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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May 26. 2023

노인이 된 엄마와 함께 사는 법.

        

엄마는 불교신자이다. 정확히 얼마나 믿음이 깊은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어릴 때 부터 엄마는 절에 다녔다. 어릴 때 엄마를 따라갔던 절은 옆에 물이 흐르고 자두나무, 앵두나무가 있는 제법 운치 있는 암자였다. 버스를 타고 고불고불. 내려서도 한참을 걸어가야 했는데, 절에 갈 때면 소풍가듯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언제부턴가 그 절에 다니지 않게 되자, 나는 엄마가 더 이상 절에 다니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제 그곳에 가지 않으니.     


그러나 엄마는 해마다 초파일(음력 4월 8일, 석가탄신일)이 되면 어딘가에 등을 매달았다. 

물론, 평시에 절에 가지는 않았다. 

아빠의 49재도 절에서 모셨고, 해마다 나를 위한 초를 밝혔다.      

그럼에도 늙어가는 딸의 살이가 나아지지 않는다고 느끼는지 불퉁하게 ‘기도도 소용이 없구만.’ 하고 툴툴거린다. 그리고 매년 정초에 절에 전화를 건다.      


“스님, 우리 딸래미거 올해도 켜 줘요. 딸래미 시켜서 돈 부칠게요.”     


‘딸래미 시켜서’ 라는 뜻은 나를 시켜 모바일 뱅킹을 하겠다는 것이다. 나를 축원하는 초를 밝히는 값을 치르는 이는 엄마이다.           


엄마는 거진 한달 전부터 절에 데려다 줄거냐고 물었다. 

자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라 그렇게 멀지는 않지만, 예정에 없는 일정이 생기는 일은 좀 불편하다.     

일종의 자격지심이거나 피해의식일수도 있는데 알바라도 어딘가에 ‘출근’ 이라는 것을 할 때는 하지 않던  모친의 ‘아무때나 호출’ 이 몇 번 반복되니 나도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노는 것 같아?” 하고 쏘아붙이게 되는 것이다. 실상 많은 시간을 ‘노는 중’ 이더라도.    

그래도 아무때나 호출은 곤란하다. 이건 바로잡아야 했다.     

   

그래서 그런지 절에 데려다 줄거냐고 묻는 엄마가 슬금 내 눈치를 살핀다.

그리고 다급하게 덧붙인다. ‘바쁘면 안 가도 돼.’

몇시 쯤 갈 거냐고 물었더니 초파일 전날 낮에 잠깐 다녀오겠다는 것이었다.‘

행사하는 건 안 보냐고 물었다. 안봐도 된단다. 

알겠다고 했다.      




바야흐로 시간이 흘러 오늘이 그날이다. 사월 초파일의 전날.

절에서는 저녁 6시 30분부터 행사가 시작된다. 

막 일어나서 눈꼽도 안 떨어진 내게 엄마가 엉뚱한 소리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엄마는 말을 뒤집어서 4시쯤 출발해서 여유 있게 도착해 기다리다가 행사를 보고 오겠다는 것이다. 아니, 낮에 잠깐이라더니?      


나는 기다리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고속버스를 타거나 기차를 탈 때도 시간을 예측해서 길어야 5분 전에 도착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무려 3시간 이상의 시간을 절에서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      

이건 말이 다르지 않냐고 했더니, 역정이다. 정확히는 서러워한다. 적반하장. 

이럴 때는 답이 없다. 논리적인 설명도 소용없다.


노인에게 약속이란 지독하게 느린 것이다. 

그저 <오늘 절에 가기로 했다.> 만 기억할 뿐, 상대의 시간이 몇시부터 몇시인지는 중요치 않다.      

나는 오후 6시 반쯤에 운동을 가야 하는데,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거냐. 분명히 낮에 간다고 하지 않았냐 했더니, 행사를 안 볼 거면 뭐하러 가냔다. (안본다며!!!)

혼자 버스타고 가겠다고 한다. 참고로 버스는 하루에 두 대 다니는 시골동네에 절이 있다.           


무적의 심술이다.      


