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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Jun 01. 2023

어둠 속에서 굴러다니다.

그러니까, 몸무게를 보나 눈무게를 보나 나는 명백한 비만이다.




얼마 전 위경련으로 병원 신세를 졌을 때, 피검사를 했었다.

콜레스테롤 수치, 중성지방 수치가 높다고 했다.

가지가지 한다고 생각했다.     


중성지방 수치가 높은 것이 반드시 살과 관련이 있지는 않겠지만, 인과관계가 있든 없든 나는 살이 쪘다.     

생의 대부분을 ‘많이 마른’ 이거나 ‘약간 마른’ 사람으로 살았던 터라 이미 몇 년째 이렇게 살고 있음에도 비만의 몸은 영 적응이 되지 않는다. 


태초부터 말랐던 이들이 많이 그러하듯, 나도 다이어트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니 먹는 행위의 ‘무서움’을 알 리가 없음이다.      

그저, 배고프면 그것이 언제이든 마음껏 먹었다. 

꼬박꼬박 포인트를 적립하듯 살이 쌓이는 줄도 모르고.

     

식욕억제제를 생각하기도 했다. 

집 바로 옆에 <신경외과 전문의> 가 운영하는 <비만 클리닉>이 있는데, 그 앞을 지나칠 때마다 유혹을 느낀다. 그러나 대사 작용의 활성화로 인한 두근거림과 불면, 예민, 구토 등의 부작용이 있다는 말에 꿀꺽 욕망을 삼켰다.  무던한 이들은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는 모양인데, 나라는 인간의 성정상 그것을 버틸 재량이 없다. 그러니 아웃.     

사실은...그래도 조금 미련이 남아서 경험자에게 물어보았다. 최근에 감량에 성공한 친구인데 처방받은 식욕억제제를 조금 먹었었다고 한다. 의존성이 생길까봐 초반 일주일 정도만 먹고 결국 식이요법으로 뺐다고 하는데. 그래서 약 먹을 때 참을만 하더냐고 물었더니, 단박에 '너는 안될걸?'이란다. 

30년지기 친구가 그렇다니 그런거지. 

(의료법에 걸리겠지만, 남은 약 한번 줘 볼래? 물어볼까도 했다)




일주일에 세 번, 요가를 한다.

글 쓰는 것 빼고는 다 ‘열심히’ 하는 요즘, 전에 없이 운동에 적극적이다. 

요가를 한다고 살이 빠질 리 없으므로 다이어트가 목적은 아니다. 

그저 작년 겨울, <1년 등록 시 파격 할인>에 눈이 멀어 덜컥 1년 치를 선납했기 때문이고, 뭐라도 하나 해야 ‘아무것도 안 하는’ 삶에 대한 죄책감이 조금이라도 줄어들었기에 운동이라도 꼬박꼬박 가는 중이다.      


그런데 문제는 뻣뻣함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한 때 앞뒤로 다리가 찢어지던 사람이고, 소위 ‘쟁기자세’ 라고 부르는 누워서 발을 뒤로 넘겨 땅에 닿도록 하는 그 자세가 가능했었다.



쟁기자세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라떼’를 부르짖고자 함이 아니다. 명백히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다.   

   

내가 이토록 뻣뻣한 몸이 된 것은 허리통증과 맥을 같이한다. 허리가 아프니 움직임에 제약이 생겼고, 그렇게 어딘가 어색한 채로 몸이 굳어 가동범위가 좁아졌다.

그뿐인가? 어깨통증, 손목통증, 20년전에 삐끗한 발목까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여기저기 아픈 것들이 존재감을 뽐내는 중이다.     

 

빚쟁이세요?     


이런 몸뚱이로 요가동작을 따라하려니 말이 좋아 운동이지 실상 운동을 다녀오면, 삭신이 두드려 맞은 것처럼 아프다. 그리고 다음 날이면 어깨위로 더욱 단단해진 승모근을 한껏 뽐내며, 굳은 목이 돌아가지 않아 거만하기 짝이 없는 꼿꼿한 자세로 가자미 눈을 뜨고 운전을 한다. 참으로 가관이다.    


나름 열심히 풀어보려 애썼다. 요가원에 20분씩 일찍 도착해 도구를 이용해서 몸을 푸는데, 솔직히 너무 아프다. ‘몽돌이’ 라고 부르는 나무 원통으로 어깨며 허벅지며 등이며 풀어보지만, 이건 뭐 고문 받는 기분이다. 신나게 풀다가 되려 부상을 입기도 했다.    


마음 같아서는 나도 몸을 척척 접어버리고 싶은데, 까딱하다가는 내 목숨이 접힐 판이다.           




그리고 작년에 왔던 각설이처럼 죽지도 않고 ‘또 온’ 습관이 있다.      

한동안 그러지 않았는데, 무언가를 틀어놓아야 잠을 자는 습관이 다시 찾아왔다.

주로 ‘알아먹을 수 없는’ 미드를 틀어놓거나, 끊임없이 떠느는 유튜브를 틀어놓아야 잠이 들 수 있다. 잔잔한 수면음악이나 백색소음 같은 건 소용없다.     


당연히 수면의 질은 개판이고, 자도 잔 것 같지 않다. 

새벽에 한 번 깨는데 귓가에 시끄럽게 울리는 알 수 없는 영어들의 향연때문에 내가 잠을 잔건지 밤새 적을 무찌른건지 알 수가 없었다.      


종합하자면, 나는 비만하고 뻣뻣하고 잠도 제대로 못 잔다.      




오후 8시 반, 요가원에 다녀와서 평소처럼 늦은 저녁을 먹는 대신 두부 반 모를 천천히 먹었다. 뭔가 허전하지만 입을 틀어막고자 얼른 양치를 하고 (양치하는 거 귀찮아서 양치 한 이후에는 잘 안먹는 습관이 있다) 세수를 했다. 챙겨 먹어야 하는 약을 먹고 습관처럼 켜 놓던 유튜브 대신 바닥에 매트를 깔았다. 불도 켜지 않은 어둠 속에서 내 몸의 감각에만 의지해 폼롤러 위를 굴러다녔다. (문장이 좀 이상하지만, 이 표현이 맞다.)       



버틸 근력이 없고, 그렇다고 요령도 없어서 폼롤러를 제대로 다룰 줄 모른다.  그러니 폼롤러로 몸을 푼다기 보다는 폼롤러 위를 내가 굴러다니는 꼴이다. 뒹구르르 뒹구르르.     





불쑥, 익숙하고 당연한 것들이 더이상 당연하지 않게 된다. 


마른 몸이 당연한 줄 알았고, 글 쓰는 일이 제일 쉬운 줄 알았다.      

그것이 무엇이든 잊었던 것을 다시 찾고 싶다면, 어느새 스며든 무언가를 버려야 했다. 

그래서 나는 껌껌한 어둠 속에서 구르는 중이다. 


나는 내가 가볍고 말랑해지기를, 염치불구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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