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oijak May 29. 2023

분명한 정리가 필요할 때.

  

요즘 유튜브의 정리 콘텐츠를 자주 보는 편이다.

남의 집 정리하고 청소하는 게 뭐 그리 재밌을까마는, 그냥 널브러져있던 무언가가 자리잡혀 가는 과정을 무념으로 바라보는 재미가 제법 괜찮다.     


나 또한 어느 정도의 정리는 즐겨하는 편이라, 때론 정리로 심리적 안정을 찾기도 한다. 

물론 칼각을 유지하거나, 1미리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정리는 아니다.   


소위 정리전문가 라는 분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정리의 기본은 ‘목적’을 정하는 것이라 한다. 

공간에 목적을 두고, 그 목적에 맞는 물건들을 자리 잡게 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목적이 명확해져야 그 다음을 정할 수 있다고 한다. 




나의 작업실.

지난 글에서 잠시 언급했던 ‘춤추는 맨바닥’의 반대편은 나름 ‘글쓰는’ 공간이다.

방의 절반을 차지하는 거대한 책상과 책꽂이, 화이트보드 그리고 카페인을 공급하는 공장(?)이 자리 잡고 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단출했다.

그저 책상과 의자, 노트북. 

포트와 낡은 커피메이커. 집에서 챙겨온 두어권 남짓의 당장 읽을 책.


그러던 것이 때로는 협찬으로, 때로는 내돈내산으로 슬슬 물건이 늘어났다. 

낡은 커피메이커는 당근으로 무료 나눔 했고, 그 자리에 캡슐 머신이 들어왔다. 

토스터도 들어왔고, 전자레인지도 생겼다.      

10년 가까이 쓰던 노트북은 2년 전에 새것으로 바꿨고, 늘 허리가 아파서 고생이라 스텐딩 데스크도 마련했다. 낡은 프린터는 버리고, 복합기를 새로 장만했다.

두어 권이 전부였던 책은 수십 권이 되었고, 집에서 제 역할을 못하던 스텐드조명을 들고와서 1프로의 ‘갬성’을 끼얹었다.      





나는 문자 그대로 ‘알거지’ 였다.

내가 언제는 돈이 많았던가마는, 그때는 진심 알거지였고, 심신도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돈 때문에 끊어내지 못하고 울며(진짜로 울며) 버티던 일을 이러다 내가 죽겠다 싶어서 새벽 이메일 통보로 그만두고 나서 불면의 밤을 보내던 어느 날, 머릿속에 ‘나가자.’ 가 떠올랐다.     


다음 날 아침부터 보증금이 싼 원룸을 찾아 헤맸고, 그날 바로 지금 머무는 방을 구했다. 

글쓰는 사람이라고 본인 소개를 하고, 낮 동안에 작업실로 혼자 조용히 쓸 생각이라고 했더니, 주인 어르신은 ‘혹시 담배 피워요?’ 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담배연기를 굉장히 싫어합니다.’라고 했더니, 머쓱하게 웃으셨다. 건물 내 금연이 원칙이라며.      


보증금을 제외하면 당장 몇 달 치 월세밖에 없던 형편이라 일단 단기로 계약을 했지만 나는 이후 근 3년째 이곳에 머물고 있다.      


그 사이, 글 써서 돈도 벌었고, 글 말고 다른 거 해서 돈도 벌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이 놀았다.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이곳에는 나름의 법칙에 따라 구획이 나뉘어있는데, 이것들을 깔끔하게 정리 해 놓는 것이 즐겁기도 하다. 




       

브런치를 처음 시작한 것이 아마 2016년 쯤이었을 것이다. 완전 초창기였다. 

따라서 나는 활동기간 대비 구독자도 많지 않은 편이다.

나도 사람인지라 많은 구독자와 메인에 빈번하게 걸리는 다른 작가들이 부럽다.

그들의 출간소식도 적잖이 부럽다. ^^     


그러나 많은 구독자를 품은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는데, 명확한 ‘목적’이 보인다는 것이다. 

