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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May 24. 2023

향이 타는 동안, 춤을 춘다.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작업실 청소를 한다. 

창문을 열고, 청소기를 돌리고 마음 가는 데로 물티슈를 들고 다니며 이곳저곳을 닦기도 한다. 책꽂이를 슥슥 닦다가 책상 위에 먼지가 보이면 책상도 닦고, 작은 냉장고 위, 커피머신과 토스터기, 스탠드와 노트북, 그러다가 창틀에 시선이 가면 창틀도 닦는다. 어느 날은 책상만 닦기도 하고, 어떤 날은 모조리 생략이다. 

크지 않은 원룸이지만, 꼼꼼히 구석구석 청소할 만큼 청소에 진심은 아니라서 그렇다.     


이곳은 오래 된 원룸인데 방은 넓고 쾌적한 편이지만 주방이 협소하다. 창문이 따로 없는 작은 주방은 늘 어딘가에서 곰팡이 냄새가 피어오르는 것 같다. 그런 이유로 텅텅 빈 싱크대 하부장에는 아무것도 넣지 못하고, 바닥에 널어 두고 지낸다. 


냄새에 민감한 편이다. 

어떤 기억을 따라 모양도, 소리도 아니고 냄새로 기억이 주렁주렁 따라올 때도 있다. 말로 설명하라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데, 지독하게 선명한 기억이 그렇다.           


추억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조금 강렬한 냄새가 후각을 때리고 가면, 하루 종일 그 냄새를 코끝에 매달고 다니는 것 같아 괴로운데, 큼큼한 곰팡내가 나는 하부장에 물건을 넣을 엄두가 안 나는 것이다. 

다 때려넣으면 깔끔하고 좋을텐데. 어차피 살림도 안 하는 주방, 신발장으로 쓰면 참 좋은데 그점이 내내 아쉽다. 


디퓨저도 놓아보고, 냄새제거에 탁월하다는 온갖 제품읋 사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기도 하지만, 문을 열면 훤히 노출되는 구조인터라 괜히 내 속살을 내보이는 것 같아 꺼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향을 피운다.

홀더에 향을 꽂아놓고 불을 붙이고, 창문을 활짝 열고, 주방 후드를 켜서 환기를 시킨다.

그 사이 청소기를 돌리고, 아직 타지 않은 향을 남겨둔 채 방과 주방 사이의 문을 닫는다. 

향 냄새가 방까지 번지는 것은 또 원치 않아서.          





작업실은 서향이라, 늦은 오후에 햇살이 들어온다.

창이 크고, 지대가 높은 언덕길에 있어 시야가 넓다.


방의 절반 정도는 책상이 차지하고 있고, 옵션으로 들어앉은 가구를 제외하면 약 한평 남짓한 공간이 남는다. 

아무것도 없는 바닥이다.   

겨우내 깔아 두었던 러그를 얼마 전에야 치워서 맨 바닥이 드러났다.      








오후의 햇살은 쏟아지고, 열어둔 창문으로 살살 바람은 불고.

길가를 지나는 차, 오토바이 소음, 수업을 마친 인근 중학교 아이들의 명랑하지만 (사실 시끄러운) 목소리. 

귀 안으로 이어폰을 꾹 눌러 꽂는다.      

휴대폰의 음악을 틀고, 볼륨을 한껏 높인다.     


한평 남짓한 바닥을 무대 삼아 춤을 춘다.

밖에서 보일지도 모르겠다. 

알게 뭔가. ‘어유! 저게 뭐야,’ 하고 기겁했더라도 세발 만 떼면 잊을것을.

혹은 무심히 지나갈 것이다.      

  


향이 타는 동안.

내내 우는 것 보다는 춤을 추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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