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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May 16. 2023

그건, 선발전을 통과해야 할 수 있는 거야.

중학교 1학년, 아직 어색함이 채 걷히지 않은 3월의 학기 초였다. 

각자 취미와 특기와 선호에 따라 ‘특별활동’ 반을 정해야 했다.


지금도 그런 것들이 있는지, 있다면 뭐라고 부르는 지 모르지만 당시 특별활동은 일주일에 한 번 교과목 이외의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일종의 과외시간이었다.  

걸스카웃, 보이(는 없었다.)스카웃, 아람단(아니 무슨 단이더라? 초/중/고 가 이름이 다 달랐었는데) 등의 단체활동도 있었고, 문예반, 다도반, 영어회화, 배드민턴반 등 여러 가지 ‘특별활동반’이 있었다.     


각자가 원하는 반에 지원하고, 인원이 몰릴 경우 2지망으로 가게 되는 것이었는데, 나는 문예반이나 문학반 같은 ‘글’과 관련된 활동을 지원했다.

일단 몸 쓰는 것은 싫어했고, 사람들 틈에서 어울리는 것은 무서웠다. 그나마 유일한 취미가 조용히 처박혀서 노트에 끄적이는 것이었던터라 문예반이니 문학반이니 하는 것들이 성격에 맞춤이었다. 그리고 마음 한쪽에는 ‘그나마 잘하는 것’ 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초등(국민)학교 선생님들에게 칭찬도 받았고, 내가 쓴 글이 교실 뒤편에 한 동안 내 걸려 있기도 했고, 작은 상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글 쓰기 말고 뭘 하겠는가. 

  

“합창부요.”     


반 아이들의 시선이 한 쪽으로 쏠렸다.

앞자리에 앉은 머리가 긴 친구였는데, 체격이 작았고, 양볼이 통통했던 아이였다.

여튼 그 아이는 합창부를 하겠다고 손을 번쩍 들고 말했는데, 담임 선생님은 적잖이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건 몰라도 합창부는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려 ‘선발전’을 치러야만 하는 것이 합창부였다. 음악 선생님이 교실을 돌면서 한 명씩 노래를 시켰다. 열외도 없었고, 자진하차도 허락되지 않았다. 개인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인재선발전이다.       


반 아이들이 전부 보는 데서 한명씩 일어나 애국가 한 소절씩 노래를 불러야 했는데, 떨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울려펴지는 교실에서 음악 선생님이 ‘너, 너, 너’ 라며 일차로 아이들을 추려내었고, 그 아이들이 다시 경합을 거쳐 최종선발된 이들이 합창부원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선발된 아이들은 완벽한 훈련과정을 거친 연예인과 같았다. 예쁜 옷을 맞춰 입고 공연을 하는 합창부 소녀들은 곧 학교의 얼굴이었다. 학교행사는 물론 외부행사까지 무슨 일만 있다하면 그 친구들이 반짝반짝한 옷을 입고 앞에 나섰다. 무슨 대회에서 몇 등을 하는지, 환경미화가 얼마나 잘 되었는지, 모의고사 성적이 시내 학교 중에 몇등인지 까지 모조리 학교의 명예로 여겨지던 시절이니 보통의 아이들이 모여 불협화음을 극복하고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동화 같은 이야기는 꿈속의 헛소리였다.      


합창부를 하겠다는 그 친구는 이미 1차 선발에서 탈락하였으니 합창부원이 될 수 없었다.     


“**아, 합창부 말고 다른 거 골라. 합창부는 안돼.”

“합창부요.”

“합창부는 안된다니까.”

“합창부요.”       


그리고 그 아이는 울고 말았다.      

나는 이상했다.  그리고 속으로 비죽거렸다.     


‘쟤는 노래도 못하는 애가 왜 합창부를 하려고 하지? 합창부는 아무나 하는 거 아닌데.  쟤 왜 저렇게 멍청해?’     


나는 그 친구가 말귀를 못 알아 먹는 바보거나,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안 되는 일에 그토록 진심일 수가.                




나의 일상을 채우는 몇 가지 루틴이 있다. 