특정 주제로, 혹은 특정 장르를 목적으로 글을 꾸려나가는 그분들과 비교하면 내 글은 목적 없는 일상 주절거림에 가깝다. 정리 안된 집과 다를바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썩 나쁘지만은 않다. 

말보다는 글이 쉬운 사람이라 글 쓰면서 살겠다고 했고, 딱히 친구도 없고,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고, 애인도 없다(뭐가 이렇게 다 없....??)보니 속이 터질 때 어디 가서 말할데가 없어서 글을 쓴 것이다.      

무플일 지언정 악플도 없어서 쾌적하게 주절거릴 수 있었다.

무플보단 악플이라고도 하지만, 내 혼잣말에 악플까지 감수할 이유는 없다. 


이 참에 나의 주절거림에 대해 다정한 라이킷과 따뜻한 말로 응원해주시는 분들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자, 브런치는 그렇다 치고 나의 글쓰는 사람으로서의 진짜 정체성은 어쩔 것인가?    

      

어제는 허리통증이 심했다. 허리통증은 달고 다니는 사람이지만 가끔씩 정도가 심해질 때가 있는데 어제가 그랬다. ‘억!’ 과 ‘악!’ 그리고 ‘으으이이’를 진종일 달고다녔다.      


저것들은 비명과 신음이다.      


그러다 보니 하루의 거의 태반를 누워서 끙끙 거려야 했는데, 몸이 얌전하니 머리가 부산했다.      

     

내가 창작에서 손을 놓은 지가 얼마나됐지?


지난 겨울에 반짝 했다가 봄부터 뒤로 물러났고, 곧 여름의 초입이다.

그러는 사이 몇 번의 기회가 녹아없어졌고, 심지어 구매요청(말이 좀 이상하다만)도 있었지만, 내가 준비가 안 돼서 거절해야 했다. 


왜 이럴까?     


무기력이라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버릇처럼 중얼거렸다. 

그런데 무기력하다고 하기엔 너무 열심히 딴짓을 하고있었다.

작업실 청소와 정리를 하고, 각을 맞추고, 나름 운동을 다니고, 쇼핑을 했다.      


글 쓰는 일 빼고는 다 열심히 하고 있었다.     


무기력이 아니라 무서움이다. 

말아먹으면 안되는, 무플을 받고 싶지 않은, 진짜 ‘목적’이 있는 일이라 무서운 것이다.

그에 비해 나의 능력치는 모자라다는 자괴감이 발목을 잡는다.

경차 몰고 고속도로 올라가는 기분이 이것이다.

옆으로 내 달리는 트럭의 바람에 휘청이고, 추월하고 싶어도 속도가 안나니 머뭇거리고.

뒷차는 바짝 따라붙어 재촉하고 손발에 땀이나고.

초보운전도 아니라서 상황파악은 다 되는데 뜻대로 안 되니 어질어질 하다.


그런데 목적지는 저기있고. 가야하고. 



배우 오정세 백상예술대상 수상소감 중 일부. 

          

나의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 쓰고 있는 배우 오정세님의 수상소감 중 일부이다.

꽤 진한 울림을 주는 수상소감으로 화제가 되었다.    


https://youtu.be/LmgWxezH7cc



과연 나의 동백은 올까?



                        



작업실 화이트보드는 그때그때 생각나는 아이디어를 적기도 하고, 하루에 해야할 일들을 적기도 하고, 구상중인 이야기의 전체 흐름도를 그리기도 한다.      

화이트 보드가 걸린 자리의 못은 이사 올 때부터 박혀있었다.

보드를 걸기 딱 좋은 자리에 못이 박혀있어서 이건 운명이라며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자욱만 무수히 남긴 채 텅텅 비어있던 보드 끝자락에 소심하게 몇 글자를 적었다.


목적 있는 글.                    




백상예술대상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각본상, 극본상 그런 거.      

물론 멋진 수상소감을 남기지는 못할 것이다.

분명히 염소 목소리로 오돌오돌 떨 것이고, 입꼬리는 제멋대로 날뛸 것이다.

그러니까 말 대신 어딘가에 '길게' 쓸것이다. 


생각이 현실이 된다면.



매거진의 이전글 노인이 된 엄마와 함께 사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