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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Mar 26. 2023

회색 담벼락, 그리고 연꽃.

지방 소도시에서 태어나고, 그곳에서 스물까지 살았다.

재수를 거쳐 스물 하나에 대학에 갔다.

처음으로 다른 도시에서 4년을 살게 된 것이다.    

대학에 갔을 때, 내가 제일 낯설었던 것은 대학캠퍼스나 공부, 자유 등이 아니었다.

친구들이 욕을 하지 않았다.

그 흔한 ‘씨x’ 조차 듣기 힘들었다.

나는 부럽고, 부끄러웠다.

아, 보통의 사람들은 이렇게 부드럽고 따뜻하구나.          




나는 가난한 동네에서 살았다. 골목길은 좁고, 어둡고 삐뚤삐뚤했으며 담벼락은 전부 회색 시멘트였다. 실수로 담벼락에 살갗이 스치면 여지없이 붉은 핏방울이 맺혔다.

해가 저물고 밤이 깊어지면 이집 저집에서 부부 싸움하는 소리가 담장을 넘었다.  담장을 타고 넘나드는 소리는 입에 담기도 어려운 욕설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좋다고 만나서 살을 부대끼고 사는 부부가 서로를 향해 저주를 퍼부었다.

무슨년, 무슨 년, 무슨 새끼, 무슨 새끼.


가난하다고 해서 모두가 그럴 리 없지만, 제 몸 하나 겨우 건사하며 마음 돌볼 틈 없는 이들은 자신들을 집어삼킨 팍팍한 삶을 향해 할 수 있는 것이 고작 욕지거리였다. 우습게도 그렇게 내뿜은 욕설은 자신의 귓가에 제일 먼저 때려 박히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자식의 마음에 때려 박혔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내 곁에 있는 친구들처럼, 나도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신분세탁하듯 담벼락의 기억을 지웠다. 불쑥 튀어나오는 욕을 도로 삼켰다. 내 말투를 의식하고, 습관을 고쳤다.

감정대로 냅다 욕을 지르는 삶이 아니라, 한 호흡 고르는 삶을 살고 싶었다.

살갗이 스치면 붉은 피가 맺히는 시멘트 담벼락이 아니라 낮은 울타리가 있는, 매끈한 벽이 있는 골목길을 걷고 싶었다.      




여섯 살 쯤, 작은 연못에 빠졌다. 눈, 코, 입으로 흙탕물이 밀려들었다.

겨우 몸을 일으켰는데 이번에는 무언가가 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겁에 질려 버둥거릴수록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끌려 들어갔다. 소리를 지르며 울자 입안으로 쏟아지는 흙탕물이 입을 막았다.      


어느 순간, 나는 버둥거리는 것을 그만두었다.

내 발목을 휘감은 것을 있는 힘껏 뿌리쳤다. 툭! 투둑. 그것이 끊어졌다.

발 끝에 알짱거리는 그것을 힘껏 걷어차고 물 밖으로 걸어 나왔다.      

계절이 지난 후에 다시 가 보니 그 연못에는 연꽃이 피었다. 내 발목을 휘감은 것은 연꽃 줄기였을 것이다.     


니들 처럼 없는 것들은 가족이 제일 큰 가해자인데. 왜 나한테 그래?


드라마 더 글로리의 등장인물 학폭 가해자 박연진의 대사다.

진짜 입을 찢어버리고 싶은 소리.

그런데 어느 한 끝, 말끔하지가 않다.

회색 담벼락의 동네, 불쑥 마음 가는 대로 내뱉는 신세한탄, 그 끝에 매달린 습관적 욕지거리.

제일 큰 가해자는 아니더라도 나에게 가족이란 아차 실수하면 긁히고 마는 회색 담벼락 같은 것이었다.           

돈이 없다고 해서 모두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닌데, 그렇다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어쩌면 당신들은 그렇게 서툴기만 했는가.

사실 나도 그랬다. 나는 다정함에 서툴렀고, 따뜻함이 어색했다.

어떠한 결핍으로 매끈하게 다듬어지지 못해 그저 상처만 내는 회색 담벼락이 될까봐 늘 겁이 났었다.       



    

꿈을 꾸었다. 가족여행을 가기로 했다. 비행기 시간이 다 되었는데 갑자기 아빠가 사라진 것이다. 전화를 했더니 엉뚱한 곳에 가 있어서 비행기를 놓치고 말았다. 화를 내면서 아빠를 데리러 가다가 꿈에서 깼다. 이건 또 무슨 개꿈인가 생각하며 부스스 일어났는데, 엄마가 슬그머니 내 눈치를 살피더니 바쁘지 않으면 아빠한테 좀 가보자고 한다. 설날에도 못 갔으니 한번 가봤으면 좋겠다고.          

 

겨우 발 하나 디딜 공간, 그 위에 작은 비석에 아빠의 생몰 년도가 선명하다. 그 옆의 빈자리는 엄마의 자리이다. '부부단' 이라는 이름으로 부부가 함께 묻히는 곳이다. 나란히 자리 잡은 경우도 있고 한쪽이 먼저 떠나고 남은 한쪽은 비워둔 곳도 있다.    

  

“그때 잘못했어. 이 옆에 하나 더 사놨어야 하는데.”

    

뭔 소린가 싶어서 엄마를 쳐다보니 눈가가 시뻘개 져서는 한마디를 붙인다.     


‘**이 자리.’     

동생 이름이다. (중증 장애인이라 제 앞가림을 혼자 못한다.)     


“여기는 부부단이라서 걔는 이 옆에 못 묻혀. 저쪽에 따로 해야 돼. 그리고 아직 살아있는 애는 미리 예약 못해. 부부단만 빼고 나머지는 죽은 다음에 순서대로 자리 잡을 수 있어.”       


내가 너무 건조하고 무덤덤했을까? 엄마가 샐쭉한다.    

안타까워서 그랬겠지. 서러워서 그랬겠지. 엄마 마음이 그렇지. 서툰 엄마라 늘 울퉁불퉁했지만 애달펐겠지.

나 죽고 나면 저 천덕꾸러기 어쩌나. 싶었을 것이다. 그 마음 이해하지. 징글징글하게 수없이 이해했지.


그런데 서툰 우리 엄마가 미처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걔까지 묻어주고 가려면 나는 얼마나 살아야 하나 싶어 숨이 턱 막히는 당신의 큰 딸.

몸이 불편한 동생보다 무려 11살이 더 많은 큰딸. 정작 내가 죽으면 아무도 묻어주지 않을텐데.  나는 뭐야.

     

 


나는 솔직히 내가 제일 먼저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남겨진 이의 슬픔이야 내가 죽었는데 알게 뭔가.

나도 나를 생각하며 우는 이들의 배웅을 받으면서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진흙 속에서 핀다는 연꽃이 되려는 오만이 있었나보다.

그러나 나는 고고하게 필 꿈을 꿀 것이 아니라, 살기위해 연꽃줄기를 내 발로 걷어차고 나가야 했다.

나는 여전히 회색 담벼락 골목을 벗어나지 못한 기분이다.

살짝만 삐끗해도 살갗이 쓸려다가던 좁고 고불고불한 골목.     


시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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