그렇다고 내가 운동이 끝나고 돌아오는 시간까지 기다리지도 않는다. 본인이 원하는 행사가 끝나면, 지체없이 돌아와야 하니까. 장애인 활동보조사가 돌아간 후에 혼자 기다려야 하는 동생 걱정 때문이다. 


화가 치밀어서 작업실로 튀어왔고, 한참 후에 전화를 걸었다.    

  

“오후 4시에 절에 데려다 주고 나는 다시 와서 요가를 갈 거야. 그 시간에 하는 걸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조금 일찍 하는 수업을 들을 거야. 그리고 다시 절에 데리러 갈거니까 기다려. 이건 다 엄마 변덕 때문이고, 다 엄마 심술 때문이야.”

“늙은이니까 심술을 부리지.”

“알면 됐어. 이 심술꾸러기 할마이야.”          




사소하지만 일순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들이 있다. 

수십 년 세월에 단련될 법도 하지만 변하지 않는 갈등이다. 


기능성 운동복을 세탁기에 돌리고 섬유유연제까지 듬뿍 넣어 햇살에 보송보송 말려놓기도 하고, 허리 수술 후에 거동이 불편하다면서도 무조건 수건은 삶아야 한다면서 베란다에 쪼그리고 앉아 휴대용 버너에 빨래를 삶는다. 속이 부글부글 끓는데, 입을 다문다.      


기능성 운동복이 비싼 것은 맞지만 그것이 내 엄마보다 중하지 않았으니 쓰린 속을 달랬다. 

빨래를 안 삶으면 못 사는 사람이니 쭈그리고 앉지 말고 허리 펴고 빨래 삶으라고 내가 나름 잘 쓰고 있던 좌식 테이블을 내어주었다. 엄마는 신났다.      


가끔 내 상식으로는 납득이 안되는 고집을 피울 때가 있는데, 생전의 아빠도 그랬다.

한해 한해 나이가 들수록 더더욱 그런 것들이 심해졌는데 본인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점점 줄어드는 노년의 삶에서 이깟 것도 내 맘대로 못하냐는 심리인 것 같다.      


문짝 교체 공사를 했는데 나한테 상의도 없이 결정하더니 큼직한 무늬가 박혀있어서 나를 기함하게 한다거나, 인터넷 물건은 못 믿겠다면서 굳이 같은 물건을 더 비싸게 산다거나, 소금을 줄여야 한다고 하니 간도 없이 어떻게 밥을 먹냐며 차라리 죽고 말겠다고 역정을 낸다.      


화딱지 나.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주가 망하는 것도 아니고. 법을 어기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어떤가. 엄마집의 문짝이고, 본인 맘이 편하다면 몇 만원 더 쓴들 뭐 그리 대수겠나. 결정적으로 엄마, 당신 돈인데. 입원환자에게 저염식을 제공했더니 밥상을 엎어버렸다는 내과 선생님의  말처럼, 먹고 사는 것도 제한 해야 한다면 그래, 지옥이 따로 없지 싶다. 대세에 큰 지장이 없는 한 넘어갈 수 있는 일이다.      


나는 내 뜻대로 살겠다고 입만 열면 ’선포질‘이면서 내가 당신의 뜻을 무시할 자격은 없었다.     




한줌이 될까말까한 작은 노인.

나날이 작아지는 웅크린 뒷모습.     

내 말뜻을 이해 못하는 것에 수시로 화가 치밀지만.

그래서 꽥꽥 거리는 딸이지만. 

그럼에도 나도 나를 꺾는 중이다. 

내가 노인이 된 엄마와 함께 사는 법이다.      


배움은 짦았어도, 나보다 지혜가 많았던 사람.

소심하면서도 강했던 사람.

우리 심술탱이 할마이, 내가 많이 지도록 애써볼게. 

나랑 오래 싸웁시다.      





사실 나는 책갈피에 이런거 꽂아놓는거 싫어한다.

풀이 마르면서 자국도 남고, 냄새도 난다. 그거.....싫다. 

그러나 산책중에 길가에서 만난 행운이라고 조심히 들고 와서 세상 소중하게 건네니 어쩌나.



진짜!!!! 낮에 잠깐 간다더니! 

관세음보살. 관세음 보살. 보살. 보살. 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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