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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Jun 16. 2023

뒤뚱뒤뚱. 내 멋대로 뛰었다.

   

새벽 5시 30분. 잠에서 깼다.

화장실을 다녀와 물을 한잔 마시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내내 이 패턴이다. 새벽에 눈을 뜨고, 다시 잠들고. 

습관처럼 유튜브를 켜서 재생목록을 훑는다. 

영상의 자막도 흐릿하고 초점이 맞지 않는다.      

노안이 찾아온 탓이다.        


  


얼마 전에 안경을 맞췄다. 

시력은 좌우 1.0으로 좋은 편이지만 초기 노안으로 아주 근거리의 사물이 흐릿하게 보이는 것이 문제였다. 

컴퓨터 화면을 오래 보거나, 책을 보거나 자료를 읽을 때 초점이 맞지 않아 눈이 피곤했다. 


하루 종일 모니터를 바라봐야 하고 수시로 자료를 읽어야 하는데, 노안을 인정하기 싫은 고집으로 불편을 떠안고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경을 걸치니 커지긴 커지는데 굴곡이 느껴진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돋보기로구나. ^^


사실 약간 어지럽기도 하고, 어색해서 괜히 샀나 싶었지만 곧 익숙해졌다. 아직은 적응기간이라 착용 시간이 길지는 않다. 모니터는 맨눈으로 봐도 큰 문제는 없고, 책을 볼 때 주로 안경이 필요하다. 가능하면 핸드폰으로 유튜브는 보지 않기로 했다.     

      

이런 것, 저런 것 조심해야 하고, 가려야 할 일들이 늘어난다. 세월의 흐름을 따라가는 중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의 나는 유튜브를 보지 않겠다는 결심은 슬그머니 쌩깐 채,  새벽에 잠에서 깨어 다시 침대에 기어들어와서는 보이지도 않는 핸드폰 화면을 한껏 노려보고 있었다. 

하아...이대로 하루를 보내고, 이틀을 보내고, 잠들고 깨고 그러다가 생을 다하겠지.

맥 없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멀스멀 채운다. 또또 패배감이다. 




침대에서 나와 커피를 한잔 마셨다.  눈꼽도 떼지 않은 채로 집을 나섰다.     



호수가를 걸었다. 

한 바퀴쯤 돌고 나니 오전 6시 50분.

뿌듯할 일도 아니다. 많은 이들이 이미 하루를 시작한 시간이다.      

다만, 이른 아침의 호수는 인적이 드물다. 바쁜 일과에 쫓기는 이들이 아침부터 호수를 걸을리는 없으니. 

보는 눈이 없으니 뛰고 싶었다. 


머릿속으로는 스포츠 음료 광고에 나오는 멋진 달리기 폼을 그려보지만, 몇 년 새 10키로 이상 불어난 몸뚱이와 태곳적부터 달리기에는 재능이 없는 내가 그런 그림을 구현해 낼 리가 없다. 

그런데도 오늘따라 정말 뛰고 싶었다. 


마음은 그리 먹었어도 뭐가 무서운지, 한 발을 내딛기가 어렵다.

마음과 달리 몸이 요지부동이다.

성큼 한 발을 떼었지만 뛰지 못하고 다시 걸었다.


저만치 주차한 차가 보였다. 겨우 10미터 남짓. 애라 모르겠다. 뚝딱뚝딱 뛰어보았다.

조금더 달리고 싶었지만 이대로 호수가를 달릴 자신은 없다. 

휙, 방향을 튼다.




호수 맞은 편 작은 광장을 달렸다. 외곽을 따라 뛰다가 사이 사이 난 데크길로, 때로는 울퉁불퉁한 돌길로 내 멋대로 방향을 틀어버렸다. 

숨이 가쁘다. 출렁이는 뱃살에 석고처럼 뻣뻣한 몸은 우스꽝스럽기 짝이없다.      

딱 한가지만 생각했다. 일단, 길이 끝날때까지는 뛰자. 

길의 끝에서 다시 방향을 틀었다. 내가 움직이는 대로 구불구불 길이 생겼다.     


실상 이 길은 목표를 향해 막힘없이 내달릴 수 있는 길이 아니다. 

뻗어나가다가 꺾이고, 난데없이 굽어진다. 

발을 헛디디면 발목이 부러질 수도 있는 길이다.

원래 물길이 지나는 수생공원이라 내가 달리는 데크길은 물 위에 놓인 길이다.

즉, 까딱하면 낙상이다. 

더없이 비효율적이고 맥없이 느리다. 

달리고 싶다면 이쪽이 아니라 저쪽 호숫가를 따라 달렸어야. 아니면 운동장 트랙을 달렸어야.


그러니까 나는 지금 목표조차 없이 마구잡이로 달리는 중이다.

그렇다고 달리면 안 될 이유도 없다. 

침대에 누워있어야만 할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뒤뚱뒤뚱 달렸다.              



지금, 살고 싶었던 모양으로 살고 있지 못하다고, 나를 내버려 두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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