아침에 작업실에 가면, 커피부터 한 잔 마신다. 한 겨울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셔야 기분이 개운했었는데, 고혈압 환자가 된 이후로 자제하는 중이었다. 어디서 주워듣기로 찬음료를 벌컥거리는 습관이 고혈압에 좋지 않다고 해서. 그런데 혈압약을 처방 받는 병원의 의사샘께 물어봤더니 크게 상관없다고 한다. 전문가가 그렇다고 하니 믿어야지. 그래서 마음껏 아이스로 벌컥거리는 중이다.  아침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그리고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청소를 한다. 나 혼자 책상 앞에 앉아있기만 하는 곳이라 매일 청소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했다. 살뜰하게 살림을 하러 작업실을 꾸린 것은 아니니까.  


마지막으로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설거지를 마친다. 하루 종일 책상위에 두고 쓴 머그컵 하나와 유리 물컵 하나, 간간히 나오는 접시와 포크 정도. 길어야 5분이면 끝날 일이다. 실은 이마저 귀찮아서 개수대에 담가놓고 미뤄두곤 했었지만, 그깟 5분이 뭐라고 그걸 못하나 싶어서 더는 미루지 않는다.      


정해둔 원칙은 강박에 가깝게 지켜야 하는 성품을 가졌다. 그래서 그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내내 신경이 거슬린다.  커피로 하루를 시작하고 일주일에 세 번, 청소를 하고, 반드시 설거지를 마치고 돌아온다. 그런데 큰 문제가 있다. 

아침엔 커피를 마시고 일주일에 세번 정도 꼬박꼬박 청소를 하고, 설거지도 하는데. 글을 안 쓴다.  

   

글 쓰는 사람의 작업실인데, 글을 안 쓴다.      




어찌 들릴지 모르겠지만, 업으로 삼는 글쓰기는 다분히 ‘재능’의 영역이다.      


물론, 지독한 연습과 훈련으로 완성도를 끌어올릴 수는 있겠으나 타고난 끼와 감각은 창작의 영역에서는 절대적인 것이다. 사실 자신의 일에 지독하게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러니 우리가 아는 창작자들은 다들 각자의 재능 위에 노력으로 꽃을 피운 것이다. 저마다의 색깔로 알록달록.  

     

나는 깜박 속았지 뭔가. 나에게 재능이 있다고.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긴 호흡을 가져가야 하는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었다. 인물이 태어나고, 그들이 갈등하고 피 터지게 고민하고, 지독하게 사랑하는 이야기였다. 이런저런 시도를 하다가 내내 멈춰 서게 된 것은 징글징글하게 우려먹은 사골 같은 가족사 탓도 아니요, 말 안 듣는 내 몸뚱이 탓도 아니었다. 마음이 힘들어서라든가, 머릿속이 미친년 꽃다발이라서라든가, 다음 달 카드값 걱정 때문이라든가 오만 소리를 해 댔지만, 나는 이야기를 펼칠 힘이 없었다. 그것이 나의 한계였다.       


지금 이 짧은 글을 쓰는 동안에도 삐걱삐걱, 몇 번을 멈추고 있는지 모른다. 전에 없던 현상이다. 나의 비루함을 알아챈 순간부터 나는 모든 글쓰기가 버거워졌다.      


글을 처음 시작했을때, 나를 만났던 선생님들이 말씀하셨다.

     

“작가가 참 게을러. 그리고 엉뚱한 데서 똑똑해. 진득하게 고민하기 싫으니까 적당히 참 발 빠져나가는데, 그게 모르는 사람들은 깜빡 속기 쉽지만, 다 들켜. 얄팍한 재주가 너의 재능을 망치고 있어.”     


“성장은 계단식이야. 지금 너는 한 계단 위에 올라섰는데 다음 계단 까지 올라가는게 어려운 상황이야. 원인은 나도 모르지. 그건 너만 알아. 그러나 일단 올라가면 무섭게 성장할거야.”     


.....속은 건 나인가. 선생님들인가. 




합창부가 하고 싶다며 울먹이던 친구는, 그렇게나 노래가 좋았을까. 아니면 합창부원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어느 쪽이든 그토록 솔직하고 그토록 간절하게 희망하던 그 친구를 비웃었던 나는 치밀어오는 부끄러움에 낯을 들지 못하겠다.      



“재밌고, 좋은 글을 쓰는 사람, 그거 하고 싶었어.”

“그건 하고 싶다고 하는 게 아니야. 선발전을 통과해야 되는데, 넌......?”          


이거 참, 중학생 애처럼 울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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