕에 넘쳤다. 다소 부담스러우리만큼 친절한 인사가 그랬고, 기다리시는 동안 드시라던 믹스커피가 그랬고 서비스로 드리겠다던 찬 음료가 그랬다. 한쪽 구석에는 <장사의 신> 같은 책이 놓여있었고, 젊은 사장은 포스트잇에 손글씨로 메모를 적고 있었다. 배달주문이 들어오면 포장 용기 위에 메모지를 붙였다.      


사실 내 흥미를 끄는 것은 이 둘의 대화패턴이었다. 

젊은 쪽은 손님에게 한없이 친절한데, 중년 여자를 바라보는 눈에는 웃음기가 없었고, 중년여자는 젊은 쪽을 ~씨 라고 불렀지만 묘한 거리감이 있었다.      

젊은 쪽은 충분히 티가 날만큼 중년여자를 답답해 했고, 중년 여자는 입을 비죽이면서도 말은 듣지 않았다. 중년여자가 손님과 수다라도 떨라치면, 젊은 쪽이 칼같이 맥을 끊고 다른 일을 지시했다. 그러면 중년여자는 ‘얘는 나를 너무 미워해.’ 하면서 투덜투덜 돌아섰다. 

그리고 깁밥은 중년 여자가, 만두와 찐빵은 젊은여자가 담당하는것 같았다. 



오랜만에 왔더니 중년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입맛이 별로라 참치김밥 한 줄만 주문하고 멀뚱히 서서 기다렸다. 젊은 여자는 김밥말기에 익숙치 않았다. 김밥이 반쯤 됐을 때, 중년여자가 나타났다.      

~ 하느라 늦었다면서 (누군가의) 밥도 못 차려주고 왔다는 중년여자는 조리구역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내가 서 있는 곳에 같이 서서 김밥 마는 모양을 빤히 바라보고 서 있었고, 두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김밥을 말던 젊은 여자는 흘깃 눈을 들었다.      


-그렇게 보고 계시지 말고, 와서 직접 하시면 되겠네요.

-음, 아니야. 해봐. 하던 건 끝까지 해봐.

-....와서 하시라니까요.

-아니야. 해봐. 잘 하네. 뭐.     


이렇게 서로 모른 척 빤히 아는 대화를 할 수도 있구나.      


- .....그렇게 서 있지 말고 국물 좀 챙겨주세요.


중년 여자가 그제야 자리를 떠났다.      

돌돌말린 김밥 한줄을 받아들고 카드를 내밀었다.


- 원래 사천원인데, 제가 말았으니까 삼천 오백원만 결제할게요.

- 뭐가 달라요?

- 아니요. 똑같은데 (중년여자를 보면서) 전문가가 한 게 아니라서요.


카드를 받아들고 돌아서서 가게를 나온다.

등 뒤에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한껏 올라간 두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불편해.'



달랑달랑 김밥을 들고 들어와 책상 앞에 앉았다.

그냥 대충 포장지를 뜯어 책상 한 켠에 두고 한 알, 한 알 입안으로 밀어넣는데, 어른들이 말하던 모래알 씹는 맛이 이런 것인가 싶었다.  맛이 느껴지질 않는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진다. 

무력하고 지루하고 머리가 쪼개질 것 같은 코로나 후유증 탓인가, 모래알 같은 김밥 탓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사는 게 빤히 알 것 같은 위선인 탓인가, 혹은 빤히 알 것 같은 위악인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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