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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Feb 25. 2023

어? 나 이거 좋아하는데.

세차를 하겠다 마음을 먹으면 어김없이 눈이 오거나 비가 내렸다.

날씨를 핑계 삼아 마냥 내버려 뒀더니 타고 내릴 때마다 옷 조심을 하느라 더욱 신경이 쓰였다.

빨기도 어려운 핑크색 겉옷이 차를 쓸어 낼때마다 으아악! 소리가 튀어나왔다.


더는 봐주기 어려운 꼴이라 세차를 하기로 했다. 실상 세차라고 해 봐야 자동세차를 돌리고 물기만 대충 닦는 것이 끝이지만 이거 한번 움직이기가 이렇게 귀찮다.     

날씨가 좋아져서 그런가  세차줄이 제법 길었다.

바깥 날씨야 어떻든 창 너머로 비친 햇살이 쨍하니 다른 이들도 비슷한 마음이었나보다.

세차를 마치고 차의 물기를 닦느라 허리를 굽혔다. 대충 물기를 닦고 일어나다가 눈물이 질끔 난다.

내 차 사이드미러에 내가 이마를 박았다. 욕도 못하고, 화도 못낸다. 아프긴 정말 아프고.          




조금 걷고 싶어졌다.

가까운 호숫가를 찾았다. 길을 넓히는 공사가 한창이고, 오래되고 조악한 놀이공원과 봄이되면 꽃이 예쁜 나무가 있는곳.     

아직 코끝이 차갑지만 바람의 냄새가 달랐다. 성급한 봄마중이다.      

허리가 아파서 힘차게 걷지는 못하고, 아까 찧은 이마가 아직도 시큰 거리고, 마음이 썩 가볍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좀 걷고 싶었다. 걸을 때 마다 포인트가 쌓이는 어플을 보니 호수 한 바퀴에 3000보 조금 넘게 걸었다. 100보에 1원이니 30원을 벌었네.      

아직 나무는 새잎이 나지 않았고, 겨울이 지나가려는 호수는 군데군데 살얼음이 남았다.

역시 성급했나보다. 춥다.     





얼른 가야겠다 싶어서 걸음을 서두르는데, 놀이공원 입구 한켠에 세운 뻥튀기 트럭이 눈에 들어온다.

전에도 보기는 했지만 굳이 살 마음이 들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트럭이 발을 잡았다.

길을 건너기 전의 짧은 순간, 주인 할아버지가 미소를 지었다. 마음이 그리 간 것을 알아 채신 것이다.      


성큼 도로를 건넜다. 뻥튀기 한봉지는 삼천원. 멀리서도 보일만큼 큼지막한 계좌번호가 적힌 현수막을 걸어 두셨기에 현금이 없다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핸드폰으로 계좌이체를 하는데, 내 이름을 뒤집으니 예금주 이름이다. 아마도 할아버지 성함인것 같다. (예를 들어 내가 철수라면, 예금주는 수철인 것)     


입금자 이름을 <과자>로 바꿨다. 괜히 부끄러워서.

      

차에 타자마자 하나를 꺼내 먹었다. 와작, 맥없이 부서지는 식감.     

맞아, 나 이거 좋아했어.          





좋아하는 것들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것을 잊었다.

작은 것들도 좋아했었고 갖지 못할 걸 알았어도 그냥 좋아했었다.

     

언제부터 그렇게, 단단하고 완벽한 것들만 바라보았다고.

감히 갖지 못할 것 같으면 애써 돌아섰었다고.      


입안에서 맥없이 부서지는 뻥튀기도 좋았고, 바다에 튜브타고 누워 자는 것도 좋았다. 그러다 둥둥 떠내려가 안전요원 손에 끌려오는 쪽팔림도 좋았다. 빨간 립스틱이 좋았다. 모히또가 좋았다. 흰 눈이 좋았다. 목살이 좋았다. 책이 좋았다. 영화가 좋았다. 친구가 좋았다. 당신이 좋았다.


많은 것들